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긴 장에 비벼먹는 국수’, 무슨 요리인지 맞혀보세요 [말록 홈즈]
[말록 홈즈의 플렉스 에티몰로지 19]
“아~ 볶은 춘장에 비벼 먹어서 작장면(짜장면)이구나!”
바로 이렇게 떠올리시는 분이 많을 텐데요. 정작 중국에는 ‘춘장’이란 소스가 없습니다. 우리가 ‘춘장’으로 알고 있는 검정색 장의 원래 이름은 ‘첨면장(甜面酱: 달콤할 첨, 밀가루 면, 소스 장)’입니다. 중국의 첨면장은 갈색인데, 우리나라 춘장은 까맣습니다. 첨면장이 발효숙성되면 점점 색이 거무스름하게 짙어지는데, 우리나라 춘장은 ‘시각적 있어빌리티’를 높이려고 캐러맬 색소를 넣어서 처음부터 검다는군요.
그런데 첨면장의 이름이 춘장이 됐냐구요? 지금은 중식당 기본 반찬으로 양파랑 춘장이 차려지는데, 예전엔 썬 대파랑 검정색 첨면장이 나왔답니다. 화교 중식당의 직원들은 그 기본세트를 ‘충찌앙(葱醬: 파 총, 소스 장)’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한국인 손님들은 그 장의 이름이 춘장이라고 오해해 들리는 대로 불렀고, 급기야 화교 가문이 세운 영화식품에서 사자표 춘장을 출시해 반 세기 넘게 짱 먹고 있습니다. 사바나의 제왕은 사자고, 춘장업계의 제왕은 사자표입니다. 청정원, 해찬들, 샘표 다 게임이 안 됩니다.
20세기에 태어난 한국인들에게, 짜장면처럼 애틋한 음식도 드뭅니다. 생일, 졸업식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제 생일은 여름방학이 질주하는 7월말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서 케잌을 자르고 짜장면을 먹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럴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열 살 생일날, 그날이 내 생일이란 걸 식구들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방 소도시의 변두리 뒷골목에 있던 공동화장실 쓰는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엄마는 몸살로 누워 계셨습니다. 가지고 놀 장난감도, 함께 놀 친구도 없던 ‘없는 집 막내아들’은 빈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땅따먹기를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친구 황쿠쿠(17화 주인공)가 다녀갔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생일이라 파티하는 줄 알고 왔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이웃집 중학생 누나를 불러 500원짜리 동전 세 개를 주셨습니다. 형이랑 저를 데려가서 짜장면을 사주라고요. 엄마는 아프고, 우리집은 가난하고, 내 인생은 거지 같은데, 짜장면은 왜 그리 달큰하고 쫄깃하던지. 면발 사이로 씹히던 비계 달린 돼지고기 조각은, 왜 그리도 야속하게 빨리 녹아버리던지.
국민학교 졸업식 때 엄마랑 둘이 짜장면집에 갔습니다. 돈 좀 있는 집 아이들은 고깃집으로 갈비를 먹으러 갔고, 중국집 안에도 탕수육이랑 첨 보는 요리를 시키는 테이블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참 좋았습니다. 8개월 만에 먹는 짜장면이었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짜장면 한 그릇만 시키셨습니다. 아침을 늦게 드셔서 배가 고프지 않으시다더군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혼자서 짜장면을 꾸역꾸역 욱여 넣었습니다. 제 미래가 시커먼 짜장처럼 어둡고 음울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짜장면이 맛없었습니다.
중학교 졸업식 땐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집은 와해됐었거든요. 굶었습니다. 창자가 들러붙는 따끔함을 견디며, 전자오락실에서 그날이 빨리 꺼져버리기만 기다렸습니다. 시골 읍내에 어둠이 내리고, 같이 있던 친구들은 하나 둘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허기와 피곤에 졸음이 쏟아져, 아무도 없는 집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동네 슈퍼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2백원짜리 식량을 한 개 샀습니다.
“짜라짜자짜~ 짜파게티~”
그날은 뭐라도 짜장 비슷한 냄새 나는 걸 먹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게 내 삶은, 고독에 조금 서둘러 익숙해졌나 봅니다. 괜찮아요, 대학교 졸업식날엔 엄마랑 형이랑 중식 코스 먹었습니다. 추가로 삼선짜장도 시켜 싹싹 비웠는걸요.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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