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항일 의병장, 90년 만에 현충원서 잠들다

방기준 2024. 5. 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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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주천면 금마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태원 의병장(1863∼1933)묘가 최근 90년만에 영월에서 서울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됐다.

이를 위해 김 의병장의 본관인 해풍 김씨 종친회와 후손들은 최근 수년간 의견 수렴을 거쳐 예우를 다하고 철저한 관리를 위해 금마리 독립만세공원 앞 산에 모셔져 있던 묘의 이장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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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받은 독립운동가
이천수창의소 결성 투쟁 앞장
영월 주천면 금마리 묘소 이장
▲ 해풍 김씨 종친회원들이 최근 서울국립현충원에서 김태원 의병장 손녀인 김연덕(사진 오른쪽)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영월 주천면 금마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태원 의병장(1863∼1933)묘가 최근 90년만에 영월에서 서울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됐다.

이를 위해 김 의병장의 본관인 해풍 김씨 종친회와 후손들은 최근 수년간 의견 수렴을 거쳐 예우를 다하고 철저한 관리를 위해 금마리 독립만세공원 앞 산에 모셔져 있던 묘의 이장을 결정했다.

김 의병장은 1895년 12월 21일 경기도 이천에서 김하락·구연영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한 뒤 이듬해 1월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를 결성하고 선봉장을 맡아 일본군 수비대 180여명과 매복작전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 2월에 치러진 이현 전투에서는 일본군에게 패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뒤 광주와 양근 의병진과 합세해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했으나 일본군 반격에 밀려 함락되자 영남지역으로 이동하던 중 유인석 의진(義陣)에 참여해 중국 서간도로 이동했다.

이후 1906년 5월 최익현 의진 소토장(召討將)을 맡아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붙잡혀 3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1907년에는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의병투쟁에 이어 원주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숨졌다.

정부는 1993년 고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최명서 군수는 “김태원 의병장의 항일 정신과 불꽃같은 삶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는 한편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국가유공자분들에게 예우를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방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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