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숲 르포 봉미산] 순한 맛 같은데, 한 성격하는 봉황 꼬리산

신준범 2024. 5. 1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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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산 르포
놋동골 원점회귀 산행, 등산로 희미해 임도 걷기나 MTB코스로 추천
속세를 벗어난 산이란 뜻의 속리산俗離山이라 불린 봉미산은 경기도의 오지로 손꼽힌다. 잣나무가 많지만 빽빽하고 가팔라 찾는 등산객이 드물다. 

서울에서 한 시간 만에 속세를 벗어나는 방법은 봉미산(855m)을 찾는 것이다. 옛날 봉미산 기슭 주민들은 이 산을 속리산俗離山이라 불렀다. 속세를 벗어난 곳의 산이란 뜻인 것. 인근 가장 큰 고을인 양평읍내에서 보면, 봉미산은 용문산 뒤에 있었기에 세상 뒤편이라 부를 만했다.

경기도에선 실로 압도적인 높이인 1,157m의 용문산은 좌청룡으로 유명산(864m)을, 우백호로 중원산(800m)을 거느리고 있어 교통이 불편했던 과거의 봉미산은 무척 오지였다. 봉미산鳳尾山은 용문산을 봉황으로 보고, 이곳을 꼬리로 보았기에 이름이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큰골을 거슬러 정상으로 향한다. 과거 등산로가 있었으나 지금은 찾는 이가 드물어 산길이 상당히 희미하다. 

봉미산은 지금도 능선을 장벽처럼 두고 교류가 드물다. 가평·양평 경계인데 가평 설악면 설곡리 마을에서 직선거리로 4km인 양평군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을 가려면 36km를 가야 한다. 능선 하나를 두고 강원도 홍천으로 한참 돌아서 가야 하는 것.

알려지지 않은 잣나무 명산을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 봉미산을 택했다. 그 대가는 땀으로 치러야 했다.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를 기점으로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잡았다. 8년 전 본지에서 만든 등산지도를 보고 산행을 계획했다. 설곡리 기슭 상당수가 잣나무 숲이고 임도가 둘레길마냥 길게 이어져 있어, 보석 같은 잣나무숲 야영 터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쓰러지고 벗겨진 이정표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등산로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 준다. 

든든한 산 후배인 성예진씨와 함께했다. 깊은 골짜기를 따라 차량으로 봉미산에 다가갈수록 성씨가 "산이 어둑하고 싸늘하다"며 밝은 느낌은 아니라고 했다. 골이 좁고 산세가 가팔라 그런 인상을 받는 듯했다. 산 입구의 안내판이 추천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돌아 임도 언저리의 잣나무숲에서 비화식 야영을 하기로 했다.

놋동골로 코스를 잡았다. 사람 얼굴 비석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어느 교회 장로를 기리는 표석이다. 곁에 '등산로' 안내판이 방향을 알려 준다. 본격적인 산길의 시작이지만 걸음이 가볍지 않다. 등산객이 드물어, 유적 발굴단처럼 등산로 흔적을 좇아야 했다. 잣나무가 빽빽하지만 쓰러진 장애물이 많고, 지저분하고 어수선하다.

어둑한 숲을 빠져나오자 임도가 반갑다. 처음 간 산에서 지도를 보고 계획했던 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면 경치가 없어도 성취감이 있다. 큰골에서 다시 산길로 든다. 표지기도 있고, 산길이 맞긴 한데 희미하다.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가팔라 한 걸음 옮기기가 쉽지 않다. 쓰러진 나무와 잔가지가 많아 신중을 기해 산을 오른다. 

양평·가평 각각의 정상석은 낭비

산 입구 안내판이나 등산지도에 표시됐지만, 등산객이 적어 소멸 중인 산길이다. 등산로도 생과 사가 있어, 시대에 따라 수명을 달리한다. 지금은 정상 인증의 시대, 최단 코스와 편한 코스가 살아남는 흐름이다. 산길의 명을 다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계절의 흐름처럼 당연한 것.

봉황의 꼬리가 맞는 걸까? 꼬리가 아닌 머리처럼 솟은 산세는 가만히 서서 균형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르다. 분명 GPS에 표시된 산길 위에 있는데, 산길이 없다. 어차피 길이 없다면 능선을 타고 오르는 것이 더 쉽다고 판단했으나, 능선도 압도적 비탈. 폭압적인 전제군주의 출현이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능선을 온 몸으로 받아 삼킨다.

나무를 붙잡고, 바위와 잔가지를 뚫고, 옷이며 배낭을 끈질기게 붙잡는 가지를 뿌리친다. 속도가 나지 않지만 가파른 탓에, 걷는 족족 고도를 높인다. 장애물을 왼쪽, 오른쪽 번갈아 우회하지만 쉬운 길은 없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수록, 제대로 유산소 운동을 한다는 보람이 크다. 두려워하면 판단력만 떨어져 잘못된 선택으로 스스로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임도에 핀 진달래. 봉미산은 임도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등산로와 달리 깔끔해 걷기나 산악자전거를 즐기기에 알맞다. 

모처럼 만난 이정표가 산길이라는 확신을 주지만, 바래서 글자가 떨어지고 부러진 채 쓰러져 있다. 쓰러진 이정표가 이 길이 처한 상황을 보여 준다. '놋동고개로 올라 주능선 타고 올 걸'하고 투덜거릴 틈도 없이 타이탄이 덮친다. 거인 같은 바위가 능선을 막았다. 길이 없을 것 같은데 묘하게 사이로 붙잡고 갈 수는 있다. 산행 본능은 갈수록 예리해지고, 잡념은 소멸한다. 힘든데 즐거운, 설명할 수 없는 등산의 즐거움이 정신을 지배한다.

기대 없이 오른 정상. 의외로 번듯하다. 좁지 않고, 한쪽으로 경치도 트였고, 정상석도 두 개나 있다. 가평군과 양평군에서 각각 세운 표지석이다. 2001년 양평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는데, 2020년 가평에서 추가로 표지석을 세운 건 예산 낭비다.

봉미산 정상에서 김밥 파티가 열렸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고 그늘에 앉아 아침에 읍내에서 사온 김밥을 흡입하듯 먹는다. 역시 산행 중 김밥은 꿀맛이다. 정상에서 시야는 양평과 멀리 홍천 방면으로 드러난다. 유일한 조망 터라 더 값지게 느껴진다.

산음자연휴양림 제2야영장의 밤. 잣나무숲 야영장 중에서도 운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다만 데크가 다닥다닥 붙은 것이 흠. 평일엔 야영객이 드물어 온전히 숲을 즐길 수 있었다. 

조금 절박했던 산행 분위기가 한결 여유로워졌다. 배부르고, 하산길이라 그럴 테다. 늪산으로 이어진 주능선도 희미하긴 마찬가지다. 봉미산이 워낙 가파르고 볼거리가 적어 어느 길이든 등산객이 드문 탓이다. 지도에 늪산 정상 부근에 습지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으나, 보지 못했다. 정상석 없이 이정표만 있고, 누군가 매직펜으로 이정표 기둥에 '늪산'이라 적어놓았다. 안타까웠던 산꾼이 호의를 베푼 것.

비치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비치골로 향한다. 임도가 짧지 않은데 너른 길을 만나자 일행들은 산행이 끝난 듯 홀가분한 분위기다. 잣나무가 우람하다. 야영 터가 있을 법한데 없다. 어디든 가팔라 임도를 벗어나기 어렵다.

 봉미산 정상. 왼쪽 표지석이 2001년 양평에서 세운 것이고, 오른쪽이 가평에서 2020년 세운 것이다. 단체의 업적보다 산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쉽다. 
 산음자연휴양림의 잣나무숲 데크로드. 치유를 위한 산책로다. 예약하면 산림치유센터의 치유 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잣나무숲을 따라 임도를 걸었다. 구불구불 흘러내린 지능선을 감싸 안고 도는 길, 초반 비탈막에 기운을 쏟아서인지 완만한 임도가 호텔 식사 같다. 비치골 입구 차단기 옆에 완만한 잣숲이 있으나 야영객들이 잦아서인지 테이프를 쳐서 막아놓았다.

주민들이 싫어하는데, 굳이 야영하는 건 옳지 않다. 합법적인 잣나무숲 야영장이 있는, 봉미산 반대쪽 기슭 산음자연휴양림으로 차를 몰았다. 당일 현장에서 야영장을 이용하는 것은 저녁 6시까지 가능한데,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춰 도착했다. 능선 하나 차이일 뿐인데 거목 잣나무들이 웅장한 무게감의 평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봉황의 꼬리에 깃든 잣나무숲의 향긋함 덕분인지, 허기를 채우자 졸음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치유의 숲'을 조성한 휴양림이라서일까. 무게감 있는 잣 향기를 이불처럼 덮고 깊은 잠에 빠졌다.

봉미산(855m)

경기 가평군 설악면, 양평군 단월면

산행 거리

8km

산행 시간

5시간

산행 난이도

★★★☆☆(어느 코스로 올라도 가팔라)

산행길잡이

가평 쪽에서 원점회귀 산행을 한다면 비치골로 비치고개까지 올랐다가, 능선 따라 정상에 선후 놋동고개에서 놋동골로 하산하는 코스가 알맞다. 큰골 코스는 워낙 가파르고 희미해 개척산행에 가깝다. 그나마 많이 다니는 코스가 산음자연휴양림과 산음리 코스인데 역시 가팔라 등산객이 드물어 산길이 희미하다. 임도는 깔끔하게 나 있으므로 임도 걷기나, 산악자전거는 추천할 만하다. 차단기가 있어 차량은 출입 불가하다. 비치골과 놋동골은 골짜기 입구만 가더라도 통화 불능인 곳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산길은 희미하고 힘들지만, 정상은 반쯤 트여 있어 경치가 드러나고 텐트 3~4동을 칠 만한 터가 있다. 가평 방면은 잣나무가 많으나 가팔라 야영할 만한 터가 없고, 초입의 잣나무숲이 완만하지만 사유지다. 산음자연휴양림 제2야영장이 아름드리 잣나무숲이라 운치 있다. 휴양림 내에 잣나무 산책로가 있어, 치유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교통

가평 쪽 원점회귀 산행을 할 경우 봉미산 등산안내도와 경기둘레길 안내판이 있는 계곡 갈림길에 주차한 뒤 산행하는 것이 좋다. 차로 비포장임도 끝까지 갈 경우 비치골은 차단기까지, 놋동골은 장로 기념비까지 갈 수 있다. 대중교통은 가평군 설악면 버스터미널에서 운행하는 20-6번 버스가 4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성곡마을에서 하차 후 2km 걸어야 봉미산 입구에 닿는다. 비치골 차단기 앞에 차량 2~3대를 세울 곳이 있으나 비포장 길을 1km 정도 올라야 한다.

맛집(지역번호 031)

서울양양고속도로 설악IC 입구의 설악면사무소 소재지에 식당이 많다. 금계숯불닭갈비(0507-1346-8333)는 숯불닭갈비(1만4,000원)와 막국수(9,000원)가 별미. 청평호반닭갈비(0507-1349-5091)는 주차가 편리하다. 자가제면 가평돌짜장(585-7445)은 돌짜장이 별미. 김밥이야기(584-2271)는 아침 6시부터 영업하므로 김밥 포장해서 가기에 안성맞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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