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녹이는 시간과 기다림[그림책]
기리네 집에 다리가 왔다
강인송 글·소복이 그림
노란상상 | 48쪽 | 1만4000원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길에서 비둘기가 다가오면 소스라치는 사람, 길고양이를 마주치면 움찔하는 사람, 산책 중인 개가 짖으면 뒷걸음질치는 사람 등.
<기리네 집에 다리가 왔다>의 주인공은 개를 무서워한다. 어느 날 단짝 친구 기리가 신이 나서 ‘나’에게 집에 강아지와 함께 살게 됐다고 속닥속닥 소식을 전해준다. 잔뜩 부푼 기리의 마음과 달리 ‘나’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세상에! 난 이제 걔네 집은 다 갔다.”
‘나’에게 개는 외계인과 같은 존재다. 왜 짖는지 알 수 없고,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마음을 알아맞히기도 힘들다. 그런 속마음을 기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어렵다. ‘나’가 개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리가 ‘나’와 놀고 싶어 하지 않을까 봐 두렵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리를 피하던 ‘나’의 집에 기리가 찾아온다. 그것도 개와 함께. 기리는 ‘강아지’라고 말하지만 내 눈에는 강아지가 아니다. 작고 귀엽고 복슬복슬한 다른 반려견과 달리 기리네 ‘강아지’는 갈색 털의 듬직한 멍멍이다. 요즘 말로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이랄까.
기리는 딱 한 번만 만져보면 부드럽고 따뜻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했지만, ‘나’는 마치 파충류나 맹수를 만지는 것과 같이 두렵다. 게다가 개의 혀는 축축하고 뜨겁다! 함께 재미있게 놀 것을 기대했던 기리는 실망한 채 돌아선다. 이대로 둘의 우정은 끝일까? 이제부터 진짜 우정의 시작이다.
‘나’는 울면서 돌아가는 기리를 불러 세운다. 기리와 거리를 두고 선 ‘나’는 강아지의 이름을 묻고, 기리는 “다리”라고 답한다. “우리 다리는 기다리는 거 잘해!” 이제 기리네 개는 ‘개’도 ‘강아지’도 아닌 ‘다리’가 됐다. 시간과 기다림으로 ‘나’와 기리, 다리 사이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질 것이다.
단순하고 함축적인 글, 유머러스하고 따스한 그림이 ‘나’의 마음을 유쾌하게 전한다. 서로 다른 존재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여우와 왕자를 떠올리게 한다.
비단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의 자리에 뱀, 사자, 악어 등 다른 낯선 존재의 이름을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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