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란 … 문화는 파는 곳입니다 : 책방살구나무

이민우 기자 2024. 5. 17. 11: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리터러시+
2021년 문 연 책방살구나무
예약제로 즐기는 문화공간
주민과 함께하는 시, 영화제
누군가의 추억과 만날 수 있는 곳

예약제 서점인 책방살구나무는 2021년 문을 열었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 예술감독이던 이종일 대표가 만든 서점이다. 예약제인 만큼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고즈넉한 곳이다. 그렇다고 책방살구나무를 단순한 서점으로 규정하기엔 활동폭이 넓다. 시 읽기, 희곡 읽기, 영화제 등을 통해 주민의 연결고리를 자임하고 있어서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풍물패 예술감독이었던 이종일 대표는 2021년 폐가를 리모델링해 책방살구나무를 열었다.[사진=더스쿠프 리터러시]

삶을 살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휴식일 수도, 일상의 멈춤일 수도, 디지털 디톡스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 삶에 쉼표를 찍어볼 만한 서점이 하나 있습니다. 예약제로만 찾아갈 수 있는 서점 '책방살구나무'입니다.

경기 안성시 외진 곳에 있는 이 서점은 왜 자신의 이름이 '책방살구나무'인지 너무나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논과 밭을 넘어 커다랗게 서 있는 살구나무 앞에 있으니까요. 한옥 폐가를 수리해 만들어서인지 서까래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농구장보다 살짝 작은 정원과 살구나무 한 그루, 초등학교 교실만 한 책방을 온전히 혼자 누릴 수 있습니다. 예약제니까요.

책방살구나무는 안성시립 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에서 2년간 예술감독으로 일했던 이종일 대표가 직접 만든 서점입니다. 출퇴근길 눈여겨본 폐가 하나를 2021년에 사들여 리모델링을 한 것이 지금의 책방살구나무입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 책이 가득한 책장과 릴 축음기가 있습니다. 이 대표의 손때가 묻은 극본과 연출작품, 그리고 문학을 다룬 책들이 가득한 공간에 앉아 볕을 쬐고 있으면 한적한 정원에 내려온 기분이 듭니다. 삶의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테이블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논과 밭,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전국구 공연단체 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의 이름을 딴 바우입니다.

이 대표는 이곳을 일종의 문화 베이스 캠프라고 이야기합니다. 책방살구나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문화를 전파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1년에 두번 영화 상영회를 열고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시 낭독회도 개최합니다.

몇몇 주민은 희곡을 직접 써보기도 하는데, 매주 금요일 열리는 '희곡 읽기'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인근 평택시부터 조금 멀리 있는 성남에서도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옵니다. 개개인의 쉼표와 같은 이 서점은 그렇게 주민과 주민을 잇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이곳에서 1시간 남짓 책을 읽다가 이 대표에게 책방살구나무의 일화 하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중년의 여성 손님이 찾아와 책을 읽지도 않고 안쪽 방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그 중년의 여성은 이 대표에게 찾아와 자신이 이곳에 살았었다고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 둘과 함께 살았다는 이 집에서 그는 결혼까지 해서 아이를 낳았고 첫아들을 낳은 기념으로 심은 나무가 바로 이곳의 살구나무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는 이 이야기를 듣고 살구나무의 나이가 28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이 집을 리모델링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답니다.

[사진=더스쿠프 리터러시]

왜 폐가가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십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누군가의 삶과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이런 경험이 한 걸음 더 나가 지역사회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한참을 볕이 잘 드는 책상 앞에 앉아 밖을 바라보다 노을이 질 무렵 서점을 나왔습니다. 아직 살구나무엔 잎이 돋지 않았지만 서점은 사람들과 사람들의 인연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습니다.

서점에는 방문한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쪽지를 남기는 수첩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혹은 친구들과, 혹은 홀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점에 앉아 있어도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은, 예약제 서점이어서 사람들이 없는데도 적막하지 않은 것은, 이곳을 살았던 혹은 거쳐갔던 수많은 사람과 책방살구나무가 연결돼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이 난다면 훌쩍 도시를 떠나 책방살구나무를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