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주목하는 이유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4. 5. 1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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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입법을 통해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작업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도 더 심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개편해 대통령이 직접 핵심 업무를 챙기는 것이 훨씬 실용적입니다.”

김준경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전 KDI 원장)는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년 후 정권 창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는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에서는 입법 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경제 정책을 직접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장련성 기자

- 총선 이후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떻게 될까?

“총선 이전 경제정책 기조는 국가 개입 축소, 재정 건전화, 민간 기업의 경쟁력 강화, 전략산업 투자였다. 하지만 총선 패배에 따른 역대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로 입법이 뒷받침돼야 할 구조 개혁 과제의 추진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야당인 민주당의 목표는 3년 후 대권을 얻는 것이고, 이를 달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현 정부가 정책에 성공하지 못하도록 발을 묶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래도 한국 경제가 괜찮을까?

“한국 경제는 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떨어지고 있다. 한국의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2020년 세계 10위였으나 매년 순위가 하락하면서 2023년에는 멕시코에 추월당해 세계 14위로 내려앉았다. 이 추세를 지금 멈춰 세우지 못하면 성장이 멈춘 ‘늙은 경제’로 전락할 것이다. 기업 경영과 일할 자유를 옥죄는 과잉 규제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제약받고 있다. 과학과 전문성과 책임이 있어야 할 자리를 이념과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대신하면서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수출 경쟁력은?

“반도체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이미 중국 기업에 밀려 세계 경쟁력을 잃은 상황이다. KDI 분석을 보면, 중국이 수입하는 부품 등 중간재 가운데 한국산 비율은 2014년 18%에서 2020년 10%로 떨어졌다. 또 베트남이 수입하는 중간재 가운데 한국산 비율은 2018년을 고비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중국산은 계속 상승해 현재 한국산 22%, 중국산 35%로 격차가 벌어졌다. 한국의 부품 산업 경쟁력이 중국에 밀려 급속히 쇠퇴한 결과다.”

- 추락세를 저지하려면?

“성장 동력을 되찾고 일자리를 회복하며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 여소야대의 정치적 난맥상에도 비상한 각오로 대대적인 국가 혁신의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다. 국가 혁신 부재로 성장 동력이 약화되면 한국은 제로섬 사회가 되면서 서로 나눠 먹기에만 골몰하게 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추락세를 막기 위해서는 구조 개혁을 통한 국가 혁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5월 9일 경기도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뉴스1

- 어떤 혁신이 필요한가?

“경제와 사회 각 부문에 수많은 개혁 과제가 있다. 이 가운데 저출산·고령화 대책, AI(인공지능) 및 그린 에너지(녹색 경제) 전환, 공교육과 평생교육의 내실화, 규제 개혁, 양극화 해소 등 5가지를 현 정부가 향후 남은 3년 내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저출산의 경우 지금까지 380조원 예산이 투입됐지만 출산율은 여성 1인당 0.72명(2023년)까지 추락했다. 아동 수당, 양육 수당, 보육료 지원 등 단기적 현금성 지원에 집중해 왔던 정책을 넘어 사회구조적 대응책을 추진해야 한다.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 실현을 위해 신혼부부와 주택금융공사가 50%씩 지분을 공유하는 장기 주택 지분 공유형 주택담보대출 제도를 도입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며, 일·가정 양립을 위한 노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유아기는 인간 발달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영유아 보육 시설과 교사 역량 강화에 정부의 지원을 집중하면 취약 계층의 사회적 이동성을 효과적으로 향상할 수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해외의 성공 사례를 든다면?

“일본은 1989년 출산율 1.57명 충격 이후 양질의 보육·양육 서비스 확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어린이집 입소 대기 아동 제로 작전, 전통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보육과 유치원의 통합, 가족 친화적인 근무 환경 지원 등 일관성 있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결과, 2007년부터 출산율이 반등했다. 또 출산 후에도 더 많은 여성이 직장에 복귀하거나 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여성의 고용률이 2007년 49.5%에서 2022년 72.4%가 돼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하지만, 한국이 과연 일본만큼 잘하고 있나?”

AI(인공지능) 개발과 그린 전환이 글로벌 흐름이 됐지만 한국의 대응은 매우 뒤처져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AI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AP 연합뉴스

- 다른 분야는?

“AI와 그린 에너지 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력 육성과 설비 개선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첨단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은 AI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AI 전문가를 유치하고 육성하기 위해서는 AI 전문가의 비자 절차를 단순화하고 경쟁력 있는 급여를 제공하며, 글로벌 기업의 한국 내 사업장 설립을 유도해야 한다. 또 대학의 AI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대학과 산업계의 파트너십을 강화해 최고 수준의 교수진과 시설에 투자해야 한다.

그린 에너지 전환에 맞춰서는 중소 제조 업체가 탄소 배출량을 낮출 수 있는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시설을 고도화하는 데 정부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에 수출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이 탄소 배출 제한 때문에 수출 경쟁력이 약화돼서는 안 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AI 시대에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공교육과 평생교육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공교육은 기계적 암기를 강조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AI 기반 디지털 교과서를 교실에 도입해야 한다. 교사들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학생 참여형 프로젝트 수업 방식을 확대해 의사소통, 협력, 비판적 사고, 창의성 강화에 나서야 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13년 국제 성인 역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성인은 나이가 들면서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정도가 미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훨씬 심하다. 미국인은 10대에서 30대 중반까지는 한국인보다 인지능력이 처지지만 30대 중반 이후에는 한국인을 능가한다. 미국인은 놀랍게도 50대가 넘으면 인지능력이 오히려 상승하는데, 평생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뿐 아니라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노동시장이 작동해 근로자 본인의 역량 계발에 대한 유인이 크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 규제 완화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의원들이 실적을 쌓기 위해 경쟁적으로 법안을 발의하면서 규제가 양산되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의원입법 남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여야 의원에게 입법을 요청하는 이른바 ‘청부 입법’ 관행을 대통령이 지시해 금지할 필요가 있다. 정부 발의 법안은 규제 영향 사전 평가가 의무화돼 국회 제출이 까다롭지만, 의원 발의 법안은 사전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정부가 편법으로 이용해 온 관행을 없애자는 뜻이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의 입법 남발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 2월 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을 표결하는 모습./뉴스1

-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를 줄이려면?

“자영업자, 중소기업, 독점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첫째, 코로나 사태 당시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강제적 영업 금지 조치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더 이뤄져야 한다. 재원은 방역 효과로 파생된 국가 전체 이익의 일부를 활용하면 된다.

둘째,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50인 미만 기업에 대해서만 세제 혜택이 지원되나, 한국은 전체 기업의 99.8%를 차지하는 모든 중소·중견기업에 적용되고 있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비전에 비추어 보면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지원의 효과성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특정 보조금이나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는 중소기업의 규모를 하향 조정해 중소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를 둘 이상으로 쪼개는 ‘피터팬 증후군’을 없애야 한다.

셋째, 담합 등 독과점적 시장구조를 개선하고, 공정하고 경쟁적인 경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광공업 부문에서 상위 세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75%가 넘는 독점 품목 수가 전체 품목의 41%에 달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에 따른 손해액 산정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대해서 일벌백계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양극화 현상은 기업 부문에서도 나타나 독과점 품목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사진은 한국 경제의 독과점 문제 해결을 책임지고 있는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3월 7일 강연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 여소야대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혁신을 실행할 수 있나?

“법을 바꿔 부처를 신설하는 일은 야당과 협의 과정에서 취지가 변질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결국 공무원 숫자만 늘어나게 된다. 오히려 국가 혁신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먼저 공무원 수를 줄이겠다고 선언하며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그러니 법 개정에 매달리기보다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혁신위원회’를 신설하고, 현행 위원회들을 개편해 연계 운용하는 것이 실용적이라고 본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추진할 ‘국가 혁신 3개년 계획’ 의제를 선정한 뒤 정기적으로 의제를 챙기고 정부 부처에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목표와 이행 기간을 수치로 정확히 제시해 명확한 결과물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5%, 출산율 0.9명 같은 구체적인 수치 목표가 있어야 이행 상황을 점검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추진 방식은 전쟁에 비유할 경우 30일 내 특정 고지를 탈환하는, 명확한 결과물을 지향하는 것과 유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여소야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위기의 한국 경제를 끌고 나가야 하는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됐다. 사진은 지난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뉴스1

- 새로운 위원회를 만든다고 효과가 나타날까?

“대통령이 민간 전문가가 만든 개혁 과제를 정부 부처에 집행하도록 하고 이행 상황을 직접 현장 점검해야 한다. 성과와 현장이 성패를 결정하는 양대 요인이다.

이 시도가 성공하려면 첫째, 국가혁신위원회 위원을 정책 전문성을 갖춘 과학기술자와 기업인 등 비정치적 민간인으로 구성해 정치인들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지방시대위원회 같은 현행 위원회를 국가혁신위원회의 태스크포스 조직으로 잘 연계해 개혁 과제 추진의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대통령 정책실이 조정 기구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점검 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장의 문제를 정책에 반영하면 점검 회의가 대국민 소통 기구 역할도 하게 된다.”

- 그러한 혁신 전략이 성공한 사례가 있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1997~2007년 재임) 총리가 명확한 성과 목표를 설정하는 과학적인 정책 설계와 집행을 강조하면서 총리 직속 집행위원회(PMDU)를 적극 활용해 개혁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블레어 총리는 2003년에 낙후된 공공 서비스의 전형이었던 국영 병원의 수술 대기 시간과 응급 진료 대기 시간의 감축 목표를 수치로 제시한 후 성과에 따라 병원의 등급을 매겼다. 목표를 달성한 병원에는 금전적 유인을 제공하고, 미달 병원에는 외부 컨설팅을 받도록 한 뒤 그래도 등급이 나쁘면 병원장을 해고했다.

집행위원회는 행정부와 분리된 형태로 운영되어 이행 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총리는 부처 장관들이 참석하는 정기 현황 점검 회의에서 집행위원회가 파악한 성과와 문제점을 정책에 반영시키는 작업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블레어 총리의 2기 재임 중 영국은 국가 부채 감소, 낮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실업률 달성, 비효율과 도덕적 해이로 악명이 높았던 의료 서비스(NHS)의 질 개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개선, 지역 교육 격차 감소, 범죄율 감소 등 중요한 개혁을 이뤘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재임 중 총리 직속 집행위원회를 활용해 과학적인 정책 설계와 집행을 하면서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2007년 폴란드 방문 당시 연설하는 모습./폴란드 대통령실(위키피디아, 2007년)

- 한국에서 과학적인 정책 집행의 전례를 찾는다면?

“1960년대 중반 시행한 수출 확대 정책을 사례로 들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연간 수출액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액을 설정한 뒤 지역별·국가별·품목별 수출 실적을 수출 진흥 확대회의를 통해 매월 점검하고 정책적 지원을 성과에 연동시켰다. 당시에 정책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도 명확한 목표 설정과 철저한 성과 점검으로 고도성장과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가 지난 3월 발간한 ‘대통령 경제 보고서’는 미국의 그린 에너지 전환을 위해 한국의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과 유사한 전략을 적용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명확한 수출 목표를 설정하고 민간 수출 기업의 성과에 보조금을 연동시켰던 1973~1979년 한국 정부의 일시적 시장 개입이 생산성과 수출의 지속적 증가로 이어져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요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봤다. 잘 겨냥된 정부의 개입은 오늘날 미국에서도 시장 실패를 해결하고 그린 에너지로의 구조 변화를 추진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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