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농촌 60년, 낙후·난개발 이미지 벗어나 거주·휴양 공간 가치 재조명

관리자 2024. 5.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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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농업 60년 변천사] (2)농촌 정주공간 변화상
1970년 새마을운동 변화 분수령
종합적 지역 개발로 마을 재탄생
1993년 도입한 준농림지역제도
규제 공백 틈탄 농지훼손 초래해
‘농촌 보전’ 위한 움직임도 주목
지역소멸 위기상황은 해결 과제
1960년대엔 마을마다 우물이 있었고 아낙들은 아침저녁으로 물을 길러 가족의 식수로 사용했다(왼쪽). 새마을운동이 활발하던 1970년대 마을주민이 모여 물길이 되는 수리시설을 만들기 위해 삽질을 하고 있다. 한국 농업·농촌 100년사 근대 농업·농촌 사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광복 70년 사진전 자료

농촌공간의 변화 몰고 온 새마을운동

지난 60년간 농촌 공간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근대화·산업화 과정과 맞물려 진행됐다. 시대에 따라 농촌에는 국가적으로 부여된 역할이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온 주민과 농민들은 사회·경제적 격변에 대응하고 국가적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생활 터전으로서 농촌 공간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금의 농촌 모습이 형성된 데 이정표가 된 사건으로 새마을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정부에서 촉발해 농촌 마을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이를 확산시킨 동력은 농촌 주민에게서 나왔다. 정부에서 지원한 시멘트·철근을 이용해 마을 도로 포장, 마을회관 건립, 하천 정비, 교량 건설 같은 일을 주민들 스스로 해냈다. 노동력을 부담하며 일부 물자와 재원을 갹출하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과거 전통적 농촌 마을의 대표 풍경이었던 초가지붕이 일제히 개량된 것도 이때 일이다.

새마을운동 이전까지 농촌은 뒤처지고 낙후한 곳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농촌 마을에 대한 인식을 바꿔놨다. 생활환경 개선, 소득 증대를 위해 주민이 주도적으로 나선 운동의 성과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이것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1970년대를 대표하는 종합적 지역개발로 자리 잡았다. 또한 농촌 주민은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 참여와 더불어 식량 증산과 주곡 자급이라는 국가적 목표 달성에 매진하는 등 우리나라의 근대화 여정에서 무시하지 못할 역할을 맡았다.

산업화 물결, 농촌의 난개발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농촌이 국가적으로 요구받는 역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도록 도시 개발과 산업 생산을 위한 토지를 농촌에서 원활히 확보하는 일이 국가 정책에서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특히 1990년대 세계화와 규제 완화의 흐름 속에서 도입한 준농림지역 제도는 이런 상황 변화를 선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준농림지역은 1993년 당시 ‘국토이용관리법’ 개편에 따라 도입한 것으로 농업진흥지역 외 농지와 준보전임지가 포함되는 용도지역이다. 원활하게 토지를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인 까닭에 환경오염 정도가 심하거나 규제가 필요한 대규모 개발행위만 아니라면 준농림지역에서 폭넓게 허용됐다.

이 제도가 농촌 공간에 미친 파장은 상당했다. 규제의 공백을 틈타 아파트·공장·음식점 등이 농촌에 무계획적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특히 개발 압력이 높은 수도권 그리고 경관이 좋은 농촌에서 이같은 난개발이 두드러졌다. 논 한가운데 ‘나홀로 아파트’ 입지 같은 현상이 당시 언론 지면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농촌에서 목격하는 난개발 문제의 상당 부분은 이때 씨앗이 뿌려졌다.

준농림지역 난개발 현상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 문제에 대응하고자 여러 논의를 거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이 제정됐고 2003년부터 시행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시·군 행정구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계획 수립, 준농림지역을 없애고 새로운 용도지역인 관리지역 제도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국토계획법’을 시행했음에도 농촌 난개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오히려 난개발 현상은 전국 농촌으로 확산됐고,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공장과 인접한 마을에 사는 주민에게서 암 발병이 속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농촌 가치 인식, 보전 위한 움직임

도시화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농업계 바깥의 이런 접근법과 대조되게, 농촌이 지닌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보전하면서 살리려는 흐름도 다른 한편에 자리해왔다. 2000년대를 전후로 도농교류·농촌체험 활동에 참여한 농촌 마을이 늘어나며 농촌관광 저변이 확대됐다. 귀농·귀촌 유입이 꾸준히 이어졌으며, 특히 과거 산업화 시기에 이촌향도 흐름을 주도했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농촌 유입이 뚜렷한 추세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다(多)지역 거주형 생활양식이 자리 잡고 있다.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서도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5도2촌형, 4도3촌형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농촌 공간의 새로운 변화 현상도 목격된다. 과거에는 방치됐던 폐창고·정미소·양조장 같은 시설이 새 단장을 거쳐 도시민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한 사례가 등장했다.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농촌만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근대화 시기에 농촌이 맡았던 식량 생산기지 역할 그리고 이후 도시 외곽이 확산하던 시기에 농촌이 담당했던 저렴한 토지 공급 역할을 넘어 장래에는 국민들의 거주·여가·휴양과 자기 실현의 장소로서 농촌을 향한 요구가 늘어날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장래 국민들이 기대하는 공간으로 발전하기에 앞서서 농촌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저출생 초고령화 상황 속에서 국가적인 인구 위기를 맞았다. 2010년대 들어 약간 증가하던 농촌 인구도 2020년대 이후 감소세로 전환됐다. 앞으로 자연감소가 진행되면서 인구 감소는 더욱 가속화하여 ‘농촌 소멸’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성주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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