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고 끝없는 ‘아줌마 수다’ 제대로 들으려고 한 적 있나요

오경진 2024. 5.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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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는 말할 수 있는가.'

과연 우리가 아줌마들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한 적 있었는지, 듣기 싫은 것으로만 치부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되묻는 작업이다.

그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아니 들으려 하지 않았던 아줌마들의 목소리다.

그렇게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 옆의 아줌마들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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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이설의 새 장편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김이설 지음/자음과모음/208쪽/1만 5000원

SNS서 독자 모집
일주일에 30장씩
글 공개하며 완성

걸쭉하고 먹먹한
중년 여성들 수다
그들의 삶에 공감

새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를 출간한 김이설은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끄럽다며 외면했던 아줌마들의 쓸쓸한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197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김이설은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제3회 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김이설 소설가 제공

‘아줌마는 말할 수 있는가.’

소설가 김이설(49)이 새 장편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에서 던진 질문이다. 그들이 물리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묻는 게 아니다. 과연 우리가 아줌마들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한 적 있었는지, 듣기 싫은 것으로만 치부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되묻는 작업이다.

1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지난해 10월 마감이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올 6월이 다 된 거 있죠. 소설을 쓰도록 강제할 게 필요했어요. 인스타그램으로 제 ‘숙제’를 검사할 독자를 모집했죠. 일주일에 30장씩. 작가가 정리되지 않은 글을 보여 주는 건 무척 창피해요. 그래도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그렇게 했어요.”

김이설은 이걸 ‘스불재’라는 말로 압축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줄임말이란다. 신해철이 불렀던 만화 주제가 ‘라젠카 세이브 어스’의 도입부 가사인데 작가의 상황과 찰떡처럼 들어맞는다. 어쨌든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웠더니 소설 한 권이 뚝딱 나왔다. 꽤 괜찮은 듯하다. 그는 “힘들었지만, 효과는 대단했다”며 앞으로도 이렇게 써 보겠다고 했다.

“양양도 그렇고 요즘 강원도가 ‘핫’하잖아요. 바다가 있어서일까요? 젊음을 환기하는 마력이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서해는 우중충하고, 남해는 머니까. 저도 첫사랑과 함께 갔던 여행지인데….”

방금 그 말을 기사에 써도 되는지 물었더니 “괜찮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소설은 작가와 동갑내기인 마흔아홉 중년 여성 미경·정은·난주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젊은 시절의 온갖 사랑과 치욕이 소용돌이치는 강릉 바다를 마주한 세 아줌마. 사사롭고도 질펀한 수다를 끝없이 늘어놓는다. 그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아니 들으려 하지 않았던 아줌마들의 목소리다.

“아줌마들을 거위에 비유하더군요. 시끄럽고 우악스럽고…. 하지만 이들에게도 청춘은 있었거든요. 그렇게 거대했던 세계를 풀어내고 싶어도 세상이 들어주지 않잖아요. 그걸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한꺼번에 말하려니 목소리가 커지는 거죠. 거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줌마들의 서글프고 외로운 이야기.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작가의 걱정은 기우일 듯하다. 걸쭉하고 재기발랄한 아줌마들의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노라면 마치 재밌는 이모들과 3박 4일 강릉에 놀러갔다 온 기분이 든다. 깔깔 웃다가도 사랑 이야기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게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 옆의 아줌마들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소원해진 남편과의 관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생활고…. 누군가의 엄마이기에 그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모성’이다. 같은 여성인데도 아들을 키우는 난주와 딸을 키우는 정은은 남녀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날카롭게 각을 세운다. 자신보다는 자식이 더 중요한 엄마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김이설은 차기작에서 이 모성을 좀더 집중적으로 탐구할 요량이다.

“쓰고 있는 소설 스포일러를 좀 하면… 가족끼리 겨울 캠핑을 하기로 해요. 그런데 조카가 곧 태어날 것 같아서 주인공은 병원에 남고 남편과 아이만 먼저 보내요. 결국 가지 못했는데, 다음날 캠핑하다가 남편과 아이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어 버린 거죠. 조카의 생일과 자식의 기일이 같아져 버린 건데요, 이 상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오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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