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내 이웃의 기타연주

이지혜 기자 2024. 5. 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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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쿵쿵쿵쿵. 발망치 소리가 아니다. 드럼 소리 같다.

한낮에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드럼 소리 같은 게 들려온다. 녹음된 비트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내가 살고 있는 건물에서 드럼 비트 소리와 함께 기타 소리 같은 게 종종 들려온다.

드럼을 배우는 친구를 불러와 들어보라고 할까? 그러기엔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이니 친구가 왔을 때 아무 소리도 안 들릴 수도 있겠다. 간혹 기타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 혹시 음악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걸까? 기성 음악을 틀어놓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문득 드럼 비트가 흘러나올 때 그 소리에 맞춰 연주를 해볼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유행하는 즉흥 합주처럼 말이다. 누군가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 나타나 바이올린 연주를 더하는 식의 영상을 보고는 전율을 느꼈다.

물론 지금 나의 기타 연주 실력은 매우 보잘것없다. 일 년 반을 넘게 배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연주할 줄 아는 곡이 없다. 툭하면 코드 운지법도 까먹는다. 코드 변환에 마음이 급해 박자도 빨라지기 일쑤. 내 연주해내기도 버거운 마당에 다른 연주자와 화합까지 요하는 즉흥 연주 같은 건 언감생심이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후로 나는 밴드 음악을 즐겨 듣는다. 더불어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같은 음악도 어느 때는 기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느 때는 드럼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드럼에 귀를 기울이다 ‘아, 이게 킥인가? 여기선 이렇게 킥을 하네?’ 할 때도 있다. 어설픈 귀로 기타 소리와 베이스 소리를 분리해보기도 하고 그 어우러짐을 느껴보기도 한다. 합주란 이런 거구나 싶다.

평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버릇도 생겼다. 그 덕에 오늘도 건물 어딘가에서 나오는 드럼과 기타 소리가 귀에 닿은 것이리라.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저 사람도 내 기타 소리가 들리겠지?’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분명 나보다 훨씬 잘하는데, 내 기타 소리를 듣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처음 기타를 배울 때 나는 학원이 아닌 개인 강습을 택했다. 개인 강습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타 수강생과 미묘한 경쟁심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듣자니 레슨 시간 앞뒤로 마주치는 사람들이나 옆방에서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 실력도 묘한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그러니 경쟁 상태에 놓이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개인 강습은 필연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집에서 들리는 드럼과 기타 소리에 ‘나보다 잘한다’ ‘못해서 부끄럽다’ ‘나도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 상태의 긴장감을 극도로 싫어해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해온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인가.

경쟁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적당한 경쟁 상태는 개인 발전과 성취에 도움이 된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이렇게 또 몸소 깨닫는다. 그래서 학교나 사회에서 그렇게 경쟁을 유도했나 보다.

기타를 배우며 나는 또 이렇게 새로운 것을 깨닫고 배운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계속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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