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K팝 시상식, 무엇이 문제인가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4. 5. 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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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가요 행사 연간 20여 개 난립해 부작용 초래…반대 성명까지 나와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최근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에서는 무분별하게 개최되는 K팝 시상식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또 올바른 시상식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음악산업발전을 위한 음악 시상식 개선 협의체'를 출범했다. K팝 시상식의 무엇이 이런 논란을 만들었을까. 

현재 국내에서 한 해에 열리는 시상식 혹은 가요 행사는 무려 20개가 넘는다. 미디어, 협회, 단체 등이 주관하는 이들 행사는 초창기 그 숫자가 몇 개 되지 않았다. 한 해를 정리한다는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을 때만 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오히려 아티스트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한 해 성과를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양적으로 팽창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과 행사도 많아졌다.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10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24 한국 방문의 해 기념 K·Link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이 콘서트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불편하고 부담스럽지만 출연 거부 어려워  

기획사들 입장에서도 시상식 참여는 그만한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일로서 큰 부담이 됐다.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해외 투어나 해외 방송 출연도 많아졌다.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의 경우,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여러 스태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무대 준비를 위해서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선 적어도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투어 등의 시간을 빼서 여러 시상식에 참석하는 유명 아티스트들의 경우에는 그 자체로 기회비용이 될 수밖에 없다. 음반 제작사, 배급사 등이 모인 음콘협에서 K팝 시상식의 무분별한 개최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고, 이에 대해 가요계 전반에서 공감의 목소리를 낸 이유다. 

어쩌다 시상식 및 가요 행사가 이토록 늘어나게 된 것일까. 사실 음콘협에서 주최하는 써클차트 뮤직 어워즈가 시작됐던 2011년까지만 해도 이런 행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매해 말에 치러지는 지상파 3사 가요행사와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MAMA 어워즈, 한국대중음악상, 멜론 뮤직 어워드, 써클차트 뮤직 어워즈 정도가 주요 행사였다. 

하지만 2016년부터 거의 매해 하나씩 시상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K팝의 글로벌 위상이 생겨나던 시점과 맞물린다. 이때부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K팝 시상식이 열렸다. 위상이 높아져 이를 치하하는 다양한 시상식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이들 시상식이 본질을 벗어나 비즈니스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개최된 시상식의 경우 수익 극대화를 위해 현지 물가와 맞지 않는 티켓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필리핀에서 개최된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의 VIP 티켓이 약 59만원에, 또 올해 1월 태국에서 개최된 서울가요대상 VIP 티켓이 약 26만원에 판매된 사례가 있다. 필리핀과 태국 평균 1인 연간 소득이 각각 600만원, 1000만원 수준이라는 걸 생각하면 과도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인기투표를 통해 시상하는 특별상 같은 부문을 유료로 진행하는 등 지나치게 팬심을 이용하는 수익사업 또한 문제로 지목되었다. 결국 돈벌이로 전락한 시상식이 K팝에 대한 혐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용도 만만찮고 아티스트들이 겪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K팝 산업 전체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어째서 기획사들은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건 주관사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시상식들 대부분은 기획사들과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나 협회, 단체들이 주최하고 있다.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기획사에 대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이들 행사를 거부하기가 어려워진다. 언론사가 주관하는 경우, 행사 거부는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보복성 기사가 나올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된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시상식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언론사나 협회, 단체 역시 할 말은 있다. K팝 산업 전반에서 이들이 해온 역할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사의 경우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다양한 부대사업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 내몰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공생의 관점에서 자신들이 해온 역할만큼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인데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몇 개 시상식 정도에 머물 때 가능한 이야기다. 지금처럼 우후죽순 껍데기만 다를 뿐 내용은 사업에 가까운 시상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생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팬덤 입장에서도 졸속 사업으로 추진된 시상식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온전히 아티스트들에게 막중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치러진 시상식은 각종 사건·사고를 낳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월 열린 한터뮤직어워즈에서는 미숙한 진행으로 인해 팬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많은 인파로 인해 제때 화장실에 가지 못하면서 분뇨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또 2023년 가요대전에서는 위조 티켓이 판매되기도 했고, 방송 사고는 물론이고 아티스트 추락 사고까지 발생했다. 이런 사건들은 K팝 산업 자체에 대한 이미지를 추락시킬 수밖에 없다. 

성명을 발표하고 올바른 시상식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음콘협이 중심이 돼서 출범한 시상식 개선 협의체에서 한목소리로 나온 건 일단 한 해 치러지는 시상식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음콘협은 이번 성명을 발표하며 협회에서 개최해온 써클차트 어워즈 개최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했다. K팝 시상식 난립에 대한 반대 의견을 행동으로 먼저 보인 것이다. 협의체에서는 시상식 자체를 없앨 수는 없으니 2년에 한 번 치르는 방식으로 한 해 치러지는 시상식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것도 시상식 주관사들의 상황과 입장차를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음악산업 발전을 위한 음악 시상식 개선 협의체 출범식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제공

"시상식 줄이고 권위 높여야"  

시상식을 하면 돈이 된다는 식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는 역시 비즈니스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티스트와 기획사들이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데도 출연료가 없거나 최소 비용으로 집행돼 이익이 주최사에 돌아가는 관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 일종의 '표준계약서' 같은 걸 만들어 제대로 된 비용을 들여야 시상식이 가능하다는 걸 인지시킨다면 자연적으로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시상식은 줄어들 거라는 이야기다. 

이른바 'K팝 그래미' 같은 K팝을 대표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시상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모두가 동감했다. 미디어, 협회, 단체가 하나로 뭉쳐 국내에서도 K팝을 글로벌하게 대표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시상식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참여하는 주관사들이 이익도 나눌 수 있다면 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큰 그림이다. 이상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지만 꿈꿔볼 만한 대안이 아닐 수 없다. K팝의 종주국으로서 꼭 필요한 시상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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