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부모와 자식의 천륜

김태훈 논설위원 2024. 5. 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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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02년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오는 패륜아는 거액의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고 싶어 하는 부모를 살해한다. 지금도 회자되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 죽어가던 어머니가 거실 바닥에 떨어진 아들의 부러진 손톱 조각을 발견하고는 그 손톱을 먹어 증거를 없애려 한다. 패륜아 자식조차 지켜주고 싶은 부모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삼키지 못한 손톱이 어머니 목에서 발견되며 아들의 범죄를 밝히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유산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자식 사랑의 증표이지만 동시에 자식의 인생을 망치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지혜로운 왕이었던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도 그런 딜레마에 빠졌다. 아들에게 나라를 유산으로 남겼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를 물려주지 못했다. 왕이 된 아들은 “아버지가 너희를 채찍으로 때렸다면 나는 전갈로 때리겠다”며 무거운 세금과 노역을 부과했다. 분노한 백성이 다른 왕을 옹립해 나라가 유다와 이스라엘로 두 쪽 났다. 유대 사가들은 “솔로몬이 지혜도 물려줬다면 피할 수 있었던 비극”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자동차 기업 피아트를 창업한 아녤리 가문은 그룹 회장인 존 엘칸과 어머니가 상속 분쟁을 벌이고 있다. 선대의 유산 중 1조7000억원을 받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네 몫에서 더 떼어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아들을 탈세범이라며 고발했다. 2004년 이후 연을 끊고 산다니 상속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공정위가 조사해보니 40대 기업의 절반이 상속 분쟁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상속 분쟁은 부자만의 골칫거리도 아니다. 경제성장으로 자산이 축적되면서 우리 국민 중 적어도 1500만명이 물려줄 재산을 가진 채 사망한다. 특히 부동산 가치가 급등한 뒤로 다툼이 더 많아져 상속 분쟁은 지난 8년간 4배로 늘었고 연간 이혼소송보다 두 배나 많을 정도로 흔해졌다. 골육상쟁으로 가족이 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는 불행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지난 3월 타계한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이 의절했던 차남에게도 재산을 물려주라고 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차남은 형제를 향한 고소 고발로 아버지인 조 명예회장에 큰 고통을 안겼다. 그런 조 명예회장이 유언장에 “부모 형제의 인연은 천륜이니 우애를 회복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어느 책에 나온 ‘상속 십계명’ 중 하나가 ‘상속은 가문의 전통, 명예, 정신, 자산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가족의 사랑과 우애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조 회장의 유언으로 가족과 유산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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