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잠금 해제] ②박정희 때 부정축재 김치열의 장남, 두바이 부동산 10여 채

김지윤 2024. 5. 16. 18: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조직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 국제협업팀과 함께 두바이 부동산 시장이 검은 돈의 도피처가 된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두바이에 부동산을 11채나 매입한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취재 결과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두바이 잠금 해제] ①두바이는 어떻게 전 세계 검은 돈의 은닉처가 됐나

[두바이 잠금 해제] ②박정희 때 부정축재 김치열의 장남, 두바이 부동산 10여 채

‘조직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 국제협업 취재팀이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비영리 단체 ‘첨단방위연구센터(C4ADS)’가 입수한 외국인 소유 두바이 부동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2년 기준으로 2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21만 8000채의 주거용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으로는 최소 1000억 달러 이상 규모다.

뉴스타파는 이 데이터에서 한국인 263명이 두바이에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과 분양권 등 모두 275건을 보유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대부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투자 목적으로 두바이 부동산을 여러 채 보유한 사람도 나왔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박정희 정권 핵심 실세로 각종 인권 유린 사건의 책임자였고, 권력을 휘두르며 막대한 부정축재를 일삼은 이른바 ‘그 때 그 사람들’의 후손이다.

박정희 정권 때 김대중 납치 사건과 간첩 조작 사건 등의 핵심 인물인 김치열 전 중앙정보부 차장의 장남 김형국 씨가 두바이 부동산을 대거 사들였고, 그 임대 수익으로 재산을 불려온 것이 확인됐다. 김치열은 박정희 독재 시절 주요 자리를 거쳤던 실세 중 실세였다. 

뉴스타파는 김치열의 장남 김형국 에이오에스 회장이 본인 명의로 두바이에만 다수의 상업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바이는 부동산 매매 때 자금세탁 방지 및 자금출처 확인 규제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시장이다. 

3공 실세 김치열, 공직 생활 중 부동산 투기…막대한 재산 형성

김치열은 1921년 생으로 43년 일본 주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일본제국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45년에는 일본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해방 이후 귀국해 1946년부터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지검 차장으로 일했고 1958년에는 서울지검장이 됐다. 1960년에는 검찰에서 나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김치열. 김 씨는 이후 검찰총장, 내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독재 정권의 핵심 실세가 되었다.

그러다 1970년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임명돼 김대중 납치사건,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등에 관여했다. 73년에는 검찰총장, 75년 내무부 장관, 78년 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박정희 정권에서 핵심 요직을 모두 거쳤다. 검찰총장 시절에는 민청학련 사건과 2차 인민혁명당 사건에 관여했고, 내무부 장관 때 남영동 대공분실을 만들었다.

법무부 장관이었던 1979년 말 신군부가 들어섰고, 이듬해 5월 17일 신군부에게 박정희 측근들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재산 일부인 34억여 원 상당의 토지와 동산을 국가에 헌납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변호사 겸 부동산 투자회사 회장으로 활동했다. 사돈이 소유한 조양상선의 계열사 제일생명보험 지분 15%를 보유한 주요 주주이자 고문이었고, 부동산 투자회사 ‘서우상역’(에이오에스의 전신)과 ‘희남’을 소유·운영했다. 

그는 매년 박정희 추도식에 참석했고, 1990년부터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 및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치열의 부, 장남 김형국에게로

김치열은 평생 공직에 몸담으면서도 서울 강남, 부산, 아산, 파주 등 전국 곳곳에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재산을 모았다. 주로 본인 명의가 아닌 가족과 회사 명의로 관리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김치열이 생존해 있을 때 친족을 상대로 진행한 한 소송 판결문에는 그가 장관 재직 기간에 “부정축재 내지 부동산투기 의혹을 피하기 위하여 재산을 친인척들이나 자신의 회사 ‘서우상역’이나 ‘희남’ 등에 명의신탁하는 방법으로 은닉했다”고 기록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치열은 축적한 재산 중 일부를 1980년 5월 국가에 헌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99년 국가를 상대로 신군부의 위력 때문에 재산을 강제 헌납했다며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2심에서 승소해 1000억 원 가량의 재산을 돌려받을 뻔 했으나, 대법원은 강제 헌납으로 보기 힘들다며 이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김치열은 슬하에 1남 4녀와 혼외자를 두었으나, 그가 쌓은 막대한 부는 상당 부분 장남인 김형국 씨가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김형국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국제경영 석사를 받고 1983년부터 97년까지 처가 소유기업인 제일생명과 한신신용금고 임원으로 일했다. 

이후에도 일신파이낸스 등 투자 회사를 운영하다 2009년 부친 김치열이 사망한 이후 부동산 투자회사 에이오에스를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다. 에이오에스는 서울 지하철 강남역과 양재역 사이 대로변에 위치한 지상 15층짜리 건물을 소유·임대하는 회사다. 

과거 에이오에스의 지분은 김치열의 자녀와 사위, 친족들이 나눠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 지분을 둘러싼 법적 싸움 이후 지분 구도가 달라졌다. 김형국은 2019년 그들과의 주주권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며 명의신탁했던 지분을 모두 가져왔다. 2023년 말 현재 김형국은 이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됐다. 부동산 등 다른 유형의 재산도 상당 부분 김형국이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두바이 유출 데이터: 한국인 263명 주거용 부동산 275채 보유

노르웨이 금융 매체 E24와 OCCRP는 워싱턴 DC 소재 비영리 단체 '첨단방위연구센터(C4ADS)'에서 두바이 부동산 데이터를 입수했고, 뉴스타파는 OCCRP 주관으로 57개국 73개 언론사와 협업해 이 데이터를 공동 분석했다. 이 자료는 2020년과 2022년 두바이 내 외국인들이 투자 가능한 구역의 부동산 소유권 및 임대차 현황 정보를 포함한다. 

유럽연합의 독립조사기구인 EU조세관측소노르웨이 조세연구센터(Skatteforsk)가 이 데이터를 공동 분석한 결과, 2022년 말 기준 한국 국적자 263명이 거주용 부동산과 분양권 275개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이 UAE를 비롯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하거나 사업 관계가 있는 개인들이었다. 

같은 시기 외국인은 두바이에서 주거용 부동산과 분양권을 최소 21만 8000채를 소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1000억 달러, 우리 돈 136조 6359억 원 이상 규모다. 두 기관은 외국인 보유 두바이 부동산의 자산 가치는 실제 이 보다 더 높을 것으로 봤다. 2022년 두바이 부동산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했고, 사무용 건물 등 상업용 부동산을 제외하고 추산했기 때문이다. 

김치열 장남, 두바이 명소 인근 호화 아파트와 부동산 무더기 매입

뉴스타파는 이 데이터에서는 김치열의 장남 김형국 씨 소유의 부동산 11채를 확인했다. 그는 2007년 7월과 8월 주거용 아파트 2채와 상업용 사무실 9채, 부동산 모두 11곳을 사들였다. 당시 가치로 미화 740만 달러 가량, 우리 돈으로 68억 8500만 원 상당이다. 17년이 지난 지금 가치는 이 보다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씨가 한 채씩 소유했던 아파트 엘리트레지던스와 프린세스타워는 모두 두바이의 상징 팜 주메이라와 마리나 비치가 바로 앞에 펼쳐진 고급 아파트 단지로 2007년 7월 계약 당시 가격은 총 14억 원이 넘었다. 두 아파트 모두 2007년 착공해 2012년 완공됐다. 

김 씨는 두바이의 또 다른 상징 부르즈할리파 근처에 위치한 상업용 빌딩 실버타워에 대거 투자하기도 했다. 빌딩 착공 시점인 2007년 계약해 2009년 매입을 완료했다. 한 층 전체에서 한 개 사무실만 제외한 9개 호실을 사들여 임대해 왔다. 24층 로열층에 위치한 사무실 87㎡에서부터 107㎡까지 다양했다. 빌딩은 2011년 완공됐다. 

두바이 비즈니스 중심가인 ‘비즈니스베이’ 구역. (출처: 로버트 룩셈버그)

이 부동산 소유 내역은 2015년 미국 뉴욕카운티지방법원과 서울가정법원에 제출된 김형국 씨와 전 배우자 강 모 씨의 재산분할 소송 자료에 드러난 것과 일치한다. 

김 씨는 2007년 2월 강 모 씨와 미국 뉴욕에서 결혼한 직후 현지에서 고급 아파트를 두 채 사들였고, 같은 해 7월 강 씨와 함께 두바이로 여행을 떠나 이번 유출 데이터에서 확인된 아파트 두 채를 사들였다. 강 씨는 미국과 한국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이후 김 씨가 두바이 출장에서 현지에 은행 계좌를 두고 사무실 여러 채를 매입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이 가운데 주거용 아파트 두 채는 현재 매각한 상태이다. 국제협업팀이 입수한 데이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김 씨 소유 아파트에 거주한 세입자들은 연 임대료만 각각 17만, 11만 디르함을 지불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합쳐서 우리 돈 1억 426만 원 가량이다. 

매입가 기준 53억 원 상당이었던 상업용 부동산 사무실 9채는 김 씨가 2023년 말 현재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이들 사무실은 모두 임대 중이었다. 2024년 5월 현재 두바이 온라인 부동산 포털 ‘프로퍼티파인더’에 따르면 비즈니스베이 구역 실버타워에서 김 씨가 보유한 것과 비슷한 면적의 사무실은 모두 연 임대료가 12만 디르함 이상으로 형성돼 있다. 보수적으로 계산해 봐도 9채를 보유하고 있다면 적어도 연 임대소득이 108만 디르함, 우리 돈 4억 200만 원이 넘는다.

두바이 온라인 부동산 포털 ‘프로퍼티파인더’에 올라온 실버타워 임대 매물. (출처: 스크린샷)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두바이 부동산 가격은 주거용과 상업용 모두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고 앞으로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두바이 토지청의 주택 지수를 바탕으로 딜로이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두바이 주거용 부동산 매매 가격은 전년 동기대비 18% 상승했다. 

국내 거주자는 해외 부동산 임대소득 국내에 신고하고 납세해야 

우리 국민의 투자 목적 해외 부동산 취득 한도는 2008년 1월부터 완전히 없어졌다. 그러나 김 씨가 두바이와 미국 뉴욕에서 아파트와 사무실 등 부동산을 사들인 기간에는 한도가 있었다. 2007년 2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는 이 한도가 1인당 300만 달러였다. 김형국이 2007년 두바이에서 사들인 부동산만 해도 미화 74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당시 그가 해외에서 취득한 부동산은 한도를 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 국세청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보유한 해외 부동산에서 임대 소득이 발생한 경우에는 매년 국내 조세당국에 임대료를 신고하고 국내에서 발생하는 임대 소득과 합산해 소득세를 내야한다. 

뉴스타파는 김 씨에게 해당 두바이 부동산 11채를 사들인 자금 출처는 무엇인지 두바이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 소득에 대해 국내 과세당국에 세금을 냈는지 여러 차례 질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뉴스타파 김지윤 jiyoon@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