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먹은 환경부’ 살아있는 금강의 노래를 들어라 [왜냐면]

한겨레 2024. 5. 1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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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세종보 인근 금강에 들어가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제공

박은영 |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흰뺨검둥오리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바닥보호공 위를 지나간다. 지붕 뾰족한 녹색 천막을 바라보더니 태연하게 제 걸음을 재촉했다.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며 지난달 30일 차린 이 천막은 수문을 닫으면 잠기는 위치에 있다. 바로 앞으로 하중도가 넓게 자리 잡은 금강이 흐른다. 하중도에는 흰목물떼새 부부들이 지어놓은 둥지와 알들이 종종 자리 잡고 있다. 물떼새들을 관찰하려고 다가선 강은 한없이 평화롭다. 강 밖의 풍경은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화롭기도 긴박하기도 하다.

백제문화제를 핑계로 매년 수문을 닫았고, 문화재인 고마나루 모래를 뻘로 만들기를 벌써 8년을 반복해 온 공주시가 또 수문을 닫겠다고 나섰다. 환경부는 공주시와 정진석 국회의원의 요구에는 귀를 열었지만 매년 항의하는 환경운동가들의 말에는 귀를 닫았다. 천막을 친 지 3일이 지나자 공주시 공무원 100여명이 3차 계고장을 들고 와 천막을 모조리 뜯어냈다. 활동가들은 그 자리에서 노숙하며 버텼다. 환경부와 공주시는 저항하는 활동가들을 모래사장에 그대로 두고 공주보 수문을 닫아버렸다. 강물은 빠르게 차올랐다. 물이 가슴까지 차도록 9시간을 버텼고 공무원들은 제방 위에 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농성을 마치고 강을 빠져나오면서 굳게 닫힌 공주보 수문을 바라보았다. 그 차가운 어둠 속에서, 발밑에 있을 고운 모래를 기억하고 싶어 꾹꾹 밟으며 물 밖으로 나서며 생각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 공청회가 열린 지난해 8월25일 오전 서울 중구 스페이스쉐어에서 한국환경회의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가물관리위를 규탄하는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 가운데서 발언하는 이가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이다. 연합뉴스

이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날뿐 아니다. 지난해 감사원이 4대강 사업에 대한 다섯번째 감사를 마치자마자 환경부는 보 처리방안 취소를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논의해달라고 요청했다. 감사원의 주문은 더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해 보 처리방안을 이행하라는 것이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요청이었다. 국가물관리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 국가물관리계획에 있는 보 처리방안과 강 자연성 회복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첫번째 공청회를 열었을 때 활동가들은 항의하며 피켓을 들었다. 정당한 공청회 진행이니 내려가라는 안내방송을 반복하던 환경부는 공청회 진행을 포기했다.

“수갑 채우겠습니다. 손목 앞으로 내밀어 보세요.”

일주일 뒤 공청회가 다시 열린 날, 경찰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으니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두번째 공청회는 환경단체 의견을 들어보고 본인들의 절차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강행’을 위한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환경부는 항의하는 활동가들과 어떤 소통도 하지 않았다. 두번째 공청회 때도 활동가들은 앞으로 나가 항의했다. 1차 때 보이지 않던 배덕효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나타난 건, 듣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이번에는 공청회를 하고야 말겠다는 뜻이었다. 저항하는 활동가들에게 경찰들이 다가섰고 앞에 섰던 나는 여경 6명에게 붙들려 끌려나갔다.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기다렸다. 경찰조차도 금방 나갈 거라고 낙관하듯 말했다. 하지만 밤 9시께 경찰서의 분위기가 달라졌고 그렇게 수갑을 차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동료들은 당황하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난생처음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가보았다. 혹시 나쁜 생각 할까 봐 바지의 끈을 빼라 해서 그것까지 사물함에 넣고 좁은 방 안에 들어섰다. 집에서 황망하게 이 상황을 맞이할 남편과 두 아이를 생각했고, 과연 이 상황의 끝은 어떨까를 잠시 생각했다.

공주보 담수에 반대해 고마나루에서 농성하던 시민·환경단체 회원이 지난해 9월14일 오후 공주시의 행정대집행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맨 왼쪽에서 천막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이다. 송인걸 기자

이틀 뒤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렸다. 1만8천명의 시민이 구속영장 신청을 규탄하며 서명했고 기자회견과 연대성명이 이어진 것을 나와서야 알았다. 이제 삭제된 보 처리방안과 강 자연성 회복을 다시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고민하며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고 그 기차는 지난해 9월 공주보 금강에 머물다가, 지금은 세종보 금강에 닿아있다.

아무 것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절망적이게도 지난해 9월 우리가 서 있던 모래는 다시 뻘이 되었다. 성명을 발표하고 환경부에 사후 모니터링을 요구했다. 2022년 보 수문을 열었을 때의 자료도 요구했지만 환경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공주보 수문이 열렸다. 물이 빠지고 드러난 모래사장은 예상대로 시꺼먼 뻘로 변해있었다. 지난 4월 초, 우리는 그것을 걷어내서 환경부 앞에 거대한 마대 2개에 담아 전시했다. 많은 시민들, 특히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뻘을 걷었다. 뻘을 걷어낸다 하니 공주시는 문화재 형상 변경이라며 신고하라고 전화했다. 원래의 고마나루 모래를 형상 변경한 것은 누구인가? 그들은 신고하고 허가를 받았는가. 허가를 받으면 모래를 뻘로 만들어도 괜찮은가. 문화재라고 지정해놓고 정부가 벌이는 짓들은 자기 기만적 행동이다.

지난해 11월에 공주보 수문이 열린 것은 세종보 재가동을 위함이었다. 왜 세종보를 닫냐는 물음에 환경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선전화도 받지 않아서 활동가들이 전화를 돌려가며 해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공사를 점검한다고 환경부 장관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활동가들은 환경부 장관에게 입장문을 전달하기 위해 세종보에 갔다. 환경부 장관이 차를 타고 세종보 공사 현장으로 내려가길래 그 앞을 막았다. 입장문을 전달하고 싶다고, 환경부가 전화를 안 받고 소통하지 않아서 왔다고 말하는 활동가들을 두고도 환경부 장관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대신 국장과 실장이 내려서 입장문을 받아갔다. 그리고 얼마 뒤 항의하던 활동가들이 받아든 것은 환경부 장관의 답장이 아니라 미신고 집회를 했다며 세종남부경찰서에서 날아온 출석요구서였다. 그들은 소통하지 않고 법이라는 칼날로 우리를 협박하기만 했다.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과 한국환경회의 등 시민단체가 지난달 30일 세종보 인근 금강변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많은 이들이 천막 농성장에 다녀갔다. 사실상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이들까지도. 국가물관리계획을 졸속으로 변경한 환경부와 이를 이용해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거짓말을 일삼는 세종시는 모두 우리 강의 자연스러움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부정하는 자들의 ‘부정한 짓들’을 두고 볼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눈 앞에서 알을 낳고 품고 지키려 애쓰는 물떼새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 때문이다.

부정한 환경부는 권력이 아닌 생명의 소리를 들어라. 우리의 입을 막을 수는 있어도 강에 사는 생명의 소리는 막을 수 없다. 생명의 소리마저 듣지 못하겠다는 귀먹은 환경부는 스스로 해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는 보 처리방안을 4년간 의논하고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삭제된 보 처리방안과 강 자연성 회복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정치적 수가 아니라 생명의 소리부터 들어라. 이태원 참사, 채 상병의 죽음, 보 재가동 시도는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는 사안이다. 세종보 천막 농성장에 물이 차오르기 전에 야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윤석열 정부의 강 파괴 폭주를 멈춰야 한다.

지난달 30일 오전 천막농성에 참여하는 시민단체 활동가와 시민들이 천막을 설치한 세종보 인근 금강변에서 ‘장벽을 걷어내고 마음껏 굽이쳐라. 4대강 보 해체!’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금강아, 영산강아, 낙동강아,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어린이날 연휴에 비가 이틀이나 내렸고 천막 주변으로도 물길이 차올랐다. 물이 차오르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천막을 위에서 바라보며 복잡하지만 묘한 확신이 들었다.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을 옹호하는 망령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강을 망치려 하고 있다면 강을 지키려는 우리 또한 끈질기고 끈질기게 남아, 기어이 보를 철거시키고 회복하는 그 강의 모습을 기록하고야 말리라는 의지가 충만해지는 물줄기였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지금의 시간이 오선지라면 새들의 소리는 음표로 남아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간다. 강의 노래다. 살아있는 금강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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