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결정? 신경 안 썼다" 무심한 전공의들…남은 의사는 '녹다운'
법원이 의대생·전공의·의대 교수 등 18명이 낸 '의대 증원·배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했지만, 의료현장의 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전공의의 상당수는 복귀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올해까지 의료공백이 지속될 것이란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피로 누적과 환자 안전 등을 이유로 의대 교수가 휴진·사직을 실제 실행할 가능성도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돼 '의료대란' 사태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사직 전공의 A씨는 17일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사실 법원의 결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며 "대부분은 정부가 의대 증원 백지화를 포함해 전공의가 제시한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을 병원 복귀 등 의사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A씨는 "설령 법원이 신청을 인용했어도 정부가 항고한다고 했기에 전공의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 것"이라며 "동료들도 나도 병원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의대생들 역시 다수가 휴학·수업 거부 등 종전과 동일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균관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TF(태스크포스)는 법원 결정 이후 성명을 내고 "집행정지가 기각됐다고 졸속적이고 비과학적인 정부 정책에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법정에서의 판단과 무관하게 초지일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증원의 전면 백지화, 의정합의체를 통한 의료정상화 구축의 기반이 마련되기까지 휴학·휴학 미수리 기간 전공 수업 거부에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법원 결정으로 3개월간 지속된 '의료대란'의 마침표가 찍힐 것이란 정부의 기대와 달리 의료 현장은 암울한 분위기다. 전공의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은 체력적·정신적 한계에 직면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대·서울아산병원 등 '빅5' 병원의 전임의 계약률은 70%를 넘어섰고 전공의도 지난 9일 이후 20여명이 복귀했지만, 여전히 환자를 온전히 돌보기엔 역부족이다.
의대 증원에 손을 들어준 사법부의 판단에도 전공의·의대생은 물론 의대 교수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15일 온라인 총회 후 "법원이 각하·기각 결정할 경우 장기화할 비상 진료시스템에서 '근무 시간 재조정'에 대해 깊이 있게 상의했다"며 이미 추가 진료 축소를 언급한 상태다. 지금처럼 개별적으로 주 1회 휴진하는 것부터 '1주일 휴진'을 단행하는 방안 등을 모두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근무 시간 조정은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 환자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게 의사들의 입장이다. 서울 지역 대학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A 교수는 머니투데이와 만나 "하루걸러 당직을 서며 피로가 극에 달했다.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전문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 3~4년 차 전공의 일부가 복귀할 수는 있겠지만 저연차들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대부분이 쉬겠다고 한다. 올해 내로 의료공백 사태가 수습되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환자 중증도가 높아 의사의 즉각적인 판단·처치가 필요한 대학병원은 전공의의 빈자리를 진료 보조(PA) 간호사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A 교수는 "당직 근무 등 현재 상황이 힘든 게 뻔하다 보니 연봉을 전보다 2배 가까이 올려도 전문의를 구하기가 힘들다"며 "문만 열어두고 의사가 부족해 응급·중증 환자를 받지 못하는 대학병원이 서울에서도 속속 생기고 있다"고 걱정했다.
법원 결정으로 정부가 의료 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전공의·의대생·의대 교수들의 결속력은 한층 더 단단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법원 결정 직후 연 브리핑에서 언급한 "전공의는 국가 자산"이라는 표현도 의사들의 반감을 샀다.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대한의학회 부회장)는 자신의 SNS에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면허 박탈, 법정 최고형, 사직서 수리와 임금 지급 금지, 취직 금지 등 수없는 폭언을 했다"며 "(이런) 협박을 보면 좋은 의미의 자산일 수가 없다. 국가의 노예로서의 자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작이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비는 이날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결정에 대한 공동 성명문을 내고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은 향후 공공복리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며 "사법부의 결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관치 의료를 종식시키고 의료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장해 온 모든 행위를 멈추게 할 것"이라고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한 서울지역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과 교수 휴진에 따른 경영난이 병원을 넘어 약국·제약사·의료기기 등 관련 업계로 확산하고 있다"며 "정부가 수가 인상 등 간접 지원이 아닌 전문의·간호사 인건비처럼 실효성 있는 직접적인 지원책을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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