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없는 고래·자식 죽이는 멧새… ‘진화의 함정’ 때문입니다[북리뷰]

박동미 기자 2024. 5. 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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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수중 생물로 진화한 것은 무려 수백만 년 전의 일이다.

효율적인 헤엄을 도와주는 두꺼운 지방층, 추진력을 위한 꼬리지느러미, 수백 ㎞ 밖에서도 들리는 울음소리 등은 모두 진화의 결과물이다.

진화는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오히려 약점을 만들어내며, 상호 파괴적인 방식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

영국의 차세대 생물학자인 저자는 '불완전한 진화'를 이끈 자연의 결점을 다섯 가지 '갈등'을 통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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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앤디 돕슨 지음│정미진 옮김│포레스트북스

고래가 수중 생물로 진화한 것은 무려 수백만 년 전의 일이다. 효율적인 헤엄을 도와주는 두꺼운 지방층, 추진력을 위한 꼬리지느러미, 수백 ㎞ 밖에서도 들리는 울음소리 등은 모두 진화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아직도 고래는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할까.

진화는 시간의 흐름, 자연선택에 따라 환경에 최적화돼 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 그것은 이론적으로 부적합한 것을 제거하는 무한한 메커니즘인데, ‘아가미가 없는 고래’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뿐인가. 자살‘당하는’ 꿀벌이나 스스로 유산하는 생쥐, 자식을 죽이는 멧새는 어떤가. 책은 이처럼 진화가 때로 도달하는 ‘기이한’ 지점을 파헤친다. 진화는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오히려 약점을 만들어내며, 상호 파괴적인 방식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 영국의 차세대 생물학자인 저자는 ‘불완전한 진화’를 이끈 자연의 결점을 다섯 가지 ‘갈등’을 통해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이 갈등이 생물의 완벽한 적응을 가로막아 왔으며, 진화가 반드시 ‘위대한 성공작’은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예컨대 종 간 및 개체 간의 갈등인 치타와 가젤의 경주에서 가젤이 승리하는 이유는 ‘더 나은 진화를 향한 선택 압력’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즉 치타는 ‘먹이’를 걸고 싸웠으나, 가젤은 ‘목숨’을 걸었던 것. 그래서 포식자는 대체로 사냥에 실패하고, 늘 뒤처지게 된다. 성적 파트너 간에 발생하는 갈등도 있다. 어떤 종은 짝을 유혹하기 위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단장을 하게끔 진화했다. 저자는 수컷 공작새나 작은 물고기 소드테일 등 매력적인 수컷들의 사례를 들면서, 그들은 가장 많은 자손을 남기고 가장 먼저 죽는다며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자”라는 말로 위로를 전한다.

책은 다윈보다 쉽고, 도킨스보다 창의적이다. 한마디로 진화의 세계가 궁금한 사람에게 입문용으로 안성맞춤이다. 특히 유쾌한 비유와 풀이가 일품인데, 과학서를 영화 ‘에일리언’으로 시작하는 서문에서부터 “마치 소설을 읽는 느낌”이라는 해외 매체들의 호평이 과장이 아님을 감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은 시종일관 과학적 무게를 잃지 않는다. 그것은 진화 서사가 종국에 시선을 돌리는 곳에 바로 우리 인간이 서 있기 때문이다.

결국 왜 물고기가 그렇게 진화했는지, 왜 고래가 살아남았는지를 아는 일은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첫 번째 질문이 된다. 그러니까 인간이 자연을 거슬러 나아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찾아내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저자는 “진화는 목적이 없고, 수동적이며, 비도덕적이다”라며 인간종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갈등 사례를 살핀 뒤 그가 내린 결론은 “자연선택이 선호하는 것과 문명화된 인간으로 우리가 열망해야 할 것 사이에서 연관성을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는 “우리가 모두 자칭 ‘더 뛰어난’ 종의 행동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비관한다. 흥미진진한 생물의 세계를 구경하다 문득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저자의 예측이 틀리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건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392쪽, 2만2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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