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는 메가 히트곡, 재즈스타일로 동심 일깨웠죠

서정민 2024. 5. 1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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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앨범 낸 ‘재즈 듀오’
재즈 피아니스트 성기문, 재즈 보컬리스트 박재홍(왼쪽부터). 두 사람은 최근 ‘반달’ ‘따오기’ ‘오빠생각’ ‘섬집아기’ ‘나뭇잎배’ 등 일제강점기부터 70년대까지 발표된 10곡의 동요를 골라 재즈 스타일로 재해석한 앨범 ‘소곡집(小曲集·아래 사진)’을 발표했다. 최기웅 기자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1972년 발표된 동요 ‘과수원길’의 첫 소절이다. 아마도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중년 이상의 독자라면 다음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아름다운 동요를 언제 마지막으로 불렀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은 희미하다. 나이 들면서 잃어버린 동심처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동요(童謠)를 잊고 살았다.

‘따오기(1925년)’ ‘반달(1924년)’ ‘오빠생각(1925년)’ ‘섬집아기(1950년)’ ‘나뭇잎배(1955년)’ 등등. 길게는 100년 전, 짧게는 30~40년 전 만들어진 대한민국 대표 동요 10곡을 재즈 스타일로 불러보겠다고 나선 이들이 있다. 재즈 보컬리스트 박재홍(50)과 재즈 피아니스트 성기문(48)이다. 두 사람은 지난 8일 동요 10곡이 담긴 앨범 ‘소곡집(小曲集)’을 발표했다.

MZ세대 “동요를 이렇게 부른다니 신선”

두 사람은 재즈 신에서 유명한 중견 뮤지션이다. 재즈 밴드 ‘찰리 정 밴드’의 멤버인 박재홍은 1930~40년대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호소력 짙은 소울 창법으로 국내외 유명 재즈 페스티벌에서 다수 공연한 바 있다. 성기문은 10대 때 독학한 피아노 실력 하나로 무작정 상경해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 밴드’를 비롯해 나윤선·윤복희·이광조·김준 등의 재즈가수들과 함께 연주했다. 그는 1세대 재즈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에서도 오르간과 피아노를 담당하고 있다.

두 사람이 동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박재홍&성기문’ 듀오로 활동을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다.

“슬로우 블루스라고 정통 미국 블루스 스탠다드 곡들을 피아노와 보컬로만 부르다가 자연스럽게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우리 동요와 ‘황성옛터’같은 대중가요에 관심이 갔어요. 어쩐지 우리 스타일과 맞을 것 같았죠.”(박재홍. 이하 박)

소곡집
“일제강점기 때 동요들이 매력적인 이유가 있어요. 파란 눈의 선교사들이 피아노를 들여오기 전까지 우리 노래들은 ‘궁·상·각·치·우’ 5음 음계만 썼는데, ‘도·레·미·파·솔·라·시·도’ 하는 장음계를 조선인들이 처음 들은 거예요. ‘장음계를 쓰면 이런 뉘앙스의 곡을 만들 수 있구나’ 신기했겠죠.(웃음) 이때 만들어진 게 ‘반달’ ‘찔레꽃(1920년 작곡)’ 같은 동요들인데, 그동안 불렀던 우리 음악의 익숙함과 서양 음악의 새로움이 뒤섞여서 결과적으로는 이 시기만의 아주 독특한 정서가 만들어지죠. 저는 그 묘한 매력의 정서를 우리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싶었어요.”(성)

아티스트로서 ‘새로움’과 ‘독자성’을 찾던 두 사람은 오래된 동요들을 하나씩 재발견하면서 또 다른 사실도 알아냈다.

“생각해 보면 동요는 남녀노소, 세대불문, 우리 시대 최고의 히트곡들이에요. 할머니·할아버지, 어머니·아버지도 알고 장성한 아들·딸까지 3대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죠. 이 엄청난 노래들을 잊고 살았다니 안타깝죠. ‘소곡집’으로 첫 공연을 한다면 이 동요들과 함께 늙은 30~40년대생 어머니·아버지들을 제일 먼저 초대하고 싶어요.”(박)

“우리 아버지·어머니 세대는 나라 없는 식민지에서 태어나, 감수성 예민한 10대 때 전쟁을 겪고, 마냥 즐거워야 될 20대 때 전쟁 뒤치다꺼리를 했죠.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중년이 돼서야 비로소 88올림픽을 치르며 감격스러워 하죠. 올림픽 개회식 때 ‘내가 이걸 해냈다’ 자랑스러워 하던 아버지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요. 그 세대를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정)

그렇다고 ‘소곡집’이 어르신들만을 위한 앨범은 아니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공연이 있을 때마다 한두 곡 선을 보였는데 MZ세대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공통된 의견은 “신선하다”는 것. “이미 알고 있던 노래인데 이렇게도 부를 수 있다니 흥미롭다”는 의견이 많다. “후배 뮤지션들이 이 앨범을 듣고 ‘이런 스타일로도 음악을 하는구나’ ‘우리도 저렇게 한 번 해볼까’ 했으면 좋겠어요.”(박)

아동복 브랜드 ‘베네베네’ 대표가 투자

사실 ‘소곡집’ 앨범이 나오기까지 국내 아동복 브랜드 ‘베네베네’ 오주연 대표의 투자가 큰 힘이 됐다. 국내에만 40여 곳의 매장을 가진 베네베네는 일본·싱가포르·몽고에 이어 유럽 진출을 계획 중이다. 오 대표가 지인인 유병안 건축가에게 ‘외국 매장에서 어떤 음악을 틀면 좋을까’ 의논했고, 유 건축가는 ‘이왕이면 한국 동요를 틀자, 매장에 피아노 악보까지 두고 가져가게 한다면 더욱 좋겠다’고 제안했다. 프로젝트에 박재홍·성기문 듀오를 합류시킨 것도 평소 두 사람의 음악을 좋아했던 유 건축가의 기획이다.

이 앨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바람은 베네베네 매장에서든 유튜브에서든 호기심 많은 유럽 젊은이들이 한국 대중음악을 새롭게 느껴보는 것이다. ‘이 노래가 한국 노래라고? BTS밖에 몰랐는데 이런 게 있다고?’ 언어는 몰라도 그들이 충분히 음악에 공감한다면, 공장에서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음악으로 다양성 부족을 지적받아 온 한국 대중음악이 좀 더 깊이 있고 단단한 K컬처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저는 확신이 있어요. 일본 공연 때 관객들이 대부분 50~60대였는데, 한국의 동요라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라며 ‘찔레꽃’을 불렀더니 관객들이 펑펑 우는 거예요. 한국어도 모르면서. 이게 음악의 힘이죠.”(성)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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