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제 말 좀 들어주세요
그렇게라도 대화 시도하고파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딸은
“아빠는 딸을 사랑해?” 묻고파
샤만타 슈웨블린 ‘입속의 새’(‘입속의 새’에 수록, 임지영 옮김, 창비)
그런 딸을 돌보느라 아내는 지쳤다. 그가 사라를 데려와야 했다. 새를 주지 않으면 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딸을 집 안에 꽁꽁 가둬버리고 싶었고 정신병원에 입원시킬까 고민도 했다. 집으로 새가 든 상자를 갖고 오던 아내가 독감에 걸려 오지 못하게 됐다. 새를 사러 가든가 딸을 계속 굶기든가. 아버지로서 이제 그는 선택하고 결정해야 했다. 딸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아빠는 나를 사랑해?”
결말을 제외하면 이 단편의 줄거리는 거의 여기까지다. 새를 먹는 딸을 가진 부부의 이야기. 인물도 딸과 부부, 세 사람뿐. 아르헨티나 작가 샤만타 슈웨블린의 충실한 독자로서 그녀의 소설이 “기이하고 낯선 세계”를 보여준다는 걸 알고 있어도 새 작품을 대할 때면 마음의 준비를 하곤 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비일상적인 것들로 현실의 다른 면을 일상적으로 보여줄까? 하는 놀람과 기대와 궁금증 때문에.
“넌 새를 먹는구나, 사라.” 그가 묻자 딸은 이렇게 말한다. “아빠도 마찬가지잖아.” 나는 이 대화들에 표시해두곤 몇 번이고 읽었다. 그러곤 ‘새’를 다른 단어로 치환해 보았다. 넌 달팽이를 먹는구나, 넌 오이를 먹지 않는구나, 넌 게임만 하는구나, 넌 술만 마시는구나…. 세 사람 중 누구의 관점에서 다시 읽을까 하는 생각도. 그에게 감정이입하면 딸에게 관심 없었던 아버지의 죄책감이 느껴지고 실비아 입장에서 보면 혼자서 사춘기 딸을 양육하느라 힘들어하는 엄마의 감정이, 사라 입장으로 따라 읽으면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기의 불안을 엿볼 수도 있다.
‘새’란 무엇일까? 새를 먹는 행위는? 문학 비평 용어로 ‘알레고리’는 “적어도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이야기나 이미지를 뜻한다. 표면적으로는 새를 먹는 딸을 둔 부모의 이야기처럼 읽히지만 수면 아래엔 누군가의 정신적, 도덕적, 혹은 사회적인 이중의 의미를 포함한. 그래서 ‘입속의 새’는 읽을 때마다 독자의 상황과 감정 상태에 따라서 새가 무엇인지, 세 인물 중 누구에게 공감하면서 읽게 되는지 매번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한 작품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하게 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도록 쓰는 힘이 이 작가의 개성으로 느껴진다.
처음 이 단편을 읽었을 때 나는 어떤 미안함 때문인지 부모 생각이 났다. 이십 대에 수년 동안 방문을 닫고 책만 읽었던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그때 그런 맏딸을 보고 부모는 얼마나 당황하고 낙심했을까. 그런데 오늘 다시 이 단편을 읽으니 집을 제대로 꾸려나가고 싶은 가장의 위치에서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가족에게 거북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라고 대화를 시도하고 싶다. 그 전에 먼저 소설에서처럼 이렇게 물어봐야 하는 게 좋을지 모른다. 아직 자식들을, 가족을 사랑하는지부터.
조경란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호중이 형! 합의금 건네고 처벌받았으면 끝났을 일… 형이 일 더 키웠다"
- 부모 도박 빚 갚으려고 배우 딸이 누드화보…주말극 ‘미녀와 순정남’ 막장 소재 논란
- 광주서 나체로 자전거 타던 유학생, 숨진 채 발견
- 팬 돈까지 뜯어 17억 사기…30대 유명 가수, 결국 징역형
- 구혜선, 이혼 후 재산 탕진→주차장 노숙…“주거지 없다”
- 생방 도중 “이재명 대통령이”…곧바로 수습하며 한 말
- 유영재, 입장 삭제 ‘줄행랑’…“처형에 몹쓸짓, 부부끼리도 안 될 수준”
- 반지하서 샤워하던 여성, 창문 보고 화들짝…“3번이나 훔쳐봤다”
- "발가락 휜 여자, 매력 떨어져“ 40대男…서장훈 “누굴 깔 만한 외모는 아냐” 지적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