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

최원형 기자 2024. 5. 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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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은 동학의 두 가지 핵심 가르침으로 거론됩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이나 벌레나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天地萬物莫非侍天主也)고 했습니다.

'무위당'은 애써 공들이지 않아도 모든 피조물은 모두 우주의 조화에 참여하고 있다(無爲而化)는 것을, '일속자'는 나락 한 알처럼 작은 피조물일지라도 우주의 조화를 온전히 품은 귀한 것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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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일속자 장일순의 생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은 동학의 두 가지 핵심 가르침으로 거론됩니다. 한울(하늘)을 모시는 것이 도리라면, 한울을 품은 사람 역시 모심을 받는 존재여야 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울을 품은 것은 단지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이나 벌레나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天地萬物莫非侍天主也)고 했습니다. 하늘은 인간이 만든 추상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생명사상의 선구자로 꼽히는 장일순(1928~1994)은 스스로를 부르던 이름을 60년대까지 ‘청강’(靑江)으로 쓰다가, 70년대에는 ‘무위당’(無爲堂)으로, 80년대에는 ‘일속자’(一粟子·나락 한 알)로 바꾸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 살다가 불교와 노장사상 등 동양사상, 특히 동학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고 이를 자기 안에서 하나로 벼려낸 과정이 그의 별호들에 녹아 있습니다. ‘무위당’은 애써 공들이지 않아도 모든 피조물은 모두 우주의 조화에 참여하고 있다(無爲而化)는 것을, ‘일속자’는 나락 한 알처럼 작은 피조물일지라도 우주의 조화를 온전히 품은 귀한 것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두 별호를 하나로 합치면, 결국 동학의 주문인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에 이르는 듯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진리가 서로가 서로를 모셔야 한다는 도리로 이끕니다. “모신다”는 말 대신 “먹여 살린다”, “동고동락” 같은 말을 써도 괜찮겠습니다. 장일순 선생은 생전에 “상대방이 있게끔 노력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더군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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