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스 일타 물리강사 이규철 선생님의 부캐는 ‘래퍼’

조지윤 기자 2024. 5. 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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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과학교육과 석박사 출신으로 유명한 래퍼 ‘처리’(본명 이규철)는 물리 일타강사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국내 대표 인강 플랫폼 ‘이투스’에서 과학탐구 강의를 맡고 있는 그에게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물었다. 

래퍼 출신 물리 일타강사 이규철(A.K.A 처리)
대학만 가면 '끝’이라는 환상은 깨진 지 오래다.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달려온 수험생들이 막상 입학 후 허무함에 빠지는 것은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제는 고등학생들도 대학은 인생의 종지부가 아니라 또 하나의 관문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과 입시, 공부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만 가면 종지부가 찍힐 것 같았고, 대학생이 됐을 때는 취업이 또 하나의 최종 단계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사실 인생은 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플래그를 꽂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거든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늘 고민해야죠."

2018년 서울대와 한양대 간에 진행된 제1회 수도전 힙합 문화 정기전에서 서울대 팀은 한양대 디스곡 ‘UnderDog’를 선보였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830만, 댓글 수 1만1000여 개를 기록했다. 특히 처리의 가사들이 ‘수험생 공부 자극 멘트’로 입소문 나면서 “한양대 학생 대신 뼈를 맞았다”는 재치 있는 댓글도 달렸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입학 후 동 대학원 과학교육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규철 강사도 탄탄대로로 보이는 삶이지만 늘 이 같은 고민을 이어왔다. '가끔 무너질 만큼 시린 공허함이 있다’ '인생은 짧지도 길지도 않지’ 등 삶에 대한 고민을 녹여낸 음원을 발매한 배경이다. 랩 네임 '처리’로서 100여 개 랩을 직접 작사·작곡하고 웹 예능 '내 전공은 힙합’ 등에 출연하며 서울대 출신 래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이제 인터넷강의(인강) 플랫폼 이투스 대표 과학탐구 강사로 활동 중이다. 학생들 사이에 어렵기로 악명 높은 물리를 학생 스스로가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끔 구조화해서 가르치는데, '친한 형’ '친한 오빠’가 알려주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는 강의로 학생들 사이 인기가 높다.

음악을 관둔 건 아니다. 물리 강사로 활동하는 중에도 2022년 힙합 페스티벌 'RAPBEAT(랩비트)’ 무대에 섰으며 매달 음원 하나 이상을 꾸준히 발매한다. 본업도 취미도 허투루 하지 않는 그는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잘 가르치는 강사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긴 수험 생활을 함께하며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고.

물리 전공 서울대 출신 래퍼 실존

이규철 강사는 유튜버 미미미누와 함께 2년째 수능 D-100 응원곡을 발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정승제 수학 강사도 함께 음원 제작에 참여했다. 수험 생활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가사로 수험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수능 끝난 고3들이 선정한 '결혼하고 싶은 강사 1위’라는 소문이 있던데요.
요즘 아이들이 '너드상(찌질미)’을 선호하다 보니 저 같은 사람에게도 기회가 오는 게 아닐까요(웃음).

랩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대학교 2학년 때 힙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시작했어요. 오디션에 합격하려고 지코의 'Tough Cookie’를 노래방에서 30번도 넘게 연습했죠. 그러다 자작 랩을 부르면 가산점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확실하게 붙기 위해 음악 장비와 프로그램 등을 구비해서 첫 자작곡 '20살’을 썼습니다. 그 곡으로 오디션에 1등으로 합격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들어갔습니다.

전업 래퍼를 꿈꾼 적은 없나요.
음악을 진로로 삼을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 순간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뀔 것 같았어요. 음악을 계속 순수하게 좋아하고 싶어서 공부 등 다른 것들을 병행하고 또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수도전(서울대와 한양대 대결) 힙합 대회에서 '저흰요 죄다 샤대생들인데요’로 전국의 대학생들을 디스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노래를 만들려면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가사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련된 랩은 아니더라도 직관적으로 박히는 라임을 도모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잘 기능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웃음).

랩은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쉬는 시간입니다. 음원 수익을 생각하면 비즈니스적인 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저에는 휴식의 의미가 깔려 있어요.

창작이 곧 휴식이라는 얘기네요.
창작을 통해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으면 휴식이 되기 어려울 수도 있죠. 저는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앨범을 발매할 때도 수익이나 스트리밍 횟수 등에서 한결 자유로울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사람들도 좋아해줄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죠.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있는 만큼 온전히 편안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또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지 9년 정도 되다 보니 한 곡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요. 엔지니어링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친구에게 부탁해서 진행하거든요. 한 달에 한 번씩 음원을 발매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고요.

곡을 만들 때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사실 강사라는 직업이 학생들 앞에서 보이는 퍼포먼스는 화려하지만 생활 반경은 좁은 편이에요. 스튜디오와 연구실, 학원, 집만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인지 가장 큰 영감은 사실 상상입니다. 작업실에 앉아서 제가 평소에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상상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읊조리죠. 학교 다닐 때도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어요.

정승제 수학 강사, 유튜버 미미미누와 함께 수능 100일 응원곡도 발매했는데요.
민우(미미미누) 형도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유튜버고 저도 강사다 보니까 둘이 만나면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늘 토론해요. 제가 작곡을 하니까, 학생들을 위한 응원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정승제 선생님과는 제가 같은 학원에서 강의하고 있어 조심스레 여쭤봤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작년에는 같이 응원 송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학생들 반응이 좋았는데 수능이나 물리학을 주제로 한 랩을 만들 생각도 있나요.
만들 수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음악이 음악으로서 제 기능을 하려면 선을 잘 타야 해요. 래퍼들이 들었을 때도 랩이라고 인정할 만큼의 형식은 지켜야 하죠. 가사에 물리 내용만 욱여넣는다고 랩이 되는 건 아닐 것 같아요. 학생들이 자기가 배운 물리학 내용이 녹아 있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로만 하려면 가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에요. 언젠가 물리를 주제로 한 랩이 나온다면 같이 즐겨주세요(웃음).

수능에서는 '엉덩이 힘’이 통하기 마련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요.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 성적은 잘 나오는 반면 국어 성적은 상대적으로 낮았죠. 국어 지문을 읽는데 화자의 마음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직접 화자가 되어봐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저녁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뿐 아니라 시, 수필 등을 다양하게 쓰면서,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화자의 입장에서 좋은 글 쓰는 법을 고민했죠. 그 덕분에 국어 성적도 차츰 올라서 수능 때는 처음으로 국어 영역에서 100점을 받았어요. 학창 시절을 돌아봐도, 평소 웹 소설 등을 자주 읽는 친구들은 국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국어 성적이 좋았어요. 문제집을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글을 읽고 쓰는 게 굉장히 효과적이에요. 학생들이 공부를 좀 더 말랑말랑하게 여겨도 좋을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는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요.
학원이나 인강 없이 자습한 만큼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공부했어요. 특히 고등학교 3학년 후반에는 공부 시간을 타이머로 재면서 하루에 14시간 이상을 채우려고 했죠. 하루 동안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면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14시간이었거든요. 물론 매일 14시간을 채운 것은 아니고 더 많이 한 날도, 더 적게 한 날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14시간 공부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절대적인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시했군요.
많은 학생이 적은 시간으로 성적을 빨리 올리고 싶어 해요. 하지만 수능은 특별한 비책이 없더라도 우직하게 공부만 하면 누구나 원하는 수준의 성취를 안겨주는 시험이라고 생각해요. 핵심은 일정 수준 이상의 공부량을 확보하면서 수험 기간 동안 꾸준히 이어가는 것입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이를 지키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요. 꾸준히 오랫동안 많이 하는 정통 공부법은 통하게 돼 있어요.

왜 대학원에 갔나요.
원래는 일반 기업에 취직할 생각이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교수님께서 석사 과정을 제안하셨는데, 취업도 보장돼 있고 연구하기 좋은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서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안정적으로 루틴이 반복되는 삶은 제 성향과 잘 맞지 않더라고요. 음악처럼 자유로우면서도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일이 뭘지 계속 고민했죠.

강사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대학원 다니면서 학비, 월세 등을 대느라 늘 돈이 부족했습니다. 지인의 제안으로 아르바이트 형식의 강사 일을 시작했어요. 막상 해보니까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았고, 1년간 꾸준히 강의하면서 앞으로도 잘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원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려던 생각을 접고 수료 후 바로 강사 일에 뛰어들었죠. 부모님께서는 일반 기업에 취업하길 바라셨는데, 강사 일을 시작하고 1년 만에 대기업 이상의 월급을 버니까 긍정적으로 돌아섰습니다(웃음).

학생들은 어떤 자세로 공부에 임해야 할까요.
수험생이 1년 동안 우직하게 공부하기 위해서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재미’예요. 수능 공부는 정형화된 커리큘럼이 있습니다. 개념을 공부하고 기출을 분석한 뒤에 연계 교재와 고난도 문제집을 푸는 과정을 반복하면 일정 수준에 도달할 수는 있죠. 이를 잘 따라갈 수 있는지가 핵심인데 학생들이 재미를 느낀다면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단지 문제 푸는 방법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개념을 주입하는 학습에는 재미를 느끼기 어려워요. 이 문제를 왜 이렇게 풀어야 하는지를 학생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해결할 때 학생도 효용을 느낄 수 있죠. 과정이 아닌 결론만 습득하고 암기해도 성적이 잘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긴 수험 생활을 이어가려면 깨어 있는 학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과 소통도 열심히 하는데요.
‘학생들에게 필요한 강사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보면, 단지 점수만 올려주는 강사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해요. 학생들은 수험 생활이란 레이스에서 강사가 러닝메이트처럼 늘 자신과 함께 달리고 있다는 믿음을 원하거든요. 지식의 전달자로서뿐 아니라 학생들과 공감대를 나누면서 수험 기간을 함께하려고 하죠. '학생과 함께하는 강사’를 목표로 하는 만큼 더 많이 소통하려고 노력해요.

마지막으로 공부와 랩 중 무엇이 더 어려운가요.
공부가 훨씬 어렵습니다(웃음). 엄밀히 말하자면 공부라기보다는 강사 일이죠. 랩은 재능의 영역인데 수업과 관련한 연구는 재능은 물론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노력이 투입돼야 하거든요. 음악 때문에 밤새운 적은 없어도 본업을 위해서는 밥 먹듯이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처리 #이규철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유튜브 힙-한대학 채널, 바이브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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