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혁명적인 독서가의 책을 위한 ‘찬가’ [책&생각]

한겨레 2024. 5.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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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있어 서재를 정리했다.

책을 가져가는 분이 어떻게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 하셨다.

그럴 리가! 서재는 읽은 책으로 구성되는 법이 아니다.

읽을 책으로 가득 차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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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독자를 만들어야”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2024)

사정이 있어 서재를 정리했다. 책을 가져가는 분이 어떻게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 하셨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럴 리가! 서재는 읽은 책으로 구성되는 법이 아니다. 읽을 책으로 가득 차 있게 마련이다. 서재는 미래형인 셈이다. 책벌레끼리는 통하는 모양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에서 자신의 서가에 꽂혀 있는 철학도서의 8할은 아직 읽지 않았다고 밝혔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며 손 닿을 곳에 책을 꽂아두었다는데, 사람들은 이 어려운 책을 매일 읽는구나 하더란다. 그러면서 너스레를 떤다. ‘언젠가 읽을 예정인 책’이고 ‘읽을 마음이 들면 곧 읽지 못할 것도 없는 책’이므로 ‘읽은 책’이라고 말한들 반드시 거짓말은 아니잖냐면서 이를 일러 ‘독서 경력 사칭’이라 이름 붙인다.

연전에 사석에서 공공대출 보상권을 두고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공공도서관이 시민에게 빌려주는 책에 대한 이용료를 저자와 출판사에 보상한다는 제도다. 원칙적으로 반대할 리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서관에서 대출되는 책을 볼라치면 베스트셀러가 중심이 된다. 그러니 보상제도를 마련하더라도 실제 이익은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공영역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조절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 보상권보다는 더 많은 책을 도서관이 구매할 수 있도록, 대신 도서관이 구매하는 책의 값을 높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혹스럽게도 내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지은이는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저작권에 대한 이해부터가 남달랐다. 저작물은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증여이자, 선물이다. 그래서 인세는 선물을 받은 독자가 저자에 대한 은혜와 감사와 경의를 “마침 화폐의 형태를 빌려 제시”했을 뿐이다. ‘무상의 독자’ 개념도 주목할 만했다. 태어나서 처음 읽는 책을 직접 돈을 주고 사는 일은 거의 없다. 빌리거나 사주어서 읽었을 터다. 그렇게 무상의 독자로서 긴 독서 인생을 보내다가 어느 날 드디어 책을 사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이 글로 안정적인 생계를 꾸리고 싶다면 일단 해야 할 일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 과금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독자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단다.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다.

책 제목은 도서관마저 시장원리에 따라 이용자 수나 대출 권수로 평가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나온 말이다. 지은이는 “초월적인 것, 외부적인 것, 미지의 것”을 어떤 장소에 불러오려면 그곳을 비워 둘 필요가 있는데, 도서관이야말로 그런 성격에 딱 맞는 곳이라 정의한다. 이런 도서관은 이용자의 무지를 가시화하는 역할을 하는데, 무한한 앎에 대한 ‘예의 바름’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책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다가 이 주옥같은 글들이 책에 대한 찬가가 아니라 만가인 듯 느낀 것은 내가 나이 든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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