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물 건너 갔다"…의대교수들, 법원결정에 '망연자실'

백영미 기자 2024. 5.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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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2000명 증거 없는데 기각 납득불가"
"법원 판단, 공공복리 부합하는지도 의문"
의대교수들 '주4일 근무체계' 강화도 검토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의대 교수, 의대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판단이 나올 것으로 발표된 16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5.16. ks@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정유선 기자 = 법원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기각·각하 결정에 의대 교수들이 분노와 충격,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은 법원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소심 판단을 두고 "의대 2000명 증원의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진하는 게 공공복리를 감안한 것이냐",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증원의 근거가 없다고 밝혔는데 법원에서 기각된 것에 대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19개 의대 교수가 참여하는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관계자는 "법원에서 의대 2000명 증원의 근거가 뭐냐, 예산을 확보했냐 등을 따졌었고, 의료계에서 증원의 근거가 없다고 밝혔지 않느냐"면서 "법원의 판단이 공공의 이익에 과연 부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해도 복귀할까 말까 였는데, 법원의 결정이 납득되지 않아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올해 말까지 도산되는 병원들이 나오고 관련된 사업체들 줄도산, 대량 실업자 양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인력 부족으로)환자들도 수술도 계속 뒤로 밀릴 것이고, 의대생 교육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병원들은 고질적인 저수가 체계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전문의 대신 전공의의 최저임금 수준(시간당 1만2000원)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왔다. 인력 부족으로 입원·수술 등이 대폭 줄어든 가운데 전체 의료 수익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인건비는 고정적으로 지출되면서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으로 의료 공백이 석 달 가량 이어지면서 그동안 겨우 버텨온 대학병원, 특히 지방사립대병원들은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연쇄적으로 병원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의 도산과 간호사 등 보건의료직의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A 교수는 1997년 서울시보라매병원 사건을 예로 들며 "의료 현실을 모르는 법조계가 연이어 의료계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면서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회의록조차 없는 졸속 추진을 사법부가 제동을 걸지 않아 매우 아쉽다"고 했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1997년 12월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를 부인의 요구로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시킨 후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부인에게는 살인죄를, 환자를 퇴원시킨 보라매병원 의사들에게는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의사들 사이에선 "나도 살인자로 몰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의 B 의사는 "애초에 기대할 것이 없었다"면서 "의료 사고 형사 처벌에 천문학적 배상 판결의 현실을 모르고 필수의료를 지원했던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실을 알게 된 것은 다행이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7가지 복귀 조건 중 하나로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를 요구해온 전공의들은 복귀 명분이 사라진 것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이 낮아 의료체계가 급속히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빅5' 병원의 A 교수는 "대다수 필수의료 전공의들은 이미 미국, 일본, 영국 등의 의사면허를 준비 중"이라면서 "국내에서 혹독하게 수련을 받은 만큼 합격율도 95% 이상일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필수의료의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 암담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부터 병원을 떠난 전공의(과별로 3~4년 레지던트)들이 오는 20일 전후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전문의 수련 규정에 따라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된다. 2026년 2월이 돼야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렇게 되면 내년에 전문의 2900명 가량이 배출되지 못한다. 전문의 배출 시점이 뒤로 밀리면 군의관, 공보의 배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수들은 의대 증원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전의비는 전날 온라인 임시총회를 열고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되면 근무 시간을 재조정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주 1회 휴진’을 강화하거나 ‘1주일 휴진’까지 검토하고 있다. 교수들의 물리적·체력적 한계 등을 감안해 주 4일 근무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ram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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