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개발한 AI는 특허권자가 될 수 있을까’…AI가 불지핀 특허 논쟁

이종섭 기자 2024. 5. 1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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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이 인공지능의 발명자 인정 여부에 관해 지난해 진행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특허청 제공

인공지능(AI)은 발명자가 될 수 있을까. 국내 법원의 판단은 AI는 발병자가 될 수도, 특허권을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단, 아직까지 그렇다는 얘기다. 특허당국은 지금 이 문제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17일 특허청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전날 미국 AI 개발자 스티븐 테일러가 특허청을 상대로 낸 특허출원 무효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테일러는 앞서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DABUS’가 식품용기 등 2건의 새로운 발명을 해냈다며 전세계 16개국에 특허출원을 했다.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로 특허청은 특허출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테일러는 특허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6월 서울지방행정법원은 “특허법 문헌 체계상 발명자는 발명한 ‘사람’으로 명시돼 있고, 이는 자연인만을 의미하는 게 분명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이에 테일러 측이 항소했지만 2심 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테일러의 특허 신청은 해외에서도 논란에 불을 지폈다. 미국에서는 ‘자연인만 발명자로 인정한다’는 이유로 연방대법원에서 테일러의 소송이 최종 기각됐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2심까지 특허 불인정 판단이 내려져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호주에서는 테일러가 1심에서 승소했으나, 항소심에서 패배한 뒤 대법원 판결이 확정돼 특허를 인정받지 못했다.

독일 연방특허법원에서는 ‘자연인만 발명자로 인정하되 발명자를 기재할 때 AI에 대한 정보를 병기하는 것까지는 허용한다’는 판결이 내려져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AI를 발명자로 한 테일러의 특허가 인정된 나라는 없다.

국내 특허법은 현재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를 “발명을 한 사람 또는 그 승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발명자가 사람이 아니면 특허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테일러의 특허출원으로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은 나라 안팎에서 다양하게 진행중이다. 특허청도 소송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장기적으로 AI를 발명자 또는 특허권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를 놓고 심도있는 논의와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AI의 발명자성 인정에 대한 일반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도 수렴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AI의 발명자성 인정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다. 2021년 특허청이 6차례에 걸쳐 진행한 전문가 논의에서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 AI는 발명의 도구일뿐이고,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발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해 진행된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도 일반 국민의 70%는 AI를 ‘발명 파트너’로 인정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전문가 그룹에서는 65.8%가 ‘AI는 단순한 발명 도구’라고 답했다.

특허청은 이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국제적 논의가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주요 5개국(IP5, 한국·미국·유럽·일본·중국)이 참석한 특허청장 회의에는 ‘AI 발명자 관련 법제 현황과 판례 공유’를 의제로 제안해 승인이 이뤄졌고,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리는 IP5 특허청장 회의도 해당 안건이 논의된다.

특허청은 “현재 주요 국가 법원은 AI의 발명자성을 인정하고 않고 있다”면서도 “AI가 수개월이 걸리던 반도체칩을 6시간만에 완성하거나 신약 후보물질을 신속히 발굴하는 등 사람이 하던 기술개발을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AI의 발명자성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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