AI로 만든 영화, 메타버스 속 건축물... 저작권 인정 어디까지

유주현 2024. 5. 1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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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로 제작한 국내 최초의 ‘편집저작물’로 인정받은 영화 ‘AI수로부인’
민희진-하이브 사태로 ‘콘셉트 표절’이란 생소한 개념이 인구에 회자됐다. “아일릿이 뉴진스를 모든 영역에서 카피했다”며 내부고발했다가 경영권 탈취 논란을 초래한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콘셉트 포토와 특정 댄스 동작, 긴 생머리 같은 외형적 특징, 프로모션 방식을 포함한 ‘포뮬러’를 따라 한 것이 자신만의 오리지낼리티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콘셉트 저작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지만, 아이디어의 영역이라 법적으로 권리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저작권 개념과는 다르다는 반론도 나왔다. K팝 업계에선 표절이 아니라 관행적인 ‘벤치마킹’으로 보기도 한다. 뉴진스 역시 90년대 일본 걸그룹 스피드의 ‘바디 앤 소울’ 뮤직비디오와 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을 카피했다는 주장도 있다.

대중문화 콘텐트 산업이 성장하고 시장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관행으로 통했던 일들에 새로운 지적소유권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 포맷권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엔 방송 포맷이 저작권법 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도의적 비난만 감수하면 무단으로 베껴도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17년 SBS와 CJENM 간의 소송에서 대법원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의 저작물성을 인정한 이후 포맷 보호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2021년 TV조선 ‘미스터트롯’과 MBN ‘보이스트롯’ 간의 소송도 업계의 관심사였다. ‘미스터트롯’ PD가 퇴사하고 MBN과 손잡은 뒤 소 취하가 됐지만, 마구잡이식 포맷 베끼기에 경종을 울렸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제 방송 포맷은 어엿한 수출 상품이다. 대중문화 개방 이전 일본 방송 프로그램을 단골로 표절하던 한국이 이젠 글로벌 콘텐트 포맷 시장 3위, 점유율 10% 이상을 차지하는 포맷 수출국이 됐다. 미드 ‘굿닥터’가 대표적이다. 20부작 KBS 드라마를 2017년 ABC가 리메이크해 시즌7까지 이어지고 있다. MBC 예능 ‘복면가왕’도 2019년 미국 FOX TV가 리메이크해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이후 전세계 55개국에 수출됐고, CJENM ‘너의 목소리가 보여’ 포맷도 2020년 FOX 리메이크 이후 20여개국에 수출됐다. 인기에 비례해 해외에서 포맷 도용 사례도 빈번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6~2020년 예능 18편이 20차례 표절 및 도용을 당했다.

웹툰 시장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과 함께 예전에 보지 못하던 유형의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그리는 웹툰은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 소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네이버웹툰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의 한 회차 모든 컷이 생성형 AI로 제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별점 테러를 당했고, 네이버웹툰은 특정 작가 맞춤형 툴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광범위한 그림체가 아니라 특정 작가 스타일을 학습시킨 AI를 1인 작가 시스템 안에서 도구화하면, 저작권 이슈에서 자유롭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로 만든 콘텐트는 현행법상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지난 1월 AI로 전면 제작한 영화 ‘AI수로부인’이 국내 최초로 ‘편집저작물’로 등록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GPT-4’ ‘클로바X’로 시나리오를 쓴 뒤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등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젠2’ ‘D-ID’ 등 비디오 생성 AI로 영상을 구축, ‘클로바더빙’과 ‘사운드로우’로 소리와 음악을 입히는 등 제작 전 과정에 AI를 활용했지만, 편집과 리터치 등에 영화제작사 나라AI필름의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세계적으로도 AI 저작권 인정사례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연말 문체부가 발표한 ‘생성 AI 창작물 관련 가이드라인’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인간이 추가한 창작적 표현에 대해 저작권 인정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AI 산출물을 만들기 위해 입력하는 데이터에도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정지우 변호사는 “AI를 활용한 작품에 저작권을 부여한다면 데이터 수집단계에서 기존 창작자의 권리 보호부터 해야 한다”면서 “이런 차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AI로 인한 작품들이 무한 생성되어 저작권 개념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가상현실에서의 저작권도 주목받고 있다. 실제 건축물과 조경을 그대로 모사해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생겨나면서 최근 스크린골프 업체 골프존과 골프코스 설계회사 등의 저작권 침해소송 같은 건축저작권 분쟁이 생겼다. 게임도 저작권 분쟁의 주무대가 됐다. 2021년 미국음악출판사협회(NMPA)가 메타버스 게임 업체 로블록스에 2억 달러 규모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NMPA는 일일 이용자 4천만명이 넘는 로블록스가 이용자들에게 파는 가상 음악 재생장치를 통해 음악이 무단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결국 NMPA 회원들과 로블록스가 개별적인 라이선싱 계약을 맺도록 합의했다. 이 합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저작권 문제 해결의 본보기가 됐고, 가상 환경 내 음악 라이선싱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개척됐다.

저작권 보호와 문화생태계의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다. 방향성에 따라 콘텐트 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정지우 변호사는 “창작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했던 저작물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표현과 아이디어의 구분이 중요했지만 콘셉트 아트, 미디어 아트 등 이분법으로 잘라 말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졌다. 기존의 이론을 넘어 창작물을 보호할 법적 근거 마련에 폭넓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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