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기술력 낙후 극복, AI 패권 확보 '두 토끼' 잡기

2024. 5. 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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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라인야후에 군침 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인공지능 기술의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했다. [AP=연합뉴스]
한·일 양국 정부와 네이버·소프트뱅크가 얽힌 ‘라인야후 사태’가 당장은 네이버의 지분 매각이 없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차 행정지도에 나섰던 일본 정부가 7월 1일까지 받기로 한 라인야후의 보안 강화 조치 관련 보고서에 경영권 관련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기로 하면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자국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라인야후 지배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당장은 한 발 물러선 것일 뿐, 네이버의 지분 매각 가능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는 이 문제는,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의 라인야후 경영권 장악 시도로 해석된다. 재일교포 3세인 손 회장은 1981년 일본에서 소프트뱅크를 창업, 일본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 키워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경영자다. 한국을 찾아 초고속 인터넷이나 인공지능(AI)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그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쿠팡·야놀자 등 한국 기업에 조(兆) 단위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친근했던 손 회장에 대한 배신감을 나타내는 여론마저 형성되고 있다.

결제 플랫폼 ‘페이페이’ 먹통에 타격

복수의 취재원 분석을 종합하면, 손 회장의 라인야후 경영권 장악 의중은 크게 세 갈래로 해석된다. 우선 소프트뱅크의 기술력에 한계를 느낀 상황에서 라인야후를 문제 해결의 열쇠로 봤다는 해석이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일본을 넘어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전 세계를 대표하는 IT 기업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정승일 국제AI교육연구소 교수는 “손 회장은 빌 게이츠 MS 창업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경영자’라고 칭할 만큼 명성을 쌓았지만, 구글 그리고 알리바바(중국) 등과 본격 경쟁하기 위해 네이버와 손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손 회장의 이런 원대한 야심에 비해 소프트뱅크 기술력은 눈높이에 못 미치는 상황이 이어졌다. 소프트뱅크가 일본 최대 간편결제 플랫폼으로 키운 ‘페이페이’는 최근 먹통 사태로 일본 내에서 플랫폼 안정성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키웠다. IT 업계 관계자는 “1980년대까지 IT 강국이던 일본은 이후 경기 침체, 고령화와 젊은 인재 부족, 변화에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등이 맞물려 IT 산업은 경제 규모 대비 낙후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술력 낙후 문제를 라인야후를 통해 극복하려 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손 회장이 수년간 공들인 AI 기술 시장의 패권 확보를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그간 라인야후는 일본 국민이 많이 쓰는 라인 메신저로만 한국에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에선 IT 생태계의 중심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보다 큰 의미를 갖는 기업이다. 메신저 외에도 포털(야후재팬)과 배달 애플리케이션(데마에칸), 은행·증권·보험·신용카드·대출 등을 아우르는 핀테크 분야까지 섭렵했다. 즉,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데이터 전쟁’의 열쇠를 쥔 기업이라는 얘기다. 챗GPT 등으로 급부상한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에도 라인야후 데이터는 필수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라인야후를 통해 글로벌 AI 시장 진출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라인 메신저는 일본 외에 동남아 등지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 약 2억 명의 사용자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했다. 소프트뱅크는 생성형 AI 부문에서 일본 기업 중 최대 규모 투자를 지속하면서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지난해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자회사 ARM을 통해 AI 전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한편, 2026년까지는 유럽과 아시아, 중동 등지에 데이터 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곽재원 한양대 석좌교수는 “이제껏 행보를 보면 손 회장은 AI를 통해 거의 모든 산업 분야를 장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AI에 대한 그의 야심이 최근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잇단 투자 실패에 따른 조바심이 손 회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손 회장은 2017년 설립한 비전펀드를 통한 벤처캐피탈(VC)로도 명성을 얻었다. 뛰어난 안목으로 세계 각국 벤처투자에서 성공을 거두고 투자금을 회수, 소프트뱅크의 자본력과 영향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명성이 무색하게 2020년대 들어 해외 벤처투자 실적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손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위워크는 지난해 미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위워크 투자로만 140억 달러(약 19조원) 이상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라인야후 사태, 7월 재현될 가능성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였다가 2022년 파산 신청한 FTX 투자로도 큰 손실을 입었다. 그 사이 손 회장에 대한 평가는 ‘미다스의 손’에서 ‘마이너스의 손’으로 바뀌었다. 손 회장이 이에 따른 입지 약화 우려를 딛고, 일본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라인야후 건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는 해석이다.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장은 “소프트뱅크는 네이버와의 합작사 A홀딩스를 만들면서 50대 50의 동등한 지분율로 라인야후 경영권 분쟁의 불씨를 만들었다”며 “일본이라는 홈그라운드에서 이런 지배구조로 네이버와 손잡을 때부터 손 회장에게 다른 속내가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 회장은 과거 엔씨소프트·넷마블의 일본 진출 때도 50대 50 지분율을 먼저 제안, 합작사를 세웠다가 사업에서 철수한 사례가 있다. 위 학장은 “네이버 경영진이 손 회장을 너무 신뢰해서 실수한 것”이라며 라인야후 사태가 7월 1일 이후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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