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만든 영화, 메타버스 속 건축물... 저작권 인정 어디까지
대중문화 콘텐트 산업이 성장하고 시장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관행으로 통했던 일들에 새로운 지적소유권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 포맷권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엔 방송 포맷이 저작권법 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도의적 비난만 감수하면 무단으로 베껴도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17년 SBS와 CJENM 간의 소송에서 대법원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의 저작물성을 인정한 이후 포맷 보호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2021년 TV조선 ‘미스터트롯’과 MBN ‘보이스트롯’ 간의 소송도 업계의 관심사였다. ‘미스터트롯’ PD가 퇴사하고 MBN과 손잡은 뒤 소 취하가 됐지만, 마구잡이식 포맷 베끼기에 경종을 울렸다.
웹툰 시장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과 함께 예전에 보지 못하던 유형의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그리는 웹툰은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 소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네이버웹툰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의 한 회차 모든 컷이 생성형 AI로 제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별점 테러를 당했고, 네이버웹툰은 특정 작가 맞춤형 툴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광범위한 그림체가 아니라 특정 작가 스타일을 학습시킨 AI를 1인 작가 시스템 안에서 도구화하면, 저작권 이슈에서 자유롭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로 만든 콘텐트는 현행법상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지난 1월 AI로 전면 제작한 영화 ‘AI수로부인’이 국내 최초로 ‘편집저작물’로 등록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GPT-4’ ‘클로바X’로 시나리오를 쓴 뒤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등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젠2’ ‘D-ID’ 등 비디오 생성 AI로 영상을 구축, ‘클로바더빙’과 ‘사운드로우’로 소리와 음악을 입히는 등 제작 전 과정에 AI를 활용했지만, 편집과 리터치 등에 영화제작사 나라AI필름의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세계적으로도 AI 저작권 인정사례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연말 문체부가 발표한 ‘생성 AI 창작물 관련 가이드라인’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인간이 추가한 창작적 표현에 대해 저작권 인정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AI 산출물을 만들기 위해 입력하는 데이터에도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정지우 변호사는 “AI를 활용한 작품에 저작권을 부여한다면 데이터 수집단계에서 기존 창작자의 권리 보호부터 해야 한다”면서 “이런 차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AI로 인한 작품들이 무한 생성되어 저작권 개념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가상현실에서의 저작권도 주목받고 있다. 실제 건축물과 조경을 그대로 모사해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생겨나면서 최근 스크린골프 업체 골프존과 골프코스 설계회사 등의 저작권 침해소송 같은 건축저작권 분쟁이 생겼다. 게임도 저작권 분쟁의 주무대가 됐다. 2021년 미국음악출판사협회(NMPA)가 메타버스 게임 업체 로블록스에 2억 달러 규모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NMPA는 일일 이용자 4천만명이 넘는 로블록스가 이용자들에게 파는 가상 음악 재생장치를 통해 음악이 무단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결국 NMPA 회원들과 로블록스가 개별적인 라이선싱 계약을 맺도록 합의했다. 이 합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저작권 문제 해결의 본보기가 됐고, 가상 환경 내 음악 라이선싱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개척됐다.
저작권 보호와 문화생태계의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다. 방향성에 따라 콘텐트 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정지우 변호사는 “창작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했던 저작물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표현과 아이디어의 구분이 중요했지만 콘셉트 아트, 미디어 아트 등 이분법으로 잘라 말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졌다. 기존의 이론을 넘어 창작물을 보호할 법적 근거 마련에 폭넓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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