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회고록 “김정은, 연평도 방문해 주민 위로하고 싶어 했다”

박민희 기자 2024. 5. 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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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발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는 “끔찍한 일…사과 받아야”
“트럼프, 솔직해서 좋았다…아베, 돌아서면 진전 없어”
2018년 9월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평양 사진공동취재단

“김 위원장은 지방에 가도 노트북을 늘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이메일로 소통하면 좋겠다고 했다. 언젠가 연평도를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2년 만에 낸 첫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3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2번의 북미 정상회담 등 숨가쁘게 진행된 외교의 막전막후 이야기를 밝혔다. 이 책은 17일 공개됐다.

2018년 5월26일 두번째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 집무실에 설치된 직통전화를 가동하자고 독촉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집무실에 일주일에 한두번 출근하고 대부분 지방을 다니기 때문에 이메일로 소통을 하자”고 해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고 문 전 대통령은 밝혔다. 하지만 “북한 쪽에서 보안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 계속 지연되다가” 결국은 이메일 소통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문 전 대통령이 그해 9월19일 평양을 방문한 뒤 김정은의 답방을 논의할 때 김 위원장은 제주도 한라산에 가보고 싶다는 뜻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이) KTX를 타보고 싶다고 해서 KTX로 이동하는 방안도 검토했다”면서, “한가지 뜻밖이었던 것은, 언젠가 연평도를 방문해서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이야기였다”고 회고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핵은 철저하게 자기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사용할 생각 전혀 없다”고 비핵화 의지를 누누이 절실하게 이야기했다고도 강조했다. ‘하노이 노딜’로 마무리된 북미 2차 정상회담 개최 장소를 두고, 애초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기차로 이동할 수 있는 판문점 또는 몽골을 바랐고, 그것도 어렵다면 미국이 북한 해역에 항공모함 같은 큰 배를 정박시켜 회담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고 공개했다. “(첫 북미 정상회담을 하려고) 싱가포르에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 비행기를 이용했는데, 정말 내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미국의 요구로 하노이에서 2019년 2월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은 결렬되었고, 북핵 문제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실기한 것”이라며 아쉬움을 밝혔다. “그런 국면에서 우리가 좀더 뭔가 상황을 타개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물론 남는다”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이 매번 ‘우리 민족끼리’라고 하면서도 북미대화에만 매달리면서 남북관계를 종속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2020년 6월16일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대해서는 “진짜 끔찍한 일”이라며, “그 일은 나중에 언젠가 다른 정부가 북한하고 대화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사과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주요 외교 상대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무례하고 거칠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는 그가 솔직해서 좋았다”고 평가하면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 한미관계가 돈독했다”고 강조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과다해서 오랫동안 협상에 진전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협상 중단을 지시하기까지 했다”고 회고하면서도, “그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나 양국 관계에 어려움이 생긴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하노이 노딜 이후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나중에 내게 후회하는 말을 하며 미안해 했다”면서 “자신은 (김정은의 제안을) 수용할 생각이 있었는데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아주 강하게 반대했고,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볼턴에게 동조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고 했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EPA 연합뉴스

반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 대해서는 “만나는 순간에는 좋은 얼굴로 부드러운 말을 하지만 돌아서면 전혀 진전이 없었다”며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재임 후반기 일본의 수출 규제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해결 방안을 제시했으나 일본 총리실에서 모두 거부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실무자 선에서는 긍정적인 논의와 의견 접근을 보이다가도 결국 총리실로 올라가면 요지부동 완강하게 거부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그만큼 아베 총리는 이 문제를 우경화된 시각으로 다루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버린 현 정부의 과도하게 이념적인 태도가 우리 외교의 어려움을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의 도발이 걱정이지만, 우리 정부의 과한 대응, 무엇보다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도 대화를 통해 위기를 낮추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논란에 대해서도, “보수는 민족을 중시하고 공동체를 중시하고 애국을 중시하는 건데, 그런 가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이 홍범도 장군”이라며 “이런 분들을 예우하지 않고 도리어 폄훼하고, 세워져 있는 동상을 철거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외교가 “균형외교에서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다고 자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관계가 훨씬 위험해진 현실에 대해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면서 남북 간 대화의 구도 자체가 달라졌다”면서도, “절박하고 문제를 빨리 풀어야 되는 것은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도해서 남북대화를 하고 그것을 통해서 북미 대화까지 이끌어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고록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연세대 교수)이 질문을 던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답하는 형식이다. 최 전 차관은 2023년 5월 문 대통령의 제안으로 회고록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각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판매를 시작했는데, 현재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위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2018년 9월20일 백두산 정상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함께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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