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이전에 구타"..故 이세종, 5.18 첫 희생자

이주연 2024. 5. 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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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 커 ▶전북대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구타로 숨졌다는 증언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1980년 당시 전북대에 재학 중이던 고 이세종 열사가 '5.18민주화운동 최초 사망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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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 커 ▶

전북대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구타로 숨졌다는 증언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열사가 뒤늦게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였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건데요. 


시민단체들이 역대 최대 규모로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를 열고, 지속적인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주연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지난해 12월에 나온 한 보고서. 


1980년 당시 전북대에 재학 중이던 고 이세종 열사가 '5.18민주화운동 최초 사망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그 해 5월 17일 자정 무렵, 농성을 준비하던 전북대 학생회관에 계엄군이 들이닥쳐 40여 명의 학생을 짓밟고, 폭행했습니다.


[김완술 / 당시 전북대 학생]

"30~40분 이상 구타를 지속적으로 했고, 머리가 깨지거나 허리를 다치거나 이런 사람들이 많았었죠."


다음 날인 18일 새벽 1시 반쯤, 전북대 농과대 2학년이던 고 이세종 열사는 학생회관 밖 바닥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로서는 '추락사'가 사인으로, 군부는 이 열사가 전신주에 매달려있다가 떨어진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단순 추락사가 아니라는 증언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부검 후 작성된 사망진단서에는 시신에서 발견된 여러 상처가 추락이라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학생회관 3층 계단에서 계엄군에게 맞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진술 등이 오롯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김완술 / 당시 전북대 학생]

"이세종의 사인과 관련해서 학생회관 추락 이전에 군인들의 구타에 의해서 사망 가능성이 훨씬 높다.."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이 보고서는 민중항쟁이 광주를 넘어 전국적인 항쟁이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양윤신 / 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

"계엄군이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 은폐되고 조작되었는지까지도 밝혀야 하는.."


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오늘부터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념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추모식을 시작으로 사진 전시회, 전북 영화제 등이 이달 말까지 이어지면서 5.18의 진실을 찾는 여정이 계속될 전망입니다. 


MBC뉴스 이주연입니다.


영상취재: 강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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