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미·중에 의해 나눠지는 과학기술 세계

2024. 5. 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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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생성형 인공지능인 ‘젠 AI’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데이터에 묻어 있는 인간의 지식이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산하의 데이터 엔지니어링 학회는 다양한 데이터를 모으고 활용하는 컴퓨터 기술의 개발에 관련된 공학적 문제를 다루는 학회다. 2022년 말 작고한 미국 스탠퍼드대의 지오 위더홀드 교수가 산업계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40년 전 설립해 전 세계로 확장했다. 지난주 위더홀드 교수가 청년기를 보낸 네덜란드에서 이 학회가 열렸다. 위더홀드 교수는 나에게 항상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실험하는 정신을 가르쳐 준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 양국, 기술 패권 경쟁으로 교류 통제
미국 내 학회에 중국 학자 참석 불허
미 전문가들도 중국 행사 참여 꺼려
양국 전문가들 AI 분야 협력 어려워

선데이 칼럼
위더홀드 교수는 1992년 인터넷 시대가 열릴 때 미국 국방부 연구기획기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정보기술 분야 책임자로 파견 근무를 했다. 인터넷상의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를 다룰 기술이 없었던 때다. 그는 이런 비정형 데이터 관리와 활용을 위한 디지털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미국연구재단,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기획했다. 스탠퍼드대, 버클리대 등 6개 미국 대학들은 1993년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스탠퍼드대에서 이 디지털 라이브러리 연구를 하던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1998년 벤처 캐피털 세콰이어 캐피털과 클라이너 퍼킨스의 펀딩을 받아 창업한 회사가 구글이다. 구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이자 젠 AI의 원천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다. 구글과 경쟁하는 오픈 AI도 구글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기업이다. 구글, 오픈 AI 역사는 미국의 학계, 정부, 벤처 캐피털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첨단 기술 패권 국가의 경쟁력을 쌓고 유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과학기술 학계에서는 매년 최우수 논문을 선정한다. 하지만 올해의 최우수논문상보다 더 의미 있는 상이 10년 전 논문들을 재평가해 주는 상이다. 시간의 시험을 이긴 논문상(Test of Time Award) 또는 십 년간 최대의 임팩트를 남긴 논문 상(Ten-Year Influential Award)등으로 불리는 상이다.

IEEE 데이터 엔지니어링 학회에서는 필자가 지난 9년간 이 상과 관련된 위원장을 맡아 왔다. 올해는 챗GPT 같은 젠 AI 서비스를 학습하고 서비스하는데 필수적인 ‘대규모 그래프의 분할’이라는 논문을 10년 전 발표한 저자들에게 이 상이 돌아갔다. 이 연구는 미국 구글의 중국계 연구원 하이슌 왕 박사가 중국 베이징의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서 빙 검색 서비스의 지식 그래프 연구를 하던 빈 샤오 박사와 함께 시작했다. 이 연구 주제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의 관심 주제이기도 했다.

상하이 교통대학을 졸업한 왕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UCLA) 캠퍼스에서 박사를 취득한 후 IBM 연구원으로 시작해 대부분의 커리어를 미국에서 보냈다. 구글 이전에는 베이징의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서 4년을 근무하기도 했다. 현재 인스타카트의 엔지니어링 부사장이다. 다양한 연구 커리어를 통해 쌓은 아이디어와 실력이 출중한 엔지니어다. 하지만 왕박사가 앞으로 중국에 있는 인재들과 공동 연구를 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이 시작된 후 미국이 중국과의 과학 기술 교류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올해 IEEE 데이터 엔지니어링 학회 참석자의 약 60%는 중국, 홍콩에서 왔다. 반면 작년 미국, 캐나다에서 개최된 학회에는 중국인들이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논문 발표자들도 비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캐나다에서 개최되는 학회에 중국인들의 참석이 봉쇄되면서 미국 대륙이 아닌 유럽에서 개최된 학회에 이들이 몰린 것이다.

한편 미국 내 연구자들은 미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중국에서 개최되는 학회의 참석을 피하고 있다. AI 등 미국이 주도하는 전략 분야 학회에서는 중국에서의 학회 개최를 피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학계의 급속한 양적 성장으로 인한 단합과 논문 질의 저하 등 중국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6일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에 대한 경찰 체포로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이 표면화된 날, 미국은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경제 포럼에서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미국은 한국에 일본·호주·인도·베트남 등과 연대해 중국의 팽창을 봉쇄(contain)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하버드대 화학과 찰스 리버 교수 등 중국이 불공정하게 미국의 과학기술을 빼 가는 수단으로 인식한 ‘천인계획(중국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의 미국 내 수혜자들에 대한 기소가 시작됐다.

이제 미국의 중국에 대한 봉쇄는 다방면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중동의 AI 선두 국가 아랍에미리트(UAE)는 AI의 발전을 위해 설립한 기업 G42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와 왕립 AI 대학 총장 등에 중국계 인재를 영입하고 협력 관계를 돈독하게 했다. 이와 관련 미 언론은 미국이 UAE 측에 미·중 중 한 국가를 선택하라고 압박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이제 과학기술 분야에서 순수한 국제 협력을 도모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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