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논란에도 ‘25만원 지원금’ 강공…거야의 ‘입법 포퓰리즘’ 신호탄

박나영 기자 2024. 5. 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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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내수 활성화 효과 미미”, 민주노총도 “고물가 시대에 포퓰리즘”
물가 자극하고 재정 건전성 위협…매년 3조원 드는 양곡관리법도 재추진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 문제가 표퓰리즘 논란을 일으키며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국민 1인당 25만원씩이면 13조원에 이르는 예산인데, 거대 야당이 실질적인 효과와 재정 건전성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은 채 대중 인기에만 영합해 정책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법 형태로라도 만들어 추진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 국민의힘은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한발 물러서 '선별적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민주당이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선택지'를 늘려 총선 공약을 강행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13조원이라는 돈을 (민생회복 지원금으로) 쓸 거면 그냥 돈 없어서 치료 못 받는 사람이나 진짜 사회적 약자인 사람들, 힘든 장애인들 도움이나 주지…." "정부가 올 초에 건설사 대출·부동산 PF 매입에 세금 '85조원'을 투입했는데, 이건 괜찮고 국민 1인당 25만원씩 13조원은 왜 안 되는 거죠?"

민생회복 지원금을 둘러싼 시민들의 반응도 극과 극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 등에는 전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는 것보다 사회적·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는 반응과 당장 주어진 지원금이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다는 주장 등이 엇갈리고 있다.

2023년 3월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66인, 찬성 169인, 반대 90인, 기권 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25만원 지원' 찬성 46%, 반대 48% 팽팽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4월29일~5월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정부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찬성 응답이 46%, 반대 응답이 48%였다. 진보는 찬성(63%), 보수는 반대(70%)로 기울었고, 중도는 찬반이 47%로 같았다. 이 같은 조사 결과로 미뤄볼 때 민심이 제대로 반영된 정책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셈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지원금이 소비를 더 끌어내 내수 경기 활성화로 이어질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소상공인과 대면서비스업 등 민생경제가 얼어붙자 2020년 5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14조3000억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어 총 4차례에 걸쳐 소상공인과 육아 부담 가구, 법인택시 기사와 고용 취약계층 등 코로나19 피해자를 중심으로 42조1000억원을 추가 지급했다.

하지만 당시 지급된 '긴급 재난지원금'의 효과가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는 분석은 이미 나와있다. 지원금의 상당 부분이 저축으로 이어지면서, 정작 소비 진작 효과는 미미했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12월 발표한 '코로나19 1차 긴급 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사용 가능 업종에서 재난지원금을 통해 증대된 카드 매출액이 정부가 투입한 예산 14조원의 26.2~36.1% 수준인 총 4조원 규모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당선자들이 5월1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채 해병 특검 수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KDI "인플레이션 안정 추세 교란" 지적

해당 보고서에서 김미루·오윤해 연구위원은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한 가구소득 보전만으로는 여행업, 대면서비스업 등 피해가 큰 사업체의 매출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피해 업종 종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 지원이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경제주체별 피해 규모에 대한 자료를 사전에 수집·분석함으로써 피해 계층을 신속하고 정밀하게 식별해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직접적인 피해 정도에 맞춰 소득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분석은 최근 내수 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피해 계층을 구체화해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지원해 봐야 정책 효과가 별로 없는 계층에 예산을 들이면 국가 재정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 상황이 정부가 '전 국민 지원금'을 쏟아내던 코로나19 시국과 유사한 정도의 위기 상황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KDI는 최근 '고물가와 소비 부진'이라는 현안 보고서를 통해 민간소비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연구진은 올 1분기에도 민간소비 부진이 이어지고 있지만 향후 수출 개선 등으로 실질 민간소비 여력이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 단기 부양책을 사용하면 오히려 인플레이션 안정 추세를 교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분석은 사실상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을 에둘러 반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노총도 앞서 "사상 초유의 고물가 시대에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고 민생을 운운한다"며 민주당 주장에 반대하는 논평을 이례적으로 냈다.

물론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배경에는 '고물가·고금리의 민생고'가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다. 통계청이 5월13일 내놓은 '1분기 지역경제동향' 자료를 보면, 올 1분기 전국 소매판매(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2022년 2분기부터 8분기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올 1분기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5개 시도의 소비가 1년 전보다 줄었지만 소비자물가는 전국의 모든 시도에서 올랐다.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내수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300석 가운데 108석 획득에 그친 여당 국민의힘의 참패는 당면한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데 대한 분노와 실망이 담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4월23일 여당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정무위 의원들은 가맹사업법과 민주유공자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을 단독으로 가결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거야 입법 독주로 정부 예산편성권 무력화"

그러나 문제는 민주당이 정책을 밀어붙이는 방식에 있다. 정부 경제 운용의 약점을 들춰내고, 추경을 이슈화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득이 될 수 있어도 수권 정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절반이 훌쩍 넘는 175석을 차지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무슨 법이든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를 발판 삼아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5월10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곧바로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세수 부족 등의 이유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자,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니 특별법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맞선 것이다.

개원도 하기 전에 위력정치를 선보인 것은 물론 위헌 소지가 큰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채은동 연구위원은 앞서 민생회복 지원금 관련 정책 브리핑을 통해 "추경을 통한 지원금 편성이 어려운 경우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한 1회성 지원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헌법상 우리나라의 예산편성권은 정부에 있다.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예산을 증액할 수 없고, 국회가 입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다.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만약 이런 식의 입법이 허용된다면 헌법이 보장한 정부의 예산편성권, 국회의 증액에 대한 정부의 동의권은 무력화되고 만다"며 민주당 특별조치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일회성 25만원이 반복되면 기본소득이 된다"고 지적했다. 소득과 무관하게 전 국민에게 현금을 주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소외계층을 더 돕는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총선 공약이었던 '25만원 지원'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압승을 가져다준 유권자에 대한 보답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이재명 대표의 지론인 기본소득제도와 맞닿아있다. 기복소득과 관련해서는 양당이 경제·복지를 바라보는 철학에 따라 의견이 나뉜다 해도 정부부채로 허덕이는 현시점에서는 적절치 않은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9년 우리나라의 정부부채가 6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상황에서 정부에 예산 청구서를 추가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이와 관련해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긴 것이 마치 이재명 대표의 포퓰리즘 덕분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앞날이 어둡다"고 진단했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유력 대선후보의 경제 과외교사로 호출되는 김 원장은 "경제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단기주의(Shortermism) 때문에 혼란을 겪으면서 악영향을 받는다"며 "돈을 뿌려주는 방식은 서민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더 나아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들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 주장대로 내수를 진작하고 어려운 서민을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민생지원금을 지급하려면 그 목적에 적합하게 그 범위를 조정할 수 있다. 또 정치적 목적이 아닌 민생의 지속적 수준 상승에 관심이 있다면 13조원 중 9조원은 공교육 정상화나 공적 보육시설 증대에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선택지 늘려 정부·여당에 공 넘긴 민주당

논란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의 선별 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5월14일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대로 발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차 확인하면서도 선별 지원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선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가 여당 내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도 아울러 고려할 것"이라며 "가계 소득, 재산 상황을 고려해 어려운 분에게 집중하자고 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13일엔 민주연구원이 "추가경정예산안 확보가 어려울 경우 환급형 세액공제 방식도 가능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위헌 논란이 커지고 국민은 물론 당 내부 분위기도 시원치 않은 데 대한 태도 변화라는 해석이 나온다.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다른 현안부터 해결해 나가자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발 물러서 공을 정부·여당에 넘긴 모양새지만, 국민의힘은 언론을 통해 당을 압박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5월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국민 70~80%를 선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했으나, 이 역시 전 국민에게 주자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고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경기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니만큼 여야가 합의된 도출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민주당은 '25만원 지원'과 관련해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양곡관리법의 후속 법률안을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후속 법률안은 쌀값이 일정 가격보다 폭락 혹은 폭등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거나 정부 관리 양곡을 판매해 쌀 농가 소득을 일정 수준으로 보장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연간 최대 3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도 야당 주도로 유사한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으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한 차례 불발됐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그림자라고 했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의미다. 175석을 거머쥔 민주당이 그림자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입법권 행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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