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아빠 과학자]③ "아내 같은 과학자가 연구 포기하면 국가 손실이죠"

이채린 기자 2024. 5. 1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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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한국재료연구원 선임연구원
재료연 이동준 선임연구원. 이채린 기자

<편집자 주>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느는 추세지만 현장 경험과 연구 지속성이 과학자에게 중요한 만큼 자녀를 위해 연구를 멈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연구의 꽃을 피워야 하는 시기인 30, 40대 아빠 과학자에게 육아휴직은 어려운 결정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도 예외여서는 안됩니다. 장기적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해야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동아사이언스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육아휴직, 단축근무 등 육아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과학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남성 과학자가 겪는 현실 육아, 필요한 육아지원 제도,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삶과 일에 대한 태도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들여다 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합리적,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자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랍니다. 다른 구성원을 위해 자신만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가족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내만큼 육아에 최선을 다하려는 이유입니다."

육아에 몰입 중인 아빠 과학자 이동준 한국재료연구원(재료연) 선임연구원은 사내 육아 문화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사내 커플인 이 연구원은 아내인 윤은유 책임연구원과 함께 자녀가 생긴 2019년부터 회사 육아지원제도를 샅샅이 '공부'하고 남편 출산휴가 일수를 늘리는 등 제도에 대한 개선과 분위기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다. 지난 4월 경남 창원시에 있는 재료연에서 이 연구원, 윤 연구원 부부를 만나 과학자에게 필요한 육아지원제도에 대해 들어봤다. 

두 사람은 포스텍에서 박사 과정 때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며 사랑을 키웠다. 똑같이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란 꿈을 꾸고 있어 이야기가 잘 통했다. 서로의 꿈을 늘 응원했다. 운 좋게 이 연구원은 2015년, 윤 연구원은 2013년 같은 직장에 입사해 일적으로 성장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이 연구원은 "과학자를 꿈꾸던 대학원 시절, 기업에 취업을 하고 하나씩 목표를 이뤄가는 친구들을 보며 아내와 함께 그들을 매우 부러워하고 괜히 위축됐다"면서 "그럴 때마다 이 시절을 꼭 견뎌서 오랫동안 훌륭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되자라고 서로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2019년 윤 연구원이 임신하면서 왕성하게 일을 하던 부부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연구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각자 전문 분야가 있어 윤 연구원이 휴직에 들어가면 해당 업무를 맡을 대체인력을 찾아야 해 직접 대체근무자를 찾았다. 그는 "너무 짧게 휴직하면 이 기간이 대체근무자에게 경력이 안 되기 때문에 대체근무자가 오고싶어 하는 기간을 최대한 맞춰야 했다"면서 "임신 8개월 동안 뽑히지 않아 정말 초조했다"고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깨달은 부부는 미리 회사의 육아 지원 제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남성 육아휴직 일수가 5일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회사, 공공기관의 사례를 제시하며 육아휴직 일수를 더 늘려야 한다고 회사에 건의했다. 결국 2019년 2월 육아휴직 일수는 10일로 늘어났다. 이 연구원은 "자녀는 2019년 1월생이라 저희 부부가 혜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다른 연구자들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윤 연구원의 1년 휴직 뒤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자녀가 네돌이 되던 무렵인 지난해 갑자기 자녀를 돌봐주던 돌보미 교사가 관두게 됐기 때문이다. 자녀가 "새로운 돌보미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이 연구원은 바로 '재량근무제'를 쓰기로 결심했다. 재료연에서 재량근무제란 자신의 일 할당량은 채우는 대신 코어 근무시간에는 출근을 하고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다. 

재량근무제를 통해 아침이면 이 연구원이 오전 8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경에 퇴근해 자녀를 어린이집에 하원하기로 했다. 아내인 윤 연구원은 자녀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오전 9시 30분경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일을 한다. 못다한 일은 자녀를 재운 뒤 새벽까지 이어서 한다. 과학자에겐 근무 시간이 아닌 일의 양과 질이 중요하기 때문에 늦게라도 다른 팀원만큼 일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회사에서 재량근무제를 도입하면서 회의시간을 코어 근무시간에만 잡기, 회의시간은 미리 정하기 등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줬다"면서 "가이드라인을 지키려고 동료들이 노력하면서 육아를 위해 출퇴근을 하는 데 크게 눈치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 연구원이 재량근무제를 쓰며 육아를 분담하게 되니 자녀가 엄마나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늘었다. "재량근무제를 쓰며 '오늘 아빠가 데리러 갈게'라고 하자마자 자녀의 표정이 확 달라진 걸 느꼈어요. 너무 기대하고 행복해 하더라고요. 또 하원 후에 놀아달라고 보채지 않아요. 늦게 엄마, 아빠가 가면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는 걸 알기 때문에 떼를 부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거든요. 함께 있을 시간이 많으니까 아이도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이 연구원)

윤 연구원은 "가끔 아이를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하나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오히려 아이를 위해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는 길어야 7년 정도의 시기가 지나면 부모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다. 일을 열심히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자녀의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것 같다. 저를 보며 자녀가 꿈을 키우고 노력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 연구원은 지난해 책임연구원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이 연구원과 윤 연구원은 육아하는 과학자들을 위해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 연구원은 "연구원 사내의 사정, 연구원 각자가 맡은 일, 부부가 처한 상황 등 과학자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라며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놓고 선택하게 하면 육아에 모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 직업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소홀히 하면 인생에 후회가 남을 것 같아요. 가정에 저와 아내 모두 충실할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할 겁니다. 아내 같은 과학자가 육아 때문에 연구를 포기하면 '국가적인 손실'이니 반드시 막고 싶습니다(웃음)."(이 연구원)

다음은 일문일답. 
 

Q. 과학자가 육아지원제도를 쓸 때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팀원들의 생각이다. 육아를 위해 잠시 일을 놓겠다는 말을 팀원에게 하기 미안했다. 함께 하나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신을 한지 6주밖에 안 됐을 때 언제부터 언제까지 휴직에 들어갈 것이라고 팀원들에게 빠르게 말했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대비를 하길 바라서다. 팀 분위기에 따라 육아지원제도를 쓸 수 있을지 다를 것 같다. 육아휴직부터 재량근무제도까지 팀원이 이해해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다."(윤 연구원)

Q. 사내 육아지원제도 개선을 위해 또 어떤 노력을 했나.

"육아지원제도에 대한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육아지원제도가 다양한 해외 사례를 찾아 주변 동료들에게 틈날 때마다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핀란드 출장을 갔을 때 핀란드에서는 자녀가 13세가 될 때까지 부모가 단축 근무를 써야한다는 제도 '육아기 유연 근로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육아지원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알면 후배 과학자들이 마음껏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점점 만들어지겠다고 생각했다."(이 연구원)

Q. 각자 맡고 있는 연구가 궁금하다.

"재료연의 재료디지털플랫폼연구본부에서 일한다. 저는 항공재료연구센터에서 항공기에 들어가는 소재를 국산화하는 연구를 하고 개발한다. 재료공정연구단에 있는 아내는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 목표다."(이 연구원)

Q. 앞으로 더 생겼으면 하는 육아지원제도는.

"일가 친척들로부터 육아에서 도움을 못 받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혜택이 많아지면 좋겠다. 저희 부부 모두 고향을 떠나 창원에서 일을 하느라 단 둘이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학자에게는 대체인력을 원활하게 뽑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정책이 유용할 것 같다. 대체인력만 잘 뽑힌다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학자들이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동료들의 눈치도 덜 받을 것 같다."(이 연구원)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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