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야후 사태와 기술 민족주의[IT 칼럼]

2024. 5. 1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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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에 있는 라인야후 계열 한국법인 라인플러스 본사에서 직원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기술 민족주의의 피해자였다. 중국의 IT 공룡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기도 했던 그가 대부분 지분을 매각한 건 중국 정부의 강력한 빅테크 규제 때문이었다. 인터넷의 모든 데이터를 자국 안에 가두고자 한 중국의 규제가 아니었다면 엄청난 투자 수익을 알리바바로부터 거둘 수도 있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만나 5분 만에 수백억원대 투자를 결정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그는 초라하게 알리바바와 결별하고 말았다. 중국 정부에 질렸다는 후문도 뒤따랐다.

기술 민족주의에 질리기까지 했던 그가 이번엔 가해자로 돌변했다. 일본 정부를 등에 업고서다. 세계 최고의 AI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2019년 네이버와 손을 잡았던 그가, 냉혈한처럼 표변했다. 라인야후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A홀딩스’의 지분을 내놓으라고 일본 정부와 함께 네이버를 압박하고 있다. 몇 번의 일본 사용자 데이터 유출 사고가 빌미가 됐다. 하지만 2018년 개인정보 유출로 페이스북에 내려진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보다 수위는 훨씬 높다. 기술 기업 간 비즈니스 관점만으론 해석이 어려운 대목이다.

전 세계는 지금 기술 민족주의의 부상을 다시금 목도하고 있다. 미국 하원이 지난 3월 틱톡 금지법을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키면서, 미국발 기술 민족주의는 노골화하는 중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 산업 보조금 정책 등 최근 발표되는 일련의 기술 정책들은 안보를 명분으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 특유의 국가주의적 접근의 산물이다.

일본 정부도 이 흐름에 올라타려는 분위기다. 그 표적에 한국 기술 기업 네이버가 올려졌을 뿐이다. 미·중 관계와 달리 한·미·일은 세계정치 지형 내 동일 이념 블록으로 묶여 상호 안보 협력의 파트너로 인식됐다. 하지만 기술 민족주의는 동일 이념 블록 안에서도 얼마든지 발원하고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번 라인야후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이는 기술이 세계정치 지형의 상자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새삼 상기시킨다. 글로벌 테크기업에 의한 자국민 개인정보 데이터의 월경 문제, 방대한 규모의 허위조작정보 확산과 선거 개입, 랜섬웨어 등을 통한 사이버 공격의 고도화는 기술에서 비화한 고도의 지정학적 외교 문제다. 라인야후 사태를 1980년대부터 반복돼온 기술 민족주의, 기술 세계주의의 글로벌 차원의 주기적 변동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모든 인류에게 기술의 혜택을 보편적으로 제공하겠다는 ‘기술 세계주의’가 왜 허상일 수밖에 없는가도 이번 사태는 증명하고 있다. 미국은 그들이 압도적 기술 우위를 지니고 있을 땐 ‘기술 세계주의’를, 그렇지 않은 때엔 ‘기술 민족주의’를 교묘하게 활용해왔다. 일본 기업과 정부는 그런 미국의 모순적 태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1986년 일본 후지쓰의 페어차일드 인수 포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젠 일본 정부가 동일 이념 블록 안에서 그러한 접근법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기술 세계주의가 퇴조하고 다시 기술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기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기술은 세계정치와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되기도 어렵다. 이 단순한 진실 앞에 기술개발자들은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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