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화장장과 마을민주주의 실험

기자 2024. 5. 1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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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의 시절이다. 영화 <파묘>도 성공했고, 올해 2월이 29일까지 있던 윤일이었으므로 지자체마다 개장 유골에 대한 화장장 운영 연장 공고가 많았다. 여전히 농어촌엔 윤달 따져 묘지 이장이나 수의를 장만하는 문화가 있어 이런 공고를 보곤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례 방식으로 화장보다 매장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극적으로 화장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져 2022년 말 화장률이 91.7%에 이를 정도로 보편적인 장례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장장은 ‘혐오유형’으로 분류되는 기피시설로 화장장이 들어서려는 지역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는 화장장이 모자란 데다 코로나19로 화장 대란을 겪었던 터라 지자체마다 장지시설 마련에 고심이 깊다. 그런데 변화는 농촌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얼마 전 경남 거창군에 귀농귀촌 1번지로 알려진 남하면 대야리 일대에 공영 화장장이 들어서기로 공표되었다. 주민 77명 중 76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화장장 유치에 나선 마을이 여러 곳이었을 정도로 화장장이 기피가 아닌 유치시설로 변모한 것이다. 관내에 화장장이 없어 관외인 함안군이나 사천시까지 가야 했던 거창군민들의 애로가 있었고, 화장장 건립은 현 군수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그간 중앙정부도 화장시설을 갖추지 못한 지자체를 묶어 통합으로 화장장을 설치하도록 지원을 해왔으나, 입지로 확정된 곳은 주민 갈등이 일곤 했다. 특히 개발수요가 많은 경기도 일대는 여전히 입지를 찾지 못하고 떠도는 곳이 많다. 본래 화장장을 갖추지 못한 함양, 합천군과 통합 화장장을 설치하려 했지만 논의가 더뎌 거창군이 단독 화장장을 건립하기로 나선 것이다. 거창군은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공원 같은 선진시설을 약속했고, 파격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60억원 규모의 주민숙원사업 지원금과 화장장 수입의 20%를 10년 동안 지원하고, 부대시설 운영권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여기에 화장장이 들어서는 대상지의 유공단체와 유공자들에게 3000만원을 지원한다는 확실한 ‘당근’을 제시하기도 했다. 저간의 사정은 복잡하겠으나 주민과 행정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와 협의를 통해 결정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 중에서도 유독 죽음에 대한 기피나 혐오가 짙은 문화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도 있다.

거창군은 인구 6만명 선을 유지하다 올해 그 선이 무너졌고, 매달 50여건의 장례를 치르는 전형적 농산어촌이다. 탄생보다는 죽음을 돌봐야 하는 시대를 먼저 맞이한 지 오래다. 수도권에선 제발 나가라는 현수막이 나부끼는 교정시설마저도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비수도권 농촌지역의 사정이다. 게다가 농촌엔 온갖 기피시설이 야금야금 자리를 잡아왔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이나 의료폐기물 소각장, 송전탑, 도축장, 분뇨처리장과 같은 기피시설이 들어와 주민들을 쪼개놓았고 그 갈등과 분열엔 늘 돈 문제가 있었다. 이장이 얼마를 받았다더라, 외지인이 땅을 미리 사놓았다더라 등 무성한 소문 속에 송사가 벌어지고, 각자 다니는 길마저 따로 있는 마을이 있을 정도다. 마을에 들어선 관광시설의 운영을 두고 오해와 갈등이 불거져 이장이 자살하는 사건까지 봤다. 어쩌면 화장장 유치가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화장장이 자리 잡으면 다른 것을 요구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다만 이 사례를 환영하면서도 우려스럽다. 화장로 3기 정도를 운영하는 소규모의 화장시설이 얼마만큼의 경제성이 있을지, 고령의 주민들이 고용과 연결이 될지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그 ‘파격적’인 지원을 어떻게 분배하고 주민과 마을에 선용할 것인지가 큰 숙제로 남는다. 마을 민주주의의 본격적인 실험은 오히려 지금부터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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