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먹고사니즘’과 책 읽기

경기일보 2024. 5. 17. 03:01
음성재생 설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이 43.0%에 그쳤다.

연령별로 나눠 보면 60세 이상 노년층의 종합독서율이 15.7%로 2021년(23.8%) 대비 크게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20대(19∼29세)는 74.5%로 조사 연령 가운데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지만 역시 같은 기간 3.6%포인트 감소했다. 30대와 40대의 종합독서율은 각각 68.0%, 47.9%였다.

2017년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을 보면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에 이어 독일과 영국 등이 상위에 랭크됐고 우리나라는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166위)으로 나타났다. 이상하다. 한국은 2023년 1인당 국민소득 3만4천635달러로 세계 순위 14위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가 경제 선진국이라니 이런 불균형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인의 독서 장애요인으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24.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먹고살기 너무 바빠 책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23.4%),‘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11.3%)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국민 독서량이 줄어든 이유는 유튜브 같은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은 개인 경쟁 체제의 심화다. 극한 경쟁으로 인해 개인적 여유가 없어지고, 필수 노동이나 공부 등을 제외한 독서 활동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21세기를 정보화 사회,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21세기에는 창의력 있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니 주어진 일만 해서는 금방 도태될 것이며, 그에 따라 자신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게 이런 주장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창의력 넘치는 인재를 강조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낡고 답답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창의적인 인재의 탄생은 특정한 지식과 재주를 주입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창의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려면 가족, 학교, 회사, 국가 등에 개성과 창의력이 생겨나고 발전될 수 있는 정신세계의 밑바탕이 형성돼야 한다.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력을 길러주도록 해야 한다.

한국인의 독서량 감소는 사회의 원활한 지식 생산과 유통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생각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사회적 환경이 갈수록 조악해지고 있는 이유는 생각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긴밀히 관련돼 있다. 먹고사니즘을 핑계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한국인에게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성숙한 사회를 떠나 한국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책은 야만과 싸워 이룬 문명의 기념비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되새겨 본다.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