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200년]④ 동화책에서 과학 논문까지…공룡 모습 재현하는 ‘고생물 예술가’

송복규 기자 2024. 5.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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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오아티스트’ 최유식·이준성 작가 인터뷰
공룡에 열광한 어린 시절 영향으로 첫발
고생물학 연구 기반으로 공룡 모습 재현
“여전히 잘못된 공룡 그림 많아… 고쳐 나가야”
최유식 작가가 그린 '타르키아 투마노바에(Tarchia tumanovae)' 복원도. 이 복원도는 202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실렸다./최유식
최유식 작가가 지난달 24일 경기 부천시에 있는 작업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 작가는 "팔레오아트는 고생물학자와의 끊임없는 자문과 수정을 통해 완성된다"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어린 시절 공룡은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존재였다. 누구나 한 번쯤 책에서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를 보고 공룡 세계를 탐험하는 상상을 한 기억이 있다. 과거 2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공룡의 첫 인상은 책에 나오는 삽화가 결정했다. 공룡 그림은 어린이를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통로였으며, 어른에게는 공룡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그림으로 공룡을 복원하는 사람이 ‘팔레오아티스트’이다. 고생물학(‘Paleontology)과 예술가(Artist)를 뜻하는 영어를 합친 말이다. 팔레오아트는 공룡을 포함한 고생물을 과학적 자료에 따라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을 말한다. 팔레오아트는 공룡을 재현하고 연구하는 고생물학 논문과 박물관에서도 빠질 수 없는 존재이다.

국내에서도 2010년대부터 팔레오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작가들이 나타났다. 어린이를 위한 공룡 그림책 ‘읽다 보면 공룡 박사’를 그린 최유식 작가와 ‘신비한 공룡 사전’을 그린 이준성 작가가 대표적인 팔레오아티스트이다. 둘 다 ‘국내 1호 공룡 뼈 박사’인 박진영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과 공룡 그림책을 만들었다. 어린이를 위한 책뿐만 아니라 연구 논문에 실리는 삽화도 이들의 몫이다. 한국 대표 팔레오아티스트인 두 사람을 만나 공룡이 우리 품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살펴봤다.

이준성 작가가 지난 2일 광주광역시 한 카페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작가는 "공룡 그림은 한창 배우는 어린이가 많이 보는 만큼 잘못된 그림들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송복규 기자

지난달 24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난 최유식 작가는 공룡 모형과 공룡 그림이 늘어선 작업실에 있었다. 최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상을 전공하다가 강의 과제를 계기로 팔레오아티스트가 됐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존경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라는 과제를 받고 공룡 연구의 대가인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때 어린 시절 품었던 공룡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 팔레오아트를 시작했다.

지난 2일 광주광역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성 작가는 어릴 때 공룡에게 큰 위안을 받은 경험이 팔레오아트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 사고로 왼쪽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이 작가는 “손가락이 세 개인 공룡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 계속 공룡 그림을 그리다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했다. 원래 제품이나 콘텐츠를 기획하는 디자인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이 작가는 취업보단 팔레오아티스트의 길을 갔다.

팔레오아트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어린이들이 많이 찾는 공룡 그림책부터 국제 학술지에 제출되는 논문의 복원도로 사용된다. 최 작가는 2022년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의 논문에 ‘나토베나토르 폴리돈투스(Natovenator polydontus)’의 복원도를 실었다. 이 작가는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와 함께 전남 화순군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을 토대로 팔레오아트를 만들었다.

이준성 작가가 그린 스피노사우루스(Spinosaurus) 복원도 변화. 스피노사우루스는 팔레오아트 작가 사이에서 모습이 가장 많이 변한 공룡으로 꼽힌다./이준성

두 작가는 모두 팔레오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증’을 꼽았다. 팔레오아티스트는 고생물학 지식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작품을 인정받는다. 팔레오아티스트와 고생물학자가 공생 관계라고 하는 이유다. 고생물학자가 밝혀낸 새로운 사실이 팔레오아트에 반영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공룡도 실제 모습을 찾아간다. 예를 들어 육식 공룡인 스피노사우루스(Spinosaurus)는 뼈 화석이 새로 발견될 때마다 복원 모습이 변했다.

아직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은 공룡 종(種)이나 뼈가 발견되지 않은 부분은 상상으로 채운다. 다만 상상도 과학적이어야 한다. 거대한 공룡이 피부색이 화려해 눈에 잘 띄거나 신체 구조가 해부학에서 말이 안 되면 공룡은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동물이 된다. 고증되지 않은 영역을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조율하는 과정은 팔레오아티스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다. 잘못 그린 팔레오아트가 공룡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유식 작가가 그린 나토베나토르 공룡 복원도. 이 복원도는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가 2022년 낸 '커뮤니케이션즈 바이올로지(Communications Biology)' 논문에 실렸다./최유식

최 작가는 “팔레오아트 작업은 고생물학자에게 끊임없이 자문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발견된 화석에 따라 공룡의 모습이 과거와 달라지기도 하는데, 작가로서 앞으로 그림이 어떻게 바뀔지 기다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서점에 가면 공룡 그림이 아직도 옛날 이미지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공룡 그림은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만큼 잘못된 생각이 굳어지지 않도록 오류가 있는 그림들은 바꿔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최근 팔레오아트에 관심을 가진 미술학도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 작가는 팔레오아트를 하나의 시장으로 키우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공룡 ‘굿즈(기념품)’를 만들고 있다. 이 작가는 “공룡 그림에 대한 수요도 어린이용 시장을 중심으로 계속 있을 걸로 본다”며 “앞으로 팔레오아티스트가 될 친구들을 위해 개인적으로는 이 시장을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유식 작가의 공룡 그림책 '읽다 보면 공룡박사'에 들어간 팔레오아트./최유식

두 작가의 희망은 팔레오아트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 작가는 “공룡은 영화에서 주로 사람을 잡아먹는 괴수로 나오는데, 다른 동물처럼 새끼를 키우고 잠도 자는 친숙한 이미지로 바뀌면 좋겠다”며 “한국에서도 팔레오아트가 더 유명해져 성인들도 공룡을 좋아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멸종한 동물들이 그림 안에서 생생히 살아있다는 게 팔레오아트의 매력”이라며 “앞으로 연구가 진행될수록 공룡의 모습은 계속 달라질 텐데, 책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더 관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표현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내 그림을 보고 과거를 생생하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준성 작가가 그린 공룡도감에 삽입된 팔레오아트./이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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