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19금’의 추억은 있다[기자 에세이]
강주일 기자 2024. 5. 17. 00:02
누구에게나 첫 ‘19금’ 영화의 추억이 있을 터.
내 첫 ‘19금’ 영화는 1994년에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였다. 배우 문성근, 정선경, 여균동이 적나라한 러브신을 펼쳐내는 영화다.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정선경이 ‘바지 입은 여자’(세계적인 엉덩이를 가진 여자)역을 맡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영화가 포스터에는 ‘야한 농담 같은 영화’ ‘청바지 처럼 꽉 끼는 가벼운 포르노그라피’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지만, 사실은 성적 욕망을 드러내 사회적 욕망을 풍자하는 깊은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는 평론가들의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제15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신인 남우상, 신인여우상 등을 휩쓸기도 했다. (라지만 사실 그땐 그런 건 잘 몰랐다.)
당시 영화 제목처럼 ‘누군가에게 나를 전부 보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한 열일곱 소녀였던 나는 부모님이 안계신 날을 틈타 친구들과 비디오 대여점에서 세상 야하다고 소문난 그 영화를 빌려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한 친구는 대학생 큰 언니의 롱코트와 빨간 립스틱을 몰래 훔쳐(?) 왔고, 우리 중 가장 노안인 친구에게 그 코트를 입혔다.
나는 친구에게 “길게 말하면 들키니까 들어가자 마자 당당하게 눈을 ‘똭’ 마주치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 주세요’ 이렇게만 말해” 라고 조언했던 기억이 난다. 비디오 가게 사장님의 넓은 아량(?)으로 우리의 첫 ‘19금’ 영화보기는 성공했지만 사실 영화의 내용이나 당시 화제가 됐던 베드신, 정선경의 예쁜 엉덩이 같은 것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부모님이 오실까 1분 1초가 초초했고, 영화를 다 본 뒤엔 검정 비닐봉투에 돌돌 싸서 숨겨 나왔으며, 다음날 반납하기 전까지 놀이터 철봉 아래 묻어뒀다는 사실 만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 내 집에서 함께 ‘19금’의 선을 넘고 싶었던 우리들은 ‘29금’의 선도, ‘39금’의 선도 함께 넘었다. 물론 지금은 함께 영화를 보지는 않는다. 다만 ‘39금’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뿐.
‘19금 문화’는 어느 시대나 외설 논란의 도마에 오른다. 대한민국은 미투운동 확산 이후 여성 인권과 젠더 이슈가 주목받으면서 성을 소재로한 작품들이 외면받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성문화가 음지화돼 성착취물이나 불법영상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젠 어떤 영화를 봐도 열 일곱 시절과 같은 ‘손에 땀을 쥐는 몽글몽글함’은 느껴지 않는 나이가 됐다. ‘19금’ 그토록 넘고 싶었지만 일상이 되고나니 시들해진. 하지만 지나고 나니 사무치게 그리운. 내 인생의 첫경험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외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9금’은 누구에게나 있었던 뜨거운 가슴과 청춘의 이야기가 아닐까.
스포츠경향은 창간 19주년을 맞아 ‘19금 특집’을 선보입니다. ‘19금 가수’로 떴지만 ‘밤양갱’으로 만인의 연인이 된 비비의 이야기, ‘19금’에 토크에 일가견 있는 한혜진, 박나래, 풍자, 엄지윤을 만나 얘기도 나눴습니다. ‘19금 영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봉만대 감독의 근황도 들었네요. 로맨스를 다룬 작품들은 언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한 걸까요? OTT의 활성화로 장르물이 늘면서 최근 선보이는 ‘19금’은 선정성보단 잔혹성 논란이 더 큽니다. 그나마 해외 작품들 중에선 간간히 찾아볼 수 있지만 국내 영화계에선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이후 국내서 성공한 개봉작을 찾기가 힘든 상태죠. K-콘텐츠는 취향의 다양화에 따른 장르의 다양화가 절실합니다. 터부시하기엔 일상과 가장 맞닿아있는 ‘19금’이야말로 콘텐츠 다양화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좋은 재료가 아닐까요? 청불 콘텐츠, 청불 아이콘에 대한 열린 시각이 시급합니다. 더 많은 ‘19금’ 특집 기사들은 스포츠경향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주일 기자 joo102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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