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어 뮤지컬로···SF소설 ‘천개의 파랑’에 빠져든다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5. 1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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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통해 인간 통찰하는 원작
국립극단 이어 서울예술단 공연
LED 패널로 꾸민 환상적 무대
합창과 군무로 웅장함 더해
안톤 체홉 희극 ‘세 자매’도
같은 기간 다른 연출로 찾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서울예술단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의 한 장면. 서울예술단
연한 초록색으로 칠해진 인간형 로봇이 어두운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앉아있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로봇을 응시하며 공연 시작을 기다린다. 로봇의 이름은 ‘콜리’다. 브로콜리와 색깔이 같다는 이유로 이름이 붙여진 이 로봇은 로봇인 인물이기에 할 수 있는 역할을 170분의 공연 시간 동안 톡톡히 해낸다. 그것은 인간 인물들이 다른 인간들에게는 감추고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소통하게 하는 역할이다.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이 국립극단 연극 ‘천 개의 파랑’에 이어 12일부터 관객을 맞고 있다. 두 작품 모두 2020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한 SF소설 ‘천 개의 파랑’을 각색했다. 두 장르 공연으로 각색될 정도로 원작의 힘이 세다. 로봇을 통해 인간을 통찰하는 창의적인 스토리로 객석을 성찰하게 만든다. 비슷한 시기 세월이 흘러도 깊은 울림을 주는 안톤 체홉의 고전 연극 ‘세 자매’도 두 연출가의 다른 무대로 관객을 찾는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서울예술단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의 한 장면. 서울예술단
뮤지컬 ‘천 개의 파랑’ 배경은 경마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가 활약하는 2035년, 로봇 기수 콜리는 파트너인 경주마 투데이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부서진다. 상반신만 남은 채 폐기될 위기에 처해있던 콜리를 우연히 발견한 고등학생 연재는 그를 집에 데려와 다리를 만들어준다.

연재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언니 은혜, 소방관이던 남편이 순직한 뒤 식당을 하며 두 딸은 키우는 엄마 보경과 함께 산다. 세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상대의 눈치를 보며 좀처럼 대화를 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자신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동생에게 미안해서, 가난 때문에 일찍 철든 딸들이 안쓰러워서 등의 이유 때문이다.

콜리와 지내는 가족들은 호기심 많은 콜리의 질문을 받으며 점차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인간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니기에 감췄던 심정을 부담 없이 말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서먹해진 가족에게 다가간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서울예술단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의 한 장면. 서울예술단
‘천 개의 파랑’에서 관객의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 것은 화려한 무대미술이다. 장면에 따라 다수의 거대한 LED(발광다이오드) 패널이 수직·수평으로 움직이고, 패널에서 상영되는 영상들이 하늘과 나무, 경마장 등의 배경과 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풍경, 격정적 심리를 환상적으로 표현한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좌우로 움직이는 바닥은 무대 전환을 물 흐르듯 돕는다. ‘단 3퍼센트’라는 노래 한 곡이 불리는 동안 병원, 집, 화재 현장, 은행, 식당으로 네 번의 전환이 이뤄질 정도다.

앙상블 배우들이 뒷받침하는 합창과 군무는 작품에 웅장함을 더한다. 투데이가 경주할 때, 언니를 향한 연재의 애틋한 마음이 드러 날 때 등 극적인 장면에서 전문 무용수들로 구성된 서울예술단원들은 한국무용적 선이 가미된 우아한 군무로 인물들의 격동하는 감정을 표현한다.

4월 16~28일 공연된 국립극단 연극 ‘천 개의 파랑’의 한 장면. 국립극단
4월 16~28일 공연된 연극 ‘천 개의 파랑’은 뮤지컬 ‘천 개의 파랑’보다 콜리의 대사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됐다. 1000개의 단어만 구사할 수 있고, 인습적 시선을 갖지 않은 콜리가 선문답처럼 가슴과 머리를 울리는 말들을 내뱉고 인물들을 감화시킨다. 로봇 배우의 옆에서 함께 콜리를 연기하는 인간 배우의 역할이 작품이 관객을 설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뮤지컬 ‘천 개의 파랑’에는 연극보다 많은 수의 로봇이 등장한다. 콜리뿐 아니라 3D 프린터로 제작한 투데이, 보스톤다이나믹스의 제품인 강아지 로봇 등 완성도 높은 로봇들이 다수 등장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반면 연극 ‘천 개의 파랑’은 콜리가 사실상 유일한 로봇이고 투데이는 실물이 아닌 천장에서 바닥을 비추는 빛으로 표현됐다. 로봇의 수나 때깔보다는 대사와 무대 장치를 활용한 연극적 표현 등이 탁월한 작품이다.

극단 한바탕이 5월 5~12일 공연한 연극 ‘세 자매’의 한 장면. 한바탕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타이거헌터가 5월 9~12일 무대에 올린 ‘세 자매, 포항 언저리에서’는 모두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홉의 고전 연극 ‘세 자매’를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시골 도시였던 원작의 배경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포항으로 했고, 러시아 장교들이었던 등장인물들은 해병대 군인들로 바꿨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구로공단 착공, 월남 파병 등 고도 성장기 한국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도 녹였다.

같은 시기인 5월 5~12일 극단 한바탕이 공연한 연극 ‘세 자매’는 사실주의 작품인 체홉의 원작을 2024년의 관객이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연출했다. 배우가 대사와 행동을 크게 하는 연극적 과장을 줄였고, 원작에서 사랑 구도가 전혀 없었던 이리나와 투젠바흐의 관계는 서로 애정을 가지는 것으로 바꿨다. 연출을 맡은 송상익 한바탕 대표는 “체홉 작품의 매력은 우리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는 점”이라며 “사실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되 작품의 희극적 요소와 비극적 요소를 강화해 관객들이 보다 재미있게 관람하는 것을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타이거헌터가 5월 9~12일 무대에 올린 ‘세 자매, 포항 언저리에서’의 한 장면.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타이거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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