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경쟁만 하다가 '적자'…"껍데기는 가라" 수제맥주의 새 돌파구

지영호 기자, 유예림 기자 2024. 5.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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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기로에 선 수제맥주(下)
[편집자주] 편의점 냉장 코너를 장악했던 수제맥주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돈버는 수제맥주 회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상장 1호 축포를 쐈던 수제맥주회사는 헐값 매각도 여의치 않을만큼 망가졌다. 기회는 있다. 밀가루, 구두약같은 콜라보 제품으로 '펀슈머(fun+consumer)'의 흥미만 쫒던 수제맥주 시장이 품질경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몰락이냐 재도약이냐 기로에 선 수제맥주 시장의 변화를 추적해본다.
막걸리·수출·논알코올...신시장 개척 분주한 수제맥주
③시장 재편 생존전략
장수맥주와 장수맥주마일드.

위기를 맞고 있는 수제맥주업계가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 영역을 넘어선 전략까지 동원하는 등 줄어드는 수요를 만회하기 위해 골몰하는 모양새다. 시장 확대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 이어지고 있어 성과에 따라 수제맥주 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6일 맥주업계에 따르면 대표 수제맥주 기업인 세븐브로이는 이달부터 서울장수와 손잡고 장수맥주와 장수맥주마일드 2종을 출시했다. 제품은 막걸리의 주원료인 쌀을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이종간 협업(컬래버)을 통해 신제품을 출시한 수제맥주업계에서 같은 주류사와 손잡고 제품을 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시장의 열기가 식자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곳도 늘어났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수출을 시작했다. 초도 발주금액 5만달러 이상으로 1회성 발주가 아닌 연간 계약이다.

진주햄이 최대주주인 카브루는 일찌감치 해외사업에 눈을 돌렸다. 2020년 하반기부터 수출을 시작해 지금까지 20개국 가까이 수출국을 늘렸다. 대한제분과 상표권 분쟁을 벌였던 세븐브로이도 수출을 타진 중이다.

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린 배경에는 국내 시장 인기와 더불어 온라인 주류 판매가 가능한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온라인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곳은 한국과 폴란드 뿐이다. 한국은 전통주 등 일부 주류만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다. 다만 국가별 수입규제 문턱을 넘어서는데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논알코올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수제맥주 기업도 등장했다. 기자 출신인 황지혜 대표가 이끄는 '부족한 녀석들'은 논알코올 맥주인 '어프리데이 페일에일'과 '어프리데이 스타우트'로 각종 품평회와 대회에서 호평을 받으며 논알코올 맥주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깼다. 논알코올 맥주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적극 활용 중이다. 현재 네이버쇼핑 등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수제맥주 맛집으로 입소문 난 아트몬스터도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곳이다. 수도권에 7개 직영 가맹점을 둔 아트몬스터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제 맥주대회에서 251관왕을 수상한 수제맥주업계의 챔피언으로 손꼽히는 브루어리다. 최근에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대표 아파트인 '래미안 원베일리'의 이름을 딴 '원베일리 맥주'를 올해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주류 대기업 관계자는 "마케팅 경쟁만 하던 수제맥주 시장에 틈새시장을 공략하면서 실력까지 갖춘 브루어리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이런 브루어리들은 소비자뿐 아니라 새로운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신규 자본의 관심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케팅에 집중했던 수제맥주, 기술적 성숙이 필요하다"
④김대헌 스퀴즈 맥주 대표 인터뷰
김대헌 스퀴즈 맥주 대표가 스퀴즈 맥주 춘천 양조장에 있는 모습./사진제공=스퀴즈 맥주


"침체와 부흥은 모든 산업군이 다 겪는다. 수제맥주 시장도 지금 침체기에 제품력을 높인다면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김대헌 스퀴즈 맥주 대표(53)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에 대해 "마케팅이나 제품 포장 부분에 집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본질에 주력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스퀴즈 맥주는 2017년 설립된 수제맥주 제조사로 시장 부진에도 지난해 매출이 증가하고 영업 적자를 줄이며 수제맥주 기업 중 매출 3위로 올라섰다.

서울 성동구 스퀴즈 맥주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한국에서 수제맥주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성숙이 필요한 시기"라며 "수제맥주의 맛과 품질만 뒷받침되면 팬데믹 이후에 일반 맥주 소비가 회복된 것처럼 다시 잘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퀴즈 맥주는 지난해 3억원 정도 투입해 강원 춘천 공장 인근에 60평 규모의 자체 연구소를 짓는 등 제품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실적이 개선된 배경으로 '빽라거'와 지역 협업 맥주, '하피볼' 등을 꼽았는데 이 제품들도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 지난해 5월 출시된 빽라거와 지역 협업 맥주는 연 판매량 200만캔을 기록했고 하피볼도 200만캔 팔리며 매출에 기여했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제품은 수출도 앞두고 있다. 이달 말 일본에는 하이볼을, 미국에는 빽라거를 수출한다. 세계적으로 K-푸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본 현지 바이어들이 먼저 함께 제품을 만들어보자고 요청해 왔다. 김 대표는 일본 내 월 판매량 50만캔을 목표로 잡고 있다. 6월엔 국내에도 신제품을 출시하고 스퀴즈 맥주만의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도 목표다. 이를 통해 올해 매출을 170억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수제맥주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품력을 키우려면 맛에 주력해야 하는데 세금 지원이 이뤄진다면 설비가 비싸 투자가 어려운 수제맥주 사업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제맥주 설비는 다른 주종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시설과 품질에 투자하면 주류 대기업처럼 마케팅 비용을 조직적으로 쓰기 어렵다. 반대로 마케팅에만 비용을 쏟으면 품질에 소홀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스퀴즈 맥주는 전북 순창 공장 시설 초기 투자에만 200억원을 투입했다. 김 대표는 "일반 소주는 희석을 주로 하면 되고 위스키는 발효와 증류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과 달리 맥주는 발효, 숙성, 필터링, 살균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해 설비가 많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세제 혜택이 더해진다면 경쟁력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또 현재 출고량에 따라 나뉘는 수제맥주 제조업에 대한 주세 경감률의 범위도 더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주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주세 경감률은 △200㎘ 이하 60% △200~500㎘ 40% △500㎘ 초과 20% 적용된다. 김 대표는 "주세 혜택을 생산 구간별로 나누지 않고 출고량 1200㎘ 이하면 60% 정도로 주세 경감률을 적용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규모로 양조하는 수제맥주 특성상 생산량 구간을 나눠서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유예림 기자 yes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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