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해류 타고 바다 건너 살 길 찾은 바오밥나무

박근태 과학전문기자 2024. 5. 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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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공동연구진 바오밥나무 기원 규명
2100만년 전 마다가스카르에서 출현
1200만년 전 인도양 환류 타고 아프리카 호주로 건너가
마다가스카르 건조 지대에서 자라는 바오밥나무 군락을 한 여성이 지나고 있다. /조앤 드 라 말라

전 세계에 많은 팬을 보유한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 텍쥐페리의 작품 어린왕자에는 눈에 띄는 나무 하나가 등장한다. 대다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나무들이 신뢰와 믿음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아단소니아속)는 유독 위험한 이미지로 나온다. 작품에서 나무는 어린왕자가 사는 작은 소행성 B612를 뒤덮고 그가 좋아하는 장미에 끝없이 위협을 가하는 악당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나무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보거나 사진으로라도 접한 사람들은 금세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잎이 나지 않는 건기엔 쭉 뻗은 두꺼운 줄기에 뒤죽박죽 얽힌 가지가 뿜어내는 이국적 모습은 흡사 누군가 장난으로 나무를 뒤집어 땅에 꽂은 것처럼 보인다. 바오밥나무은 실제 ‘거꾸로 된 나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 호주 북부에서 발견되는 바오밥나무는 인류 문화와 풍습, 현대 예술작품에 단골소재로 등장해왔다. 바오밥나무 경제권에 있는 국민만 10억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이국적인 외모처럼 나무 기원과 역사는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최근 국제 연구진이 바오밥나무가 오래전 해류를 타고 긴긴 여행 끝에 현재의 서식지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100만년 전 출현, 1200만년 전 현재 서식지로

'거꾸로 선 나무'와 '생명의 나무'로 알려져 있는 바오밥나무. / 영국 큐 왕립식물원

중국과 영국, 덴마크, 마다가스카르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 연구진은 16일(현지 시각) 바오밥나무가 약 2100만년 전 마다가스카르에서 처음 등장하고 나서 1200만년 전 바다를 건너 현재의 아프리카와 호주로 확산했다는 분석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바오밥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8종의 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한 종은 아프리카 본토 대부분에 서식하고, 6종은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한다. 또 다른 한 종은 멀리 떨어진 호주 북서부에서 발견된다. 과학자들은 바오밥나무가 처음 살던 곳과 현재 자라는 곳에 어떻게 도착했는지를 두고 수년간 논쟁을 벌여왔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이 나무가 아프리카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에 무게를 둬왔다.

중국과학원이 주도한 국제 연구진은 바오밥나무 8종 모두의 게놈(유전체) 서열을 분석한 다음 그 데이터를 사용해 나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분석했다. 조상이 언제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찾아내는 계통 분석에서 바오밥나무의 공통 조상은 약 2100만년 전에 마다가스카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뒤 다른 식물과의 경쟁과 고도, 온도, 강수량, 화산 활동과 같은 환경 요인으로 마다가스카르 전역에 새로운 바오밥나무 종들이 출현했다. 바오밥나무의 기원인 아프리카 남동쪽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는 생물 다양성의 중심지이자 특이한 동식물 군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중국과학원 우한 식물원 식물학자이자 이번 논문의 저자인 완타오 연구원은 “바오밥나무의 경우 마다가스카르의 매우 특별한 지리적 환경과 역사의 영향을 받아 종 다양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해류 타고 아프리카와 호주 대륙으로

바오밥나무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바다를 건너 수백~수천km 떨어진 대륙에 뿌리를 내리게 된 과정은 극적이다. 바오밥나무의 작은 씨앗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서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아프리카 본토와 동쪽으로 약 7000km 이상 떨어진 호주까지 떠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에 따르면 바오밥나무 중 2개 혈통은 현재는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멸종됐지만 아프리카와 호주에 새롭게 정착한 혈통이다. 완 연구원은 AP와 인터뷰에서 “대략 1200만년 전쯤 식물이 식생 뗏목을 타고 아프리카와 호주에 도착한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바오밥나무가 장거리 이동이 가능했던 이유를 해류 순환에서 찾았다. 나무 씨앗은 호주, 남아시아, 아프리카 동부 해안 사이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순환하는 해류인 인도양 환류에 실려 수천㎞ 떨어진 호주까지 쉽게 옮겨간 것으로 추정했다. 나무 씨앗은 마다가스카르를 지나는 해류를 타고 뗏목처럼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호주 해안까지 도달했다. 이 해류는 북쪽으로 모리셔스를 지나 서쪽 아프리카 해안가까지 흘러들었다는 분석이다.

바오밥나무 계통별 지리적 분포

◇공생 전략 활용해 생존

어려운 여정을 끝내고 아프리카와 호주에 도착한 바오밥나무는 지역마다 현지 환경에 적응하면서 독자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건조한 사바나 서식지에서 발견되는 바오밥나무는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꿀벌부터 새, 다양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야생 동물에게 먹이와 은신처를 제공한다. 다육식물인 바오밥나무는 넓은 줄기에 물을 저장하고 있어 건기에도 영양이 풍부한 열매를 맺는다. 연구진은 바오밥나무가 현지 동식물들과 상호공생 관계를 맺으며 세를 불렸을 것으로 봤다.

바오밥나무 꽃은 밤에 피는 데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달콤한 꿀이 과일박쥐와 나방을 포함한 야행성 수분 매개자뿐 아니라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 등 대형 영장류에 영양분을 공급했다.

과학자들은 바오밥나무가 수분매개자 역할을 하는 여우원숭이와 공생 관계를 발전시켰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일을 먹는 박쥐를 포함해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다른 동물들이 꿀을 찾아 밤에만 피는 바오밥나무 꽃을 찾았고 이 과정을 거치며 서식지를 확대했다는 분석이다.

연구에 참여한 앤드루 리치 영국 퀸메리대 교수는 “바오밥나무의 생존 전략 중 하나는 꿀을 먹는 대형동물을 활용한 것”이라며 “식물 가운데 이례적인 행태”라고 말했다.

호주에 뿌리내린 바오밥나무는 물로 가득 찬 속이 빈 원통형인 거대한 줄기를 가지고 있다. 호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나무 중 일부는 대형 소방급수차 5대에 해당하는 9만9900L 이상의 물을 머금고 있다. 영국 큐 식물원 리리어 레이치 연구원은 “바오밥나무는 대부분의 종이 높이와 지름이 거대하고 수천 년 동안 산다고 보고됐다”며 “뿌리 시스템도 거대하며 중요한 생태학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꾸로 선 나무'와 '생명의 나무'로 알려져 있는 아프리카 바오밥나무의 열매. /ICRAF

◇전설의 나무이자 슈퍼푸드 공급원

바오밥나무는 오랜 시간 인간에게도 유용한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열매는 가지에서 자연 건조되는 세계 유일의 과일이다. 6개월 동안 나뭇가지에 매달려 단단한 코코넛처럼 변형된다. 열매는 슈퍼푸드로 여겨지며 줄기는 밧줄이나 의류에 사용되는 섬유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건조한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귀중한 영양소와 약품이 되기도 한다. 열매에는 풍부한 비타민C가 있고 50% 이상이 섬유질이 차지한다. 또 과일 중 가장 높은 항산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에너지를 내거나 면역기능, 소화건강, 항노화에 효능이 있다고 확인됐다. 바오밥나무 잎은 먹을 수 있고, 줄기는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사바나 지역에서 바오밥나무 가까이에 집을 짓는 이유다. 아프리카인들은 이런 이유로 바오밥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부른다.

바오밥나무는 문화적 전통과 예술 작품에서도 두드러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이 놀라운 나무에 감탄했다는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2300년경의 고대 이집트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인들은 이 나무의 기괴하고 거대한 크기, 놀라운 수명, 다양한 용도에 매료돼 지구상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종 중 하나로 묘사했다.

아프리카에선 입과 입을 통해 전설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카푸에(Kafue)에서는 네 명의 아름다운 처녀가 나무를 그늘로 삼았고 그 나무가 그들과 사랑에 빠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지만 처녀들이 인간과 사랑에 빠져서 나무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나무줄기에 가두었고 지금까지 처녀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일부 바오밥나무 종은 소리가 나는데 이는 나무 속이 비어 있어 일종의 소리실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8종 중 3종은 멸종위기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바오밥나무 가운데 3종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WBG

수천 년을 사는 바오밥나무도 최근 기후 변화와 광범위한 삼림 벌채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종자의 확산자 역할을 하던 여러 종의 거대 여우원숭이는 약 1000년 전 사냥을 당해 멸종됐다. 또 바오밥나무를 둘러싼 거의 모든 숲이 최근 개발로 사라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6종의 바오밥나무는 모두 최근 2500년 동안 대부분 인간 활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2종은 놀라울 정도로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갖고 있어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회복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종도 더 널리 퍼진 사촌과의 교배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국제자연보존연맹은 이 바오밥나무 세 종을 멸종 위기에 처한 적색목록에 등재했다. 연구자들은 마다가스카르 가장 크고 유명한 자이언트 바오밥을 포함해 바오밥나무가 생각했던 것보다 멸종 위기에 처해 있을 수 있다며 더 많은 보존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리이치 연구원은 “인간의 개입으로 바오밥나무의 서식 환경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로 바오밥나무의 보존 상태를 재평가하고 잠재적으로 더 높은 위협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는 중국 우한 식물원, 영국 퀸메리대와 큐 왕립식물원,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대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생 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들어간 바오밥나무 삽화. /플리커

참고 자료

Nature(2024). https://doi.org/10.1038/s41586-024-074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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