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이 만든 이야기의 마법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한겨레 2024. 5. 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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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호모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이 거기 현현했다.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 얘기다. “들어올 거면 ‘맞다이’로 들어와 뒤에서 ×랄 떨지 말고!”에 동석한 변호사들의 경악한 표정은 이게 연출이 아니라 실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회견이 끝나자마자 하이브 쪽은 “특유의 굴절된 해석 기제로 왜곡된 사실관계를 공적인 장소에서 발표했다”는, ‘먹물기’ 가득 머금은 논평을 내놨다. ‘재수 없는 책상물림’ 대 ‘피땀욕설 밴 현장’의 대비는 그렇게 극적으로 완성됐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민씨가 틀린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 새끼 출산한 기분”을 말하면서도 그 ‘내 새끼’들을 철저히 사물-상품 취급하는 시선엔 아무래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특히 ‘내 성공은 전부 나의 능력 덕’이라는 식의 능력주의 신념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아이돌은 상품 이전에 인간이고 청소년이다. 민씨의 성공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도 있겠지만 동료의 노동, 케이팝 전성기라는 시공간, 무엇보다 행운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이 모든 꼬투리에도 불구하고 ‘민희진 라이브 쇼’는 며칠간 모든 뉴스를 압도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글로벌 아이콘이 된 걸그룹 ‘뉴진스’의 기획자라는 점이나 ‘케이팝 공룡’ 하이브와의 갈등이라는 요소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거대한 반응을 설명할 수는 없다. 기자회견은 단지 입장 차이의 확인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전설적 퍼포먼스로 만든 건 두시간 동안 민희진이 만들어낸 세계, 이야기의 마법이었다.

민씨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한 프레임으로 배치하고(‘개저씨’ 대 ‘여성 피고용인’, ‘장사꾼’ 대 ‘장인’), 새벽 2시40분 포장마차에서나 들을 법한 비속어와 욕설로 절절한 진정성을 입증한다. 마침내 그가 “내가 니네같이 기사를 두고 차를 모냐 술을 마시냐 골프를 치냐” “남은 건 심야 택시, 배달앱 영수증밖에 없다”고 했을 때, 여성 직장인들뿐 아니라 대다수 한국인은 가슴에 얹힌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걸 느꼈다. 그렇게 사람들은 연봉만 수십억이라는 경영자와 자신을 겹쳐 보게 되었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잘 짜인 이야기, 이른바 ‘웰메이드 스토리’는 아니다. 오랫동안 전해져온 신화, 인기 있는 드라마, 그럴듯한 음모론 같은 것에 비하면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조악한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정도로 폭발할 수 있었을까?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완성도가 낮다 해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완성도가 높든 낮든 모든 ‘폭발하는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감정을 자극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다.

물론 감정의 중요성을 모르는 스토리텔러는 없다. 숙련된 창작자들은 좋은 플롯을 설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감정을 언제 절제하고 어떻게 고조시키는지 잘 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폭발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실패한다. 감정은 맥락 의존적이어서 정확히 예측하는 게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즉, 감정의 재현이나 연출에는 필승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감정이 사회적으로 더 잘 촉발되는지 따져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민희진 라이브 쇼’를 흥행시킨 배경으로 하나의 감정을 제기해볼 수 있다. 바로 ‘울분’(embitterment)이다.

울분은 분노와 구별되는 감정으로서, ‘나의 노력과 기여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지속되고 축적되어 나타난다.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 등이 울분을 일으키는 흔한 사례다. 울분은 일시적 감정으로 시작되다가 심하면 외상후울분장애(PTED) 등의 심각한 질환으로 발병하게 된다. 울분 임상 연구가 처음 시작된 나라는 독일이었다. 통일 직후 동독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신체적 질환으로 번져나가며 큰 사회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8년 조사 결과, 한국이 ‘본고장’ 독일보다 울분이 6배 정도 높게 측정되었다. 한국은 타인과 비교가 일상화되고 능력주의 성향도 강한 사회라서 울분 수준도 극단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연봉이 20억원이든 4천만원이든, 나의 노력과 기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건 대다수 한국인의 공통 감정일지 모른다. 그게 바로 민희진의 마술적 순간을 만든 사회적 조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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