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 농산물로부터 ‘독립’…두통·숙취 ‘해방’ 우리술

박준하 기자 2024. 5. 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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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답사기] (77)·끝 경기 포천 ‘민주술도가’
국산 농산물 사용 고품질 막걸리 빚어
대표 제품 ‘독립군막걸리’ 등 9종 생산
‘콘체르토 1번’ ‘추앙’ 뜨거운 반응 얻어
우리 효모·포도즙 활용 ‘향·단맛’ 호평
경기 포천 민주술도가의 신신애 대표(왼쪽)와 김도후 대표가 양조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애주가들은 저마다 술에 빠진 이유가 다양하다. 술이 맛있어서, 술자리가 좋아서, 몸에 잘 맞아서 등 듣고 있으면 재미있는 이유가 참 많다. 경기 포천 민주술도가의 김도후 대표도 그런 점에선 빠지질 않는다. 극단 연출가였던 그는 ‘정선아리랑’ 대중화에 힘쓰는 등 우리 것에 유독 애정이 많았다. 그러다 우리 막걸리야말로 외국산 농산물로부터 ‘독립’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아내인 신신애 대표와 양조장을 차리게 됐다.

“반주하는 걸 참 좋아했는데 막걸리는 마시면 머리 아프고 숙취가 심한 술이었어요. 직접 막걸리를 빚어서 마셔봤는데 숙취도 없고 개운하더라고요. 찾아보니 제가 마시던 막걸리들은 저렴한 외국산 재료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30여년 극단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김 대표는 처음엔 소설을 집필했다. 그중 우리술과 관련된 장면이 있었는데, 장면을 묘사하려고 술을 찾아 마시려니 마땅한 게 없었다. 본격적으로 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그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 때 겪었던 우리술의 아픈 역사와, 현재도 많은 막걸리를 외국산 농산물로 만드는 데 비애를 느꼈다. 자신이 빚는 막걸리만큼은 우리농산물을 사용한 품질 좋은 술을 빚고 싶었다.

김 대표는 2017년 경기 의정부에 ‘독립군포차’를 내고 ‘독립군막걸리’ 생산을 시작했다. 단맛 없이 담백한 막걸리는 술꾼들의 마음을 금세 사로잡았다. 독립군포차가 민주술도가가 된 건 2022년이다. 빚은 술이 반응이 좋고 술맛도 안정화되자 포천으로 자리를 옮기고 본격적으로 상업 양조에 나선 것이다. 신 대표는 “‘일주일에 7일 일하는 이유는 일주일에 7일밖에 없어서 그렇다, 8일이었으면 8일 내내 일했을 것’이라는 농담을 서로 나눌 정도로 남편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군포차가 민주술도가로 상호명이 바뀌고선 술도 다양해지고, 술맛의 영역도 드라이한 맛부터 단맛까지 넓어졌다. 술 종류만 해도 무려 9종이고, 올해말 2종이 추가로 출시된다. 직접 만든 쌀누룩을 사용하고, 포천시에서 나는 멥쌀과 찹쌀로 술을 빚는다. 대표적인 술은 역시 ‘독립군막걸리’다. ‘블루’는 알코올 도수가 8.3도, ‘블랙’은 무려 18.6도다. 일반적인 막걸리보다 도수가 높고, 멥쌀로 빚어 술맛이 달지 않으며 쌀이 주는 풍미도 진해 마니아층이 두텁다. 각각 쌀·허브·포도를 넣어 만든 ‘민주막걸리’는 세번 담그는 삼양주로 술맛은 깊은데 뒷맛은 깔끔하다. 특히 유기농 허브가 들어 있는 ‘민주허브막걸리(14도)’는 개성이 있고 한식과도 두루 어울린다.

경기 포천 민주술도가의 물 대신 포도즙을 넣어 만든 포도막걸리 ‘추앙’(왼쪽), 우리나라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 막걸리 ‘콘체르토 1번’.

최근 출시한 막걸리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한국식품연구원이 개발한 효모를 활용한 ‘콘체르토 1번(6도)’, 물 대신 포도즙을 넣어 술을 빚는 ‘추앙(12도)’이 바로 그것이다. ‘콘체르토 1번’은 과일향이 강한 단맛이 특징인 막걸리로, 우리 효모를 사용한 데 의미가 있다. 이 막걸리를 빚기 전까지 국산 효모는 외국산보다 아쉽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산 효모는 많이들 사용을 안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 것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막상 술을 만드니 잘 익은 과일향이 화사하게 밀려들어왔죠. 우리 효모도 이런 향을 낸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추앙’은 내놓자마자 대박이 터졌다. 일반적으로 술은 쌀·물·누룩으로 막걸리를 빚는데 물 대신 포도즙을 넣은 것이 비결이다. 이런 술 빚기는 조선시대 ‘증보산림경제’를 비롯한 고문헌에는 나와 있지만 발효 과정이 물로 만드는 것보다 까다롭고 상업 양조할 때 가성비가 좋지 않아 양조장에서 많이 쓰지 않는다. 발효·숙성도 3개월 이상 걸리는 ‘귀한 몸’이다. ‘추앙’은 포도가 주는 자연스러운 과일의 단맛이 빼어나다. 목으로 넘어가는 게 아쉬워 자꾸 입술만 핥게 되는 술이다. 김 대표는 술 ‘추앙’을 내놓은 것처럼 ‘남들이 안 가본 길’을 걷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극을 한 작품 올릴 때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듯 술 빚기도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술을 내는 데 한참 공을 들여야 하죠. 남들이 빚지 않은 술을 내고 싶고, 그 술이 많은 사람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포천=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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