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고난도 경제 사건 증가, 판·검사 증원 절실”

2024. 5. 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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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이뤄져야 하지만 대관업무 제한
현직 판·검사 “인원 부족, 증원 절실”
신중론도 있어...수사권조정 등 합의 선행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새로 임명된 판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달 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임명장을 받은 신임 검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

판·검사 증원을 통한 수사와 재판 지연의 해소는 사법당국의 숙원 과제다. 그래서 법관 또는 검사 증원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호소하고 있지만 상황이 순탄하진 않다. 법조계에선 “고난도 경제사건의 증가로 재판에 어려움이 많다”며 “증원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희대 대법원장,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판·수사 지연 해소를 위해선 법관·검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월 기자간담회에서 “사법부의 최우선 과제는 법관 증원”이라며 “재판 지연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족한 법관 수”라고 강조했다. 박성재 법무부장관 역시 전국의 고·지검장들과 3차례 간담회를 진행해 “(수사 지연 해결을 위해) 검사 증원, 경력 검사 선발 등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하진 않다. 판·검사 정원은 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국회 설득이 쉽지 않다. 증원 설득 작업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숙원 사업이지만 쉽지가 않다”며 “기획재정부 측에 상황을 설명하고, 일일이 설득하는 것 외엔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이미 2차례 발의됐지만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29일까지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법관 증원과 검사 증원이 연계돼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여당은 ‘법원과 검찰은 대등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법관과 검사 증원이 동반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검사 증원에 반대한다.

일선 판·검사들은 증원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일반 민·형사 소송 증가세도 가파르지만 무엇보다 기술 유출, 대규모 금융 범죄 등 고난도 사건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현직 판사는 “라임펀드, 옵티머스펀드 사태와 같은 대규모 금융 사건은 물론 전세사기, 대규모 다단계 투자 사기 등 다수의 서민과 관련된 경제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은 쟁점이 많아 심리 부담이 큰데 전담 부서를 추가하기에는 인원이 부족하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고발·통보한 불공정 거래 사건은 총 104건으로 전년(81건) 대비 28% 이상 증가했다. 증선위가 고발한 사건은 검찰 수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지는데, 증선위 조사와 검찰 수사를 거쳐도 쟁점이 많아 재판이 길어지기 일쑤다.

일례로 8개 상장사의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지난해 5월 기소된 라덕연 씨에 대한 1심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라씨 사건의 경우 장외 파생상품인 CFD(차액결제) 거래를 악용한 사례다. 통상적인 통정매매 방식과 유사하지만 원금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CFD 거래 구조의 복잡성, 주가 상승장과 폭락장을 구분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라씨의 변론 전략 등이 맞물리며 재판이 길어지고 있다. 라씨는 1년이 넘게 재판을 끌다 14일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중점검찰청을 지정하고 전문 합동수사단 등을 꾸린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인력은 제자리다. 중점 검찰청은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곳이다. 서울서부지검(의약품), 울산지검(산업안전), 서울남부지검(금융) 등 전국 11개 지방검찰청이 해당된다.

한 현직 검사는 “전문성 강화를 위해 설치된 수사 부서인데도 사건 수에 비해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합수단의 경우 단장인 부장검사를 포함해도 검사가 6명에 불과하다. 서울남부지검의 가상자산 범죄 합수단과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도 각각 7명, 6명에 그친다.

일각에선 판·검사 인력 증원에 대해 신중론도 나온다. 특히 검찰의 경우 야당 주도로 수사권한을 줄이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어 무턱대고 증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검찰이 현재처럼 수사를 이어간다면 당연히 증원해야 하지만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고 지적하며 “정치권에서 수사권 조정 논의가 계속되고 있어 당장 증원하기보다 수사권 관련한 부분을 합의하는게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경력이 내년부터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법조경력 7년은 변호사로서 충분히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간이다. 이 때문에 법관 정원이 늘어도 정작 인재가 법원으로 오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최근 대형 로펌서 근무를 시작한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판사 임용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변호사로 한창 활약할 시기에 배석 판사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점이 고민이긴 하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도 “법관 증원 시 이 부분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안세연·박지영 기자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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