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존립 흔들리는 빌라, 서민주택으로 부활할 수 있나

서미숙 2024. 5. 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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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연립 인허가, 2018년 7만여가구→2023년 1만5천가구 급감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기피 현상…수요 감소에 공급 위축·가격 하락
공시가 하락에 보증가입도 막혀…전문가 "서민 주거안정 순기능 살려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빌라로 불리는 다세대와 연립주택은 다가구와 함께 서민주택의 상징이다.

아파트로 주거 상향을 하기 전 젊은층과 서민들의 보금자리이고, 주거 사다리였다.

사회 문제화된 전세사기가 시장을 변화시켰다.

빌라가 주 수요층이던 청년과 신혼부부로부터 외면받고 빌라 임대인들은 보증금 반환과 보증 가입 문제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 사이 신규 공급은 급감하면서 존립이 위태롭다. 빌라가 다시 서민주택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서울시내 빌라 밀집지역 [연합뉴스 자료사진]

작년 빌라 인허가, 전년 대비 67%↓…올해도 2년 전보다 75% 줄어

국토교통부는 요즘 인허가·착공·준공 등 주택 공급통계 오류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집값 통계 조작 의혹이 해소되기도 전에 지난해 주택 공급 통계를 엉터리로 집계하며 또다시 통계 불신을 자초했다.

연합뉴스가 정부의 공급 통계 수정 전·후의 주택 유형별 수치를 비교한 결과, 지난해 아파트는 인허가 등 공급 물량이 당초 우려보다는 늘어난 반면, 빌라로 불리는 다세대·연립주택은 통계 정정 후에도 전년 대비 감소 폭이 상당했다.

지난해 빌라 인허가 물량은 통계 오류에 따른 물량(1만4천785가구)이나 통계 정정 후 물량(1만4천940가구)이 거의 같아 전년 인허가(4만5천858가구) 대비 무려 67.4% 감소했다.

지난해 빌라 준공 물량도 3만4천124가구에 그쳐 전년(4만7천622가구) 대비 28.3% 줄었다.

빌라는 집값이 상승기에 접어든 2018년의 경우 인허가 물량이 연간 7만1천872가구에 달했다. 작년 인허가 물량의 6.5배가 넘는 규모다.

이중 원룸, 투룸 등 1인 가구와 서민들이 거주하는 소규모 다세대가 5만9천652가구로 전체 빌라의 83%를 차지한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건설이 손쉬운 다세대 건축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2019∼2021년에도 빌라의 연간 인허가 물량은 5만∼6만가구를 웃돌았다.

특히 2020년 7월 말부터 시행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2법으로 전셋값이 단기간에 폭등하면서 높은 전셋값을 받아 대출금과 공사비를 충당하는 '무자본 신축'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곧 전세사기의 빌미가 됐다.

빌라 인허가 물량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2022년부터 하반기부터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공사비가 급등하기 시작한 데다, 금리가 인상되면서 빌라 신축 수요가 급감한 것이다. 이 시기에 사회 문제화된 전세사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세사기 주택이 아파트보다는 신축 다세대 등에 집중되면서 '빌라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빌라 시장만 보면 수요도 줄고, 공급도 감소한 최악의 상황이다.

올해도 빌라 공급은 늘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의 빌라 인허가 물량은 5천306가구에 그쳤다. 작년 동기 대비 42.8%, 2년 전 동기 대비 75% 감소한 것이다.

올해 1분기 아파트 인허가(13만2천308가구)도 전년 대비 17.8%, 2년 전 대비 26.6% 줄었지만, 빌라 감소 폭보다는 양호하다.

강남구 논현동의 한 중개법인 대표는 "금리 인상과 함께 공사비가 크게 오르면서 소규모 다세대·다가구들이 공사비가 덜 드는 상가·오피스 등 꼬마빌딩으로 재건축되고 있다"며 "저렴한 임대료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보금자리가 사라져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빌라 전세 매물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셋값보다 낮은 빌라 공시가격…보증가입 막히고 기피 현상 심화

빌라 기피 현상과 공급 감소는 사회 곳곳에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빌라의 주 수요층이던 젊은 세대들이 정부의 신생아 특례대출이나 청년·신혼부부 대상의 정책자금을 저리로 대출받아 빌라보다 안전한 아파트로 옮겨가며 아파트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5월 말 대비 지난 1년간 수도권 아파트 매매와 전셋값은 각각 1.13%, 4.60% 상승한 반면, 연립주택은 각각 0.56%, 0.57% 떨어졌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아파트 전셋값 상승세는 빌라 기피 현상으로 인해 아파트 전세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며 "특히 전세사기 피해자인 젊은층을 중심으로 가격이 높더라도 전세사기에서 비교적 안전한 아파트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빌라에서 아파트로 넘어오면서 보증금이 부족해진 임차인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전세자금 대출이 늘고, 일부는 월세로 바꾼 데 따른 것이다.

임대인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빌라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보증금을 일부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은 물론, 공시가격 하락으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이 거절돼 임대 놓기도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 성창엽 회장은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전세를 놓기 위해선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이 필수가 됐는데, 가입 기준(공시가격의 126%)이 까다로워 보증 가입을 퇴짜맞는 주택이 늘고 있다"며 "특히 올해는 빌라 공시가격이 크게 하락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문제가 임대인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빌라나 단독·다가구 등의 공시가격이 실제 매매가의 50∼60% 수준에 그치는데 반면, 빌라 전셋값은 공시가는 물론 매매가에 육박하는 경우가 많아 보증 가입이 불가한 주택이 더 늘었다.

연합뉴스가 전세사기 피해가 많았던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의 연립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분석한 결과, 화곡동 일대는 전년 대비 평균 2%, 인천 미추홀구 일대는 7%가량 공시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서구 화곡동의 W연립 전용면적 51.3㎡는 올해 공시가격이 1억3천100만원으로 작년(1억3천400만원)보다 2.2% 하락했다.

이 주택의 전셋값은 2022년 12월 3억200만원에 계약돼 당시 이 주택의 공시가격(1억3천800만원)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만약 2년 계약이 끝나는 올해 12월에 임차인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려면 임대인이 전셋값을 공시가격의 126%인 1억6천500만원 이하로 낮춰야 한다.

화곡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전세사기 문제가 터지고 빌라 수요가 감소한 데다 전세보증 가입이 어렵다 보니 빌라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보증 가입을 위해 보증금을 반환하면서 역전세 문제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피해보상'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2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한 주상복합건물 인근 주택 담장에 '피해보상' 문구가 적혀 있다. 이 건물은 인천 전세사기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이른바 '건축왕' A씨가 건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건물은 지난해 4월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돼 입주 예정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2023.4.27 tomatoyoon@yna.co.kr

전세사기 문제 있지만 서민 주거사다리 긍정 역할도…정상화 방안 찾아야

이 때문에 임대인들은 공시가격 하락으로 보증 가입이 더욱 어렵게 됐다며 가입 기준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성창엽 회장은 "정부가 임대인을 위한 역전세 대출을 해줬지만 다세대 등 빌라는 '방공제' 때문에 사실상 대출이 불가능한 무용지물이었다"며 "빌라는 임대용 상품인 만큼 보증 가입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다음 주 발표될 전세시장 안정 및 주택공급 활성화 대책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과 임대사업자가 의무로 가입해야 하는 전세보증금 보증의 주택가격 산정 기준을 개선할 방침이다.

전셋값보다 낮은 공시가격에 의존해 전세보증 가입이 좌우되는 문제가 있는 만큼 감정평가 방식으로 주택가격을 현실화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빌라 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도한 지원은 공급과잉 등 시장을 교란할 수 있지만, 빌라가 저렴한 전세주택을 공급하고, 서민 주거사다리 역할을 하는 순기능도 있는 만큼 적정 물량이 공급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올해(35만3천가구)보다 32%가량 감소한 24만가구에 불과하다.

서울은 올해 입주물량이 약 2만3천786가구로 작년(3만2천786가구)보다 27%가량 감소한 가운데 내년에도 올해 수준인 2만3천800가구에 그치며 공급 부족이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는 노후화된 단독과 빌라촌 정비사업을 할 때 주차장 등 아파트 수준의 편의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뉴빌리지' 사업을 추진 계획을 발표했지만, 공사비 급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공급이 얼마나 늘지 미지수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올해와 내년 입주물량 감소로 전세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며 "빌라는 건설 기간이 짧아 단기에 공급이 가능한 만큼 빌라 공급 시장을 정상화해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김규정 자산관리승계연구소장은 "빌라가 수요층이던 MZ세대들의 신뢰를 잃으면서 빌라 공급이 늘더라도 전세보다는 월세 위주의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안전한 보증금 반환과 청년의 월세 부담을 덜어줄 제도적 보완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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