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일본이 바라본 ‘열도의 소녀’

신지인 기자 2024. 5. 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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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도의 소녀들’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적 성매매를 한 일본 여성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주로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에서 활동하며 최대 155만원의 요금을 받아왔다. 불법 촬영 등 추가 옵션을 더해 건당 최고 200만원을 받은 여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에 붙잡힌 일본 여성 3명 외에도 수십 명의 여성들이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중에는 전문 AV 배우가 아닌, 특정한 직업이 없는 20대 극초반의 여성들도 포함됐다.

열도의 소녀들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은 일본 현지에도 전해졌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이 내용을 다룬 기사가 댓글 많은 기사 랭킹에 오르기도 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은 5700여 개. 반한(反韓) 감정을 댓글로 풀어내거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댓글이 주를 이룰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랐다. 가장 많이 보인 키워드는 ‘부끄럽다’였다. 일본이 빈곤해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슬퍼졌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이런 댓글도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과거의 일본은 해외의 저임금, 저소득 계층이 돈을 벌러 오는 곳이었다. 지금은 일본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이 해외에서 몸을 팔아 외화를 번다. 일본의 미래는 있는 것일까.” 또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해외여행을 가면 일본인으로서 여러 우대를 받아온 지금까지와 분명히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는 댓글도 있었다.

K팝 아이돌 문화가 일본에 확산되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댓글에서는 “주위에 온통 한국식 메이크업을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아이들뿐이다. 다시 헤이세이(平成·1989~2019년 일본 연호) 때와 같은 일본으로 돌아가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라고 했다. 또 “K팝 멤버에 들어가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데뷔를 하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중 일본에 돌아가지 못해 성매매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반응에는 오래 경기침체를 겪어온 일본 국민들의 자조가 섞여 있다. 16일 일본 내각부는 일본의 올해 1분기(1~3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0.5%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2분기 만에 다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버블 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30년’을 탈출한 줄 알았지만 개인 소비도 줄고 수출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신입 사원 월급은 22만엔(약 193만원)으로 우리나라 최저임금(206만원)보다도 적다.

같은 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상향해 발표했다. 대외 수출 상황이 좋아진 탓이겠지만 민간 소비자들이 느끼는 경기는 아직 차갑다. 일본 장기 침체의 원인인 인구 고령화와 소비 감소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의 성매매도 많은데 왜 일본 여성이 성매매한 것만 대서특필하나”라는 독자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열도의 소녀들이 한국에 온 건 일본 경기 침체의 단면이고,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도 예상치 못한 나라에서 부끄러운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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