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이라는 투명한 나무의 나이테

리빙센스 2024. 5. 1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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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이 만난 문인의 서재 8

투명한 나무의 나이테를 보았다

그녀는 자유로운 새처럼 느껴졌다. 그 새가 내려앉은 투명한 나무의 나이테가 보였다. 인간의 내면은 알 수 없는 나이테 같은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잘 알기는 어렵다. 다만, 짐작할 따름이다. 하지만 윤고은은 투명하다. 새나 나무 같다. 그것은 타인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윤고은은 라디오를 통해 문학과 책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전파를 타고 날아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책을 통해, 글을 통해 다시 돌아온다. 벌써 5년이 지났다고 놀란 모습을 보였다.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소설가다.  

라디오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던 문학소녀

"고등학교 시절에 은희경 소설 «새의 선물»을 읽고, 작가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어요. 딱히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독자로서 작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거죠. 그런데 쓰지 못했고, 나중에 선배님을 만나 그때 이야기를 하고 같이 웃었던 적이 있어요. 그 시절에는 라디오 방송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딱히 소설가를 생각하지는 않았지요. 그러다가 대학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시, 소설을 과제로 내면서, 그 과정에 소설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마치 '새의 선물'처럼 나에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선물을 들고 인생을 찾아간 것 같기도 하고."

 ‹윤고은의 EBS 북카페›를 진행하는 자리에는 마이크와 노트북,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있다. 목소리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반응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녀의 글과 목소리는 참 좋다. 그것이 독자와 함께 청취자의 사랑을 받은 이유다.

2024년 봄 현재, 윤고은의 선택 중에서 최우선은 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그녀가 소설을 쓰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작가라는 직업은 그녀가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결정한 것이다. 그녀는 이것이 아니면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최우선 순위에 무엇이 있는가를 본다. 문학에 대한 과장된 포즈가 없다. 문학은 삶의 일부일 뿐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과거에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의 문학 시대에는 문학 지상주의라고나 할까, 부질없는 열정에 시달렸다고나 할까?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내 또래의 지인은 죽어도 문학이었다. 그는 거의 평생 한 소설만을 썼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출판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이 출판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는 작품의 완성도가 낮아서였다. 그는 결국 책 한 권 내지 못하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지인을 떠올린 것은 윤고은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였다. 그래, 결국 문학이라는 것은 결심이나 결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우연히 작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녀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어떤 작가보다 강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말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배워야 한다. 가벼운 행보로, 길고 무거운 인생의 단면을 본다. 그것을 유화를 그리듯, 행위 예술을 하듯, 창조해 낸다.

 이것은 서재의 문패처럼 보인다. 싱그럽다는 말이 참 적당하다. '고은'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 지난 호 김용택의 돌 문패와는 참 다르다. 돌과 나무, 이 다름이 바로 문학의다양성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듯이

그녀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요소요소에 묵직한 전언이 있었다. 윤고은 나무의 첫 나이테부터 살펴본다.

"어릴 때 독특한 표현을 즐겨 쓰는 아이다고 해요. 예를 들면 연필이 안 보이는 걸 '내 연필이 이민 갔나 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죠. 어떤 상황이나 생각을 제 방식으로 표현하는 걸 즐기게 됐고, 그런 생각이나 말을 글로 정리하게 된 건 어머니 덕분이었어요. 독후감 쓰기 같은 것을 할 때 어머니가 저를 붙잡고 글짓기에 재미와 부담을 함께 느끼도록 해주신 거죠. 거기에 학교 선생님의 칭찬이나 인정 같은 게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책이랑 어울리는 사람, 글 쓰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같이 있었지만, 많은 작가들이 누군가의 칭찬과 기대에 적당히 빚지면서 자라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뭐랄까, 자전거를 배울 때 누군가 뒤에서 잡아주다가 손을 떼어도 저절 로 바퀴가 굴러가듯이요. 그땐 엄마가 뒤에서 잡아주었죠."

베토벤 피아노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베토벤의 악보를 보고 연주한다. 그 연주는 베토벤과의 교감의 폭이 넓고 깊을수록 좋은 연주가 된다. 이 시대에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은 대중적인 트렌드가 아니지만, 악보를 외우고 내면화시켜 몰입해야 연주자의 혼이 살아난다. 대상에 심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론 많이 팔린 책이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취해서 쓴다. 주위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장르의 소설인지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냥 쓴다. 심취 하고 몰두하는 것이다. 그녀의 두 번째 나이테를 살펴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직장에 취직을 하지 않고 다양한 일을 했어요. 그때 명함이 7장 정도 됐어요. 프리랜서로 산 거죠. 글 쓰는 프리랜서. 언어역 과외부터 사외보 기고에 이르기까지 주로 글 쓰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돈이 모이면 여행을 떠났 어요.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풍경이 아니라, 에피소드인 것 같아요. 좋은 에피소드가 있으면 좋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그녀가 출간한 책이 모여 있다. 이 분량을 쓰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고독한 시간을 보냈을까? 깊은 속을 알 수 없지만, 문장에서 향기가 나니까, 그 고통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는다. 진정한 프로다. 앞에 놓인 연필이 마치 책으로 들어가는 열쇠처럼 보인다. 

에피소드가 있는 여행은 문학의 자양분

여행은 대상을 보러 가는 행위이다. 그 대상이 유적지가 될 수도 있고, 자연경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내 경험도 그렇다. 언젠가 전국의 등대 기행을 하면서 <경향신문>에 연재를 한 적이 있다. 등대는 주로 섬에 있다. 그때 취재를 하러 떠나는 나에게 신문기자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바다를 보면서 그 바다를 보는 사람을 보고 오라." 이 말이 인상적이었 다.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여행이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때론 사람이 없는 장소를 가기도 하지만, 거기에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여행객 자신이다. 그때 여행지는 나를 보는 장소가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사람이 에피소드를 만든다. 등대도 오로지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여행 경험은 당연히,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녀가 보내온 책 «불타는 작품»에는 미국 여행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개와 사람의 관계에서 모니터 화면처럼 묘사되는 장면들, 기상이변과 같은 폭염, 무서운 산불, 고속도로의 정황들은 그녀의 여행 경험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프리랜서로 한 여행은 이제 작가로서의 여행으로 변화한다.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한 튀르키예 앙카라 국제도서전에 초대를 받아 떠난 여행도 있었다.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불타는 작품»이다.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마당에 연필로 쓴 원고지를 태우면서 글을 썼던 세대인 필자는 소설 제목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작품을 태우는 행위는 어쩌면, 혼을 태우는 행위처럼 보인다. 그것은 적어도 작가의 마음속에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 중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할까? «밤의 여행자들»의 출간은 그녀의 인생에 작은 변곡점이 된다. 이 소설로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수여하는 대거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 유일하다. 이 작품은 국내외 대형 영화사와 영상화 계약을 체결했다. 이제 유명 작가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사실 범죄, 추리소설은 낯선 분야예요. 그런데 제 소설이 영국에서 그런 장르로 분류되고 수상까지 하니까, 글 을 쓸 때 동기부여가 된 느낌이에요. 스릴러 중에 에코 스릴러라는 장르도 있어요. 소설의 장르가 외국에선 매우 다양하잖아요. 우리나라도 점점 그런 형태로 변화해 가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런 장르 구분에 민감하지는 않아요."

그녀의 작가 이력을 살펴볼 때다. 중요한 나이테이다. 그녀는 2008년 한겨 레문학상을 받은 «무중력 증후군»을 작가의 시작점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해서 문단의 평가도 받았다.

EBS 방송국 옥상에서 바람을 보고 있다. 마치 새 같아 보인다. 새는 어디로 날아가는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유니크하고 경이로운 삶과 소설의 세계가 열린다. 무척 투명한 모습이 초상화처럼, 사람의 시선을 끈다.

제비 침으로 발라놓은 윤고은의 문장들

"첫 소설은 여고 시절에 썼어요. 소심하게도 문학 선생님이 글을 봐준다고 하면 쓸 생각이었죠. 선생님은 그러라고 했고, 그때 소설을 썼어요. 문예반 학생이니까. 3일 정도 걸려서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썼던 것 같아요.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아저씨를 화자로 내세운 소설이었어요. 선생님은 '도입부가 시처럼 아름답다'라는 평가를 했어요. 이때만 해도 소설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서 과제로 소설을 썼는데, 교수님이 재미있다고 했어요. 아마도 이때부터 소설가 의 길을 걸었던 것 같아요. 교수님의 칭찬이 큰 힘이 됐어요."

그녀가 보내온 «불타는 작품»을 받자마자 바로 읽었다. 첫 장을 펼치면서 부터 저절로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로버트 미술관으로 초대한다"는 그녀의 사인을 보면서 읽기 시작해 책장을 덮었을 때는 '야,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다. 문장의 연결고리가 마치 제비 침으로 발라서 둥지를 만드는 것처럼, 문장과 문장의 연결고리가 견고하면서 부드럽다. 좋은 언어의 집 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쫀득쫀득하다고 할까, 하여간 흡입력이 있었고, 발상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 기발한 상상력이 창의적으로 표현된 좋은 작품이었다. 그래, 소설은 이렇게 써야지 하는 느낌. 후배에게 많이 배웠다.

나는 금기시하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그것 중에 '똥'이 있다. 이런 감정을 가진 나에게 그녀는 소설을 통해서 나에게 넌지시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이래도 똥이라는 단어가 싫어요?"라고. 이런 생각을 하니까 웃음이 난다. 똥이 예술이 되고, 예술 작품이 불타는 소설, 이 소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의 경직된 언어 감각에 일격을 가한 작품이다. 로버트의 똥, 너 참 대단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환하게 웃었다. 매력 있는 작가다.

소설과 일상에 공진을 일으키는 남편의 힘

이제 남편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남편과의 만남에 대해서 말했다.

"물론 그 전에 연애는 했지만, 남편과의 만남은 첫 소개팅이었어요. 작가 인터뷰 자리 같았죠. 그런데 결혼했어요. 남편은 엔지니어입니다. 남편과 대화하면서 소설의 소재를 얻어요. 예를 들면, <우리들의 공 진>이라는 작품이 그래요. 자동차 타이어를 남편을 통해서 새롭게 보게 돼요. 마찰면이랄까, 뭐 이런 과학적인 상식이 늘게 되죠. 공진은 진동계의 진폭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현상이라고 설명되죠. 이런 문장은 설명문이죠. 하지만 이런 현상을 소설에 녹여낼 수도 있어요. 남편은 소설가보다 시인을 우대해요. 우린 서로 다른 성향이지만 그것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죠. 그건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으니까요. 엔지니어 남편이 한 말을 '줍줍'하면서 소설에 조미료처럼 뿌려요."

남편은 그녀의 집이자 방이다. 그녀는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면서 3가지를 이야기했다. 집 안에 있는 5개 방 중의 하나, 서쪽의 매력, 단풍나무. 그런데 집 앞에 있던 단풍나무가 잘려 나가버렸다. 어떤 기준으로 마치 철거하듯이 나무의 밑둥만 남기고 잘라버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나무가 어느 날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 황당하다. 방의 창 방향이나, 방은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하지 만 집 밖의 나무는 다르다. 누군가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어떤 이유인 줄 알기도 힘들다. 안다 해도 잘려 나간 나무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문학이 '잘려 나간 나무와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윤고은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다. 문학은 사라진 나무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이다. 거기에서 세상과 삶의 나이테에 대해서 말 할 수가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모진 인생을 사느라 잘려 나간 우리들의 나무 나이테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이곳이 그녀의 둥지이다. 창작이 이루어지고, 타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독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시인인 지인은 소설가인 아내가 글을 쓸 때는 무척 예민해져서 눈치를 본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과 같은 집,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 먼 길을 간다. 

소설 쓰는 라디오 스타

그녀의 집, 서재는 서쪽으로 창이 나 있다. 작가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역시 석양이다. 해가 지는 하루, 하루를 마감하는 그녀의 일과는 비교적 단순했다. 데일리 라디오 방송인 <윤고은의 EBS 북카페> 방송 진행자이기 때문에 하루의 일정이 정해져 있다. 이것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 일까? 결론적으로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경기도의 끝과 끝을 오가면서 하루를 살고 있어요. 분당에서 일산으로 오는 시간은 지하철로 약 1시간 반이 걸려요. 왕복 4시간 이상이 걸리죠. 그리고 방송 2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노트북으로 소설을 쓴 적도 있어요. 이런저런 일정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 방송국 근처 호텔에서 글을 쓰기도 했어요. 방송과 소설은 그 속성이 비슷해요.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일이죠. 그리고 문학, 책 관련 방송이어서인지 저의 안목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돼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죠. 소설도 방송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어요. 글 쓸 때 즐겁듯이 방송도 그래요. 당연히 시간이 없어서, 생활이 단순해요. 방송과 소설. 다른 일정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군요. 몇 달, 몇 년 동안 한 작품에 빠져서 작품을 쓰는 일은 저랑 맞지 않 을 수도 있어요. 항상 다른 일을 하며 소설을 써왔어요. 방송이 아니라도 말이죠."

방송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여행과도 같다. 내가 라디오 방송 진행자를 할 때 윤고은이라는 소설가를 출연자로 모신 적이 있다.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내가 패널로 나갔다. 그녀의 첫 방송 시간이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 선후배로 만났다. 문학 방송은 출판과 문학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대단한 시청률은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취자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알찬 방송이다.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은 아직 읽지 않은 책이다. 그것을 펼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윤고은'이라는 책을 독자는 읽고 있다. 그녀는 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책이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거나 도발하거나 위로했다는 말을 들으면, 한 권의 책과 같은 사람을 만났던 어느 시점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책은 산책의 가로등 같은 것, 가로등이 없어도 우리는 걸을 수 있겠지만, 있으면 덜 외롭겠지."

원재훈

등단한 지 36년이 됐다. 그보다 긴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1988년 가을 «세계의 문학»에 시 ‹공룡시대› 발표를 시작으로, 시집 «낙타의 사랑»,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하네», 소설 «만남», «망치», 산문집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착한 책»을 비롯해 동화, 번역서 등을 냈다. 문학 관련 TV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국악방송 <행복한 문학> MC로도 활약하며, 언제나 시의 쓸모를 말하고 있다.

CREDIT INFO

editor이승민

words원재훈

photographer김잔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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