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으로 열리고 소리 없이 닫히고... 삼성·LG, ‘깨알 기술’ 전담팀까지 만든 이유

이해인 기자 2024. 5. 17.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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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로 자리 잡는 인간공학 디자인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LG전자 베스트샵 강남 본점. 비치돼 있는 시그니처 냉장고 문을 열자 조명이 서서히 밝아졌다. 이번엔 냉장고 문을 힘주어 닫았다. 문은 처음에 빠르게 밀려나다, 절반 이상 닫혔을 때부터 속도가 확 떨어지면서 마지막엔 부드럽게 움직이며 닫혔다. 문 닫히는 소리와 진동이 거의 없었다. 지난해 LG전자가 냉장고에 처음 도입한 ‘오토 소프트 클로징 시스템’ 때문이다. 문에 붙은 힌지에 진동을 흡수하는 부품(댐퍼)을 넣어 마지막 순간 문이 천천히 닫히게 한 것이다. 이 기술을 개발하려고 대한민국 성인들의 평균 팔 근력과 힘까지 분석했다. 정욱준 LG전자 H&A디자인연구소장은 “과거에 밑에 있는 냉장고 문을 세게 닫으면, 바람 때문에 위에 있는 냉동고 문이 열렸다 닫힌 기억이 있을 것”이라며 “요즘엔 문을 여닫는 느낌까지 고려하는 ‘감성 기술’을 제품에 적용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밤에 냉장고를 열 때 눈부심을 줄이기 위해 조명을 자동적으로 낮추는 기술도 개발해 사용 중이다.

LG전자와 삼성전자 등 가전 업계가 제품을 개발, 설계하는 단계부터 인간 공학과 감성 기술을 개발해 접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람의 행동이나 특성, 감성을 분석해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이런 한 끗 차이 기술력이 명품 가전을 만드는 디테일”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문 여는 느낌부터 다른 세탁기

이런 인간공학적 디자인은 제품 곳곳에 숨어 있다. LG전자가 올해 초 내놓은 일체형 세탁 건조기가 대표적이다. 빨랫감을 넣는 도어 안쪽 가장자리에 이용자의 손가락이 편하게 걸릴 수 있도록 물결 모양 돌기 처리가 돼 있다.세제함에 손을 넣으면 고무 재질이 만져진다. 손톱 끝이 닿아도 불편하지 않도록 설계를 한 것이다.도홍승 LG전자 외관감성기술팀장은 “최근 네일 아트를 하는 사람이 많아, 손톱 닿는 부분까지 고려해 디자인한 것”이라며 “손가락 길이까지 감안해 소재와 깊이를 정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청소기와 냉장고에 인간공학 디자인을 적용했다. 삼성전자 냉장고의 선반 간격은 172㎜ 이상으로 돼 있다. 성인 남성의 손 너비를 고려한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손이 큰 남성들이 냉장고에 음식을 넣을 때 선반에 걸려 반찬통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런 불편을 파악하고 선반 간격을 넓힌 것”이라고 했다. 청소기는 종전에 먼지통과 배터리가 손잡이 아래에 달려 있었다. 이 때문에 이용자의 손목이 무게를 받는다는 점을 파악해 위치를 위쪽으로 바꿔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최근에는 별 힘을 주지 않아도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늘고 있다. LG전자 시그니처 냉장고는 발을 갖다 대면 자동으로 냉장고 상단 문이 열린다. 양손에 식재료를 가득 들고 있는 경우 발 동작만으로도 문을 열 수 있다. 냉동고 문을 열면 내부 서랍이 툭 튀어나오는 기술도 있다. 이렇게 하면 내부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부터 센서에 살짝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문이 열리는 ‘오토 오픈 도어’ 기능을 탑재한 냉장고를 내놨고 올해 출시한 세탁건조기 AI 콤보는 세탁건조가 끝나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전담 조직 따로 두고 연구

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는 건 역설적이게도 성능과 가격이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소장은 “결국 고객이 다음번에 제품을 선택하게 되는 건 ‘감성’ 부분”이라며 “제품의 미묘한 차이가 품격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이런 부분을 연구하는 전담 조직을 따로 두고 있다. LG전자는 사업부에 17명 규모의 외관감성기술팀을 두고 있다. 도 팀장은 “한 제품이 나올 때 많게는 160개까지 세부 항목을 설정해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며 “실제 제품을 사용할 때 팔, 어깨, 허리 부분의 근육이 얼마나 사용되는지를 일일이 체크하고 시선 트래킹 기술도 접목해 위치가 적합한지 따지는 인체적 실험까지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 인간공학적 분석을 포함한 사용 경험을 늘리기 위해 CX 인사이트 그룹을 신설했다. 지난해부터는 인간공학을 전공한 전문 인력을 채용했고 앞으로도 이런 인력을 적극 채용해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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