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개저씨도 한때 소년이었다, 영화 ‘이프: 상상의 친구’

2024. 5. 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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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67번째 레터는 15일 개봉한 영화 ‘이프: 상상의 친구’입니다. ‘그 영화 어때’는 고정 요일이 목욜, 가끔 월욜, 오늘처럼 돌발적으로 중간에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작성은 하루 전에 하고요, 제가 시사회를 놓쳐서, 오늘 그러니까 목욜 오전에 ‘이프’를 봤는데요, 어마무시한 화제작이 아니어도, 별 다섯개 명작이 아니어도, 이렇게 툭 다가오는 영화, 놓치면 아까운 한마디가 다가오는 영화는 공감하실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짧게라도 보내드리려고 와글와글 커피집에서 배터리가 방전돼 가는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영화 '이프: 상상의 친구' 포스터. 마케팅에서 동심을 강조하던데 아이들 위한 영화 아닌 거 같아요. 어른이 봐야 그 느낌이 오거든요.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이프(Imaginary Friends)들을 알아보지 못했듯이.

이 영화, 애들 영화 아니고요(오히려 애들은 보면 이해 못할 듯), 어른이 봐야 와닿습니다. 배급사에서 마케팅을 너무 어린이 포커스로 하고 있어서 오해하실 거 같아요. 저도 그런 줄 알고 갔습니다. 이걸 레터로라도 쓸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개봉작 챙기는 의무감으로 관람하다보니 수첩을 안 갖고 가서 메모를 못해 아쉽네요.

제가 관람한 시간은 16일 오전 9시15분(용산CGV). 드넓은 상영관(140석)에 저와 다른 관객 딱 2명이 있었습니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서 그랬던 걸까요. ‘아, 레터로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그 앞에 오전 7시 ‘가필드’를 먼저 봤는데, ‘가필드’는 상영관에 저 혼자 앉아봤습니다. 상영관 전체를 혼자 전세 낸 경험은 오랜만이었네요. 음, 평일 7시라 그랬던 것인지. ‘가필드’도 전 괜찮았어요. 엄청난 액션 영화던데요? ㅎㅎ ‘가필드’도 쓰자면 쓸 포인트가 있는데(저의 일관된 주장. ‘어떤 영화라도 꽂히는 포인트 하나는 반드시 있다’) ‘이프’ 먼저 갈게요.

우선 ‘이프’ 뜻부터. 이프는 Imaginary Friends, 즉 상상의 친구입니다. 어릴 때 혼자서 상상으로 만들어내서 사귀는 친구들이죠. 엄마아빠도 몰라주고 친구들도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가장 가깝게 교류하는 존재. 영화 ‘이프’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이프들을 잊게 되고, 버림받은 이프들이 짝궁이 돼줄 새로운 어린이들을 찾아나서면서 시작합니다. 이프는 자신을 알아봐 줄 짝궁을 못 찾으면 영영 사라져버릴 수 있어서요. 그런데 이런이런. 아이들은 만나러 간 이프들을 못 알아봐요. 동심을 잃어서라기보다는, 제 생각엔, 이프는 각자 고유한 상처와 상상력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한없이 해맑고 세상이 환하기만 한 아이들은 이프가 필요없죠. 어딘가 비어있고, 외롭고 슬픈 아이들의 친구. 내 곁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때 거짓말처럼 나타나주는 상상 속의 존재. 그런게 이프니까요.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었단다. 네가 나를 잊고 알아볼 수 없게 됐을 때도, 기다렸어, 날마다. 지금도 이렇게 네 뒤에 있어. 보이니?' 상상의 친구인 이프들이 잃어버렸던 짝궁을 찾아나서는 영화 '이프' 중의 한 장면. 보시고 나면 제가 이 스틸을 선택한 이유를 아실 거에요. 여러분의 '이프'는 누구인가요.

아이들이 다들 이프가 안 보인다고 하는데, 오호라, 예상도 못한 이프들의 짝궁이 나타났으니, 바로 어른들입니다. 사실 믿어줄 친구가 더 필요한 건 애들이 아니죠. 세상 풍파를 홀로 헤쳐가야 하는 어른들에게 더 절실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이프’ 포스터나 이미지에 보시면 보기만 해도 포근해보이는 보라둥이가 나오는데요, 이 녀석이 어릴 적 자신을 만들어낸 짝궁을 찾아가는 뒷부분부터 영화가 재밌어지더라고요. (앞부분 절반 정도는 좀 느리고 둔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보라둥이를 상상 친구로 만들어낸 꼬마는 이젠 나이든 아저씨가 됐어요(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 남성). 보라둥이는 잊은지 오래고요. 그러니까 당연히 이프가 옆에 있어도 못 알아봅니다. 아저씨는 이직을 하려는지 서류가방을 들고 어느 사무실에 면접을 갑니다. 양복은 후줄근하고, 배도 나오고, 머리숱도 적어보이는 이 아저씨를 만나러 간 보라둥이가 창 너머로 아저씨를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오, 날씬하고(fit), 잘생겼어. 여전해!” 그러면서 목이 메고 눈물이 글썽. 아. 과연 어느 누가 저 아저씨를 보고 저렇게 말해줄까요.

아저씨, 요즘 흔한 말로 개저씨 혹은 개줌마들도 한때는 소년소녀. 그리고 그들 곁에는 그들만의 이프가 있었겠죠. 자신조차 잊어버린 어릴 적 그 모습을 이프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개저씨가 되고 개줌마가 됐어도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아무리 풍파에 찌들었어도, 저 깊은 곳, 한구석 변치 않는 모습을 알고 있기 있기 때문이죠.

여러 이프들이 저마다 짝궁을 찾아나서는데, 누가 누구랑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뒷부분이 저는 재밌었어요. 특히 주연인 라이언 레이놀즈를 골탕먹이는 이프가 있는데 그 이프의 짝궁이 누구인지도 젤 마지막에 알려줍니다. 여러분의 이프는 누구였나요. 혹시 지금도 여러분 바로 곁에 있는데 여러분이 못 알아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여기까지 우다다 쓰고 있는데, 이런,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시사회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오탈자도 못 보고, 문장 엉키는 것도 체크 못했지만, 글루 빨리 달려가야겠네요. 아마도 굉장한 작품일 듯한 느낌적인 느낌. 실제 그럴지 보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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