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미애로합의봐’

정우상 논설위원 2024. 5. 1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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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긴 이름을 줄여 부르는 역사는 오래됐지만 대중적으로는 1984년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가 많이 불렸다. 1기 노찾사는 운동권 노래 동아리 출신이 주축을 이뤘다. 80년대에는 민추협, 전대협, 서총련, 전노협, 민노총처럼 단체 이름을 세 음절로 줄여 부르는 게 대세였다. 나중에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라는 개그 프로가 나올 정도로 노찾사 효과는 오래갔다.

▶2015년부터는 ‘어차피...’시리즈가 유행했다. TV ‘쇼미더머니4′에 YG 소속 아이돌 송민호가 출연했다. 숨은 힙합 고수를 발굴한다는 경연 대회에 아이돌이 출연하자 경쟁자들은 자조를 섞어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며 ‘어우송’이라 했다. 송민호는 준우승했다.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여주인공의 미래 남편이 누가 될까를 두고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와 ‘어남택(택이·박보검)’이 다퉜다. TV조선의 미스트롯1에서는 송가인의 실력이 출중하자 어우송(어차피 우승은 송가인)이 등장했다.

▶2017년 대선 때 이 ‘어차피...’ 시리즈가 정치권에 등장했다. 탄핵 이후 대선이라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을 외치며 대세론을 퍼트렸다. 캠프에서는 “건방져 보인다”며 어대문 대신 투대문(투표해야 대통령은 문재인)으로 바꿔 부르자고 했다. 어대문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어대윤(어차피 대통령은 윤석열), 어대낙(이낙연), 어대명(이재명)으로 진화했다.

▶무슨 협(협의회), 무슨 련(연합) 수준이었던 정치 말 줄임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였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정치인 팬클럽이 성공하면서 창사랑(이회창), 정통들(정동영), 박사모(박근혜), 명박사랑(이명박)이 뒤를 이었다. 민주당 쪽은 이런 정치 신조어 제조와 유포에 재능이 있었다. 낙선 정치인에 대해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로 위로했다. 이번 총선 때도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당을 찍자며 ‘지민비조’를 유행시켰다.

▶추미애 전 장관은 자칭, 타칭 별명이 많다. 지지자들은 추다르크로 불렀고, 반대자들은 그 때문에 보수가 살았다며 ‘보수의 어머니’라고 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선 추씨 지지자들이 ‘미애로합의봐(음료)’ ‘적폐 울리는 매운 추라면(식품)’ ‘시원한 활명추(소화제)’ 같은 말을 퍼트렸다. 이번 국회의장 후보 경선 때도 명심(明心)을 업고 ‘미애로합의봐’ ‘어의추’(어차피 의장은 추미애)라고 했지만 역풍을 맞았다. 기발한 신조어라도 순리를 거스르면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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