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달려도 괜찮다"는 로봇의 위로, 사람을 울리다[알쓸공소]
천선란 작가 동명 SF 소설 무대로
국립극단, 로봇과 인간의 교감 강조
서울예술단, 남녀노소 즐길 작품으로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로봇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관객을 울리고 있습니다. 천선란 작가의 SF 소설 ‘천 개의 파랑’이 연극에 이어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뮤지컬) ‘천 개의 파랑’은 지난 12일부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입니다. 국립극단은 이보다 앞선 지난달 16~18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동명의 연극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천 개의 파랑’은 경마 기수로 제작된 휴머노이드 로봇 ‘콜리’이 주인공인 작품인데요. 콜리에게는 실수로 학습 칩이 삽입돼 1000개의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 소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콜리를 통해 바쁜 일상에서 행복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경주마 ‘투데이’의 부상으로 떨어져 고장이 난 콜리가 로봇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 연재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로봇과 인간의 교감 방점 둔 연극, 로봇 배우 ‘눈길’
연극은 실제 로봇을 콜리 역으로 활용했습니다. 국립극단 74년 역사상 최초의 로봇 배우인데요. 얼굴에 설치된 LED 창을 통해 표정을 보여줘 흥미로웠습니다. 팔과 손목, 목 관절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교감하는지를 무대에 선보였죠. 다만 완전한 로봇은 아니었습니다. 반자동 퍼펫 형태로 하반신은 함께 콜리 역을 맡은 배우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로봇은 아니어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원작의 감동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드라마 강조한 뮤지컬, 짠한 눈물에 선물 같은 에필로그
연극과 달리 뮤지컬은 보경과 은혜-연재 자매의 이야기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1막의 경우 이들이 어떤 아픔을 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인물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담은 만큼 연극보다 드라마가 더 강해졌습니다. 2막에선 콜리와 연재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안락사 위기에 놓인 ‘투데이’를 살리려는 미션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경주에 나선 ‘투데이’와 콜리의 모습이 정말 뭉클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느리게 달려도 괜찮다”는 위로가 마음을 울립니다. 뮤지컬은 원작에는 없는 뮤지컬만의 ‘에필로그’도 있습니다. 짠한 감동 뒤에서 만나는 작은 선물 같은 장면입니다.
연극과 뮤지컬로 연이어 ‘천 개의 파랑’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작의 힘입니다. 연극도, 뮤지컬도 콜리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앞만 보며 내달리기만 하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을 느끼는 거야.”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천 개의 파랑’은 연극과 뮤지컬이라는 무대를 통해 한층 더 질긴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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