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시론] 논어로 풀어본 윤석열과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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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1627~1705)는 오규 소라이와 더불어 《논어》 해석에 일대 혁신을 이루어낸 양대 산맥 중 한 사람이다.
지금도 한·중·일 3국 중에서 논어력(論語力)이 가장 뛰어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이 논어력 최고의 나라가 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을 꼽자면 두말할 것도 없이 앞의 두 사람 때문이라 할 것이다.
적어도 이 세 문장이 소논어라고 한 이토 진사이의 말 자체는 참으로 명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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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17세기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1627~1705)는 오규 소라이와 더불어 《논어》 해석에 일대 혁신을 이루어낸 양대 산맥 중 한 사람이다. 두 학자는 주희류의 논어 풀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해석을 추구했다. 지금도 한·중·일 3국 중에서 논어력(論語力)이 가장 뛰어난 나라는 일본이다. 한국이 그다음이고 중국이 가장 뒤처졌다. 대체로 중국은 문화혁명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논어력 최고의 나라가 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을 꼽자면 두말할 것도 없이 앞의 두 사람 때문이라 할 것이다.
명군(明君)과 직신(直臣)의 만남은 아닌 듯
이토 진사이는 매우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학이편에 나오는 세 문장은 단순한 서론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소논어(小論語)라고 밝혔다. 세 문장 안에 《논어》 전체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말이다.
첫 문장, '문(文)을 배워서 시간 나는 대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을 정말로[亦] 기뻐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文)이란 사람이 열정을 다해 일에 임하는 태도다. 글은 그중에서 작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때 문(文)은 문무(文武)의 문이 아니라 문질(文質)의 문이다. 문과 질은 사람을 볼 때 쓰는 핵심 용어였다. 문은 언행이고 질은 내면의 바탕이다.
필자가 볼 때 《논어》를 가장 잘 체화했던 조선 태종은 신하들을 평할 때 문질의 개념을 잘 활용했다. 태종 11년(1411년) 8월18일자 '태종실록'이다. 태종은 우정승 조영무(趙英茂)를 평해 이렇게 말한다.
"조영무는 질직소문(質直少文)한 사람이다."
과묵하여 소문(少文)이고 마음씀이 곧아서 질직(質直)이다. 그런데 문질 개념을 모르니 기존의 실록 번역은 "조영무는 본래 질박하고 솔직하여 학문이 적은 사람이다"라고 옮기고 있다. 문질 개념을 놓친 오역인 것이다.
문을 배워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신하보다는 임금에게 긴요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눈 밝음[明]을 길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직(直)은 신하의 덕목이다. 세 번째 문장,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속으로조차 서운해하지 않아야 정말로 군자다운 신하가 아니겠는가'에서 바로 속으로조차 서운해하지 않는 불온(不慍)이 바로 곧음[直]이다. 이 문장은 누가 보아도 임금보다는 신하에 해당하는 말이다. 사마천 《사기》 공자세가에 등장하는 공자와 노자의 만남에서 노자가 공자에게 당부한 것 또한 "남의 신하된 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도 이어진다. 유종지미(有終之美) 또한 신하로서 최고의 삶을 제시하는 말이다.
이로써 보자면 현재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보이고 있는 태도는 분명 곧다고는 할 수 없다. 노골적으로 서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태는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그 이유는 고스란히 두 번째 문장, "임금에게 뜻을 같이하는 벗과 같은 신하가 있어, 측근·근신들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원(遠)에 가서 백성들을 보고 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막 돌아와서 해줄 때 임금이 정말로[亦] 즐거워해야 그 곧은 신하[直臣=朋]는 다음에도 왕을 찾아 듣기 거북한 이야기일지라도 용기를 갖고 있는 그대로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 때 영부인과 관련해 우회적인 언급을 했다가 두 사람이 상당한 갈등을 빚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불역낙호(不亦樂乎)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이 세 문장이 소논어라고 한 이토 진사이의 말 자체는 참으로 명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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