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윤정희 보내고 모차르트로 돌아온 ‘건반 위 구도자’

김성현 기자 2024. 5. 17.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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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음악 인생 68년 만에 처음으로 모차르트 앨범 발표

어릴 적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처음 배우는 모차르트 곡 가운데 하나가 피아노 소나타 16번이다. TV 광고 음악으로도 친숙한 선율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78)가 평생 처음으로 모차르트 음반을 발표하면서 이 곡을 넣었다. 열 살 때 서울시향과 협연으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수십 장의 음반을 녹음했지만 모차르트 음반은 이번이 처음이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그가 동심(童心)으로 돌아간 셈이다. 16일 서울 신사동 거암아트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나이가 들면 고향을 찾는다고 하는데 음악도 비슷한 것 같다. 어릴 적 모차르트와 베토벤에서 시작해서 낭만주의와 현대음악으로 갔다가 모차르트로 돌아온 셈”이라고 했다.

최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음반을 내놓은 피아니스트 백건우. 지난해 상처(喪妻)한 뒤 처음 발표하는 음반이다. /뉴스1

이번 음반은 지난해 1월 아내인 영화배우 윤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 내놓는 음반이다. 백건우와 윤정희는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기념작으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초연될 당시 처음 만났다. 1976년 이들은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당시 공산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현재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납북(拉北) 위기를 함께 겪기도 했다.

아내 별세 이후 백건우는 간간이 무대에서 연주한 적은 있지만, 음반을 발표하고 전국 10여 도시에서 순회 연주에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심경에 대한 질문에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뒤 “지금 제 마음에는 저와 음악 외에는 없다. 다 잊어버리고 음악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죠”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백건우는 말하는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정적이 감돌 정도였다.

빼어난 아마추어 사진가이기도 한 백건우는 과거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음반 표지에 담고 대만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이번 음반 표지에는 모차르트의 음악 같은 동심을 표현하기 위해 열 살 초등학생 소년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넣었다. 그는 ‘모차르트와 백건우’를 주제로 그림 공모전을 열고 아이들의 출품작 가운데 직접 당선작을 골랐다. 그는 “평소 어린이들이 그리는 환상 속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빨강과 검정, 하얀색이라는 강렬한 색감으로 생명력을 표현했다. 거짓 없는 어린아이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해서 골랐다”고 말했다.

이번 음반은 백건우의 ‘모차르트 3부작’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한다. 내년에 2~3집도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이며 이 3부작을 위해서 백건우는 지난해 10월 서울 장충동의 신세계 트리니티홀에서 녹음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녹음 기술의 발전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처럼 클래식 음반 역시 전체 녹음 과정을 사전에 한꺼번에 마치는 경우가 많다. 이날 그는 “모차르트는 어린아이가 연주하기에는 무척 쉽지만, 어른이 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명피아니스트 아르투어 슈나벨의 말을 인용했다. 그 뒤 “보통 연주자들은 특별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히려 미켈란젤로가 돌덩이 속에서 조각을 만드는 것처럼 연주자 자신을 덜어내고 없애는 편이 옳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순수하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게 최고의 연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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