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잠금 해제] ①두바이는 어떻게 전 세계 검은 돈의 은닉처가 됐나

뉴스타파 2024. 5. 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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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조직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 국제협업팀과 함께 두바이 부동산 시장이 검은 돈의 도피처가 된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두바이에 부동산을 11채나 매입한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취재 결과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두바이 잠금 해제] ①두바이는 어떻게 전 세계 검은 돈의 은닉처가 됐나

[두바이 잠금 해제] ②박정희 때 부정축재 김치열의 장남, 두바이 부동산 10여 채

발칸지역 범죄 카르텔 조직원의 아내가 자신이 살고 있는 두바이 고급 아파트 영상을 틱톡에 잇달아 올렸다. 이 영상을 통해 ‘조직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의 세르비아 파트너 매체 ‘KRIK’ 취재진은 조직 범죄, 마약 밀수, 돈세탁 혐의를 받고 있는 보스니아 범죄 카르텔 조직원 카드리치가 이곳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KRIK’ 취재진은 카드리치의 아내가 올린 틱톡 영상을 실마리로 아파트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 아파트가 스페인에서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적도기니 국영 석유회사 ‘GE페트롤’ 전 대표인 칸디도 은수 오코모 소유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오코모는 1979년부터 지금까지 장기 집권 중인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적도기니 대통령의 처남이다. 음바소고 대통령 일가는 국유재산 횡령 등의 혐의로 프랑스에서 기소된 상태다.

영상을 올린 두바이 아파트 세입자 카드리치 부부와 아파트 주인 오코모가 서로 범죄 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아파트 임대차 계약은 현대 두바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국이 비밀주의와 느슨한 정책을 유지한 덕에 화려한 두바이 부동산 시장에는 전 세계의 악명높은 인사들로 넘쳐난다.

조세도피 시스템 전문가인 제임스 헨리 미국 예일대 글로벌 사법 연구원은 두바이 등 7개 토후국 연합체인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 이하 UAE)를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에 비유했다. 

헨리는 “들어가면 왼쪽에는 국가의 부를 약탈하는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올리가르히들, 뒤쪽에는 제재의 허점을 이용한 러시아 무역상들이 있다”며, “이들은 모두 금융 비밀주의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의 화려한 스카이 라인 (출처: 올레 마틴 월드)

이런 사실은 2023년 기준 임대 계약서와 유출된 부동산 관리 데이터에서 확인됐다. 유출 데이터는 주로 2020년과 2022년 자료로, 국제범죄와 분쟁을 연구하는 미국 비영리 단체인 ‘첨단방위연구센터’(C4ADS)가 입수해 노르웨이의 금융취재 전문매체 ‘E24’와 OCCRP에 공유했다. OCCRP는 전세계 58개국 74개 파트너 언론사와 함께 데이터를 협업 취재했다. 

협업 취재팀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두바이의 외국인 부동산 소유 현황을 조사했다. 지난 6개월간 다른 공식 기록과 오픈소스 데이터를 활용해 유출 데이터에 있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고 소유권 상태를 확인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취재팀이 찾아낸 범죄 관련 두바이 부동산 소유주는 오코모 뿐만이 아니다. 협업 취재팀은 최소 수백 명의 유죄 판결 범죄자, 해외 도피자, 부패 혐의로 기소된 정치인과 그 측근, 그리고 국제 제재 대상자들이 두바이에 최소 한 건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OCCRP 데이터베이스 보러가기)

이라크 재건 사업과 관련해 수백만 달러 규모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21년 미국에서 기소된 영국인 슈완 모하마드 알물라도 그 중 한 명이다. 알물라는 오코모 소유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고급 아파트 소유주였다.

마약 밀매 혐의로 유럽연합의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조셉 요하네스 레이데커스는 두바이의 상징인 손바닥 모양 인공 군도 ‘팜 주메이라’에 있는 그랜저 레지던스 아파트에 산다.  

인근 팜 타워 두바이에는 비트코인 피라미드 사기로 부를 쌓은 브라질 사업가 다닐로 분자오 산타나 구베이아가 소유한 아파트가 있다. 그는 자금 세탁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후에도 두바이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소셜미디어 계정에 화려한 두바이 생활을 자랑하고 있다.

이외에도 호주 코카인 밀매업자, 제재 대상인 헤즈볼라에 돈줄이 되어 준 금융가들도 나왔다.

비트코인 피라미드 사기로 부를 쌓은 브라질 사업가 다닐로 분자오 산타나 구베이아가 소유한 아파트의 위치. OCCRP 국제협업팀은 두바이에 모두 1000곳 이상의 주거용 부동산을 소유한 전 세계 범죄혐의자, 수배자, 정치인, 제재 대상 등 약 200명의 명단을 공개한다. (출처: OCCRP)

이들은 두바이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현지 금융기관의 고객 위험 평가에 따라 즉시 정체가 들통났어야 했다. 그러나 두바이 부동산 시장은 이들이 당당하게 본인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협업팀은 카드리치, 오코모, 알물라, 레이데커스, 산타나 구베이아에게 어떻게 본인 명의로 두바이에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마리아 지우디타 보쉘리 ‘첨단방위연구센터’(C4ADS) 매니저는 “부패 관료나 정치인은 공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UAE의 비밀 관할권을 이용해 자산을 숨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OCCRP 국제협업팀은 이 같은 평가에 대해 UAE 정부의 입장을 물었다. 정부 부처와 두바이 경찰은 답하지 않았다. 영국과 노르웨이 주재 UAE 대사관은 “전 세계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UAE는 모든 형태의 불법 금융을 가로막고 억제하기 위해 다른 국가 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왜 두바이인가?

40년 전만 해도 두바이는 사막과 모래 밖에 없는 중동의 전초기지였다. 

40년 전 개발되기 이전의 두바이. (출처: OCCRP)

오늘날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글로벌 금융 중심지가 됐다. 전 세계 기업가들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체결하고,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에 직접 올라가기도 했다.

범죄자와 사회 지도자들이 고급 부동산에 재산을 은닉하는 도시로는 뉴욕과 런던도 유명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바이에는 뉴욕과 런던에 없는 특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범죄인 체포와 송환을 도와달라는 외국 당국의 요청에 일관성 없이 대응하는 UAE 정부의 기조다.

UAE는 많은 국가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두바이가 전 세계 도피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일조했다. 최근 몇 년간 UAE 당국은 외국 사법 당국과의 협력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범죄인 인도 요청에 일관성 없이 대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의 아툴과 라제쉬 굽타 형제는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남아공의 공적 자금을 약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증거도 공개되고 있다. 남아공과 UAE는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은 상태다. 그러나 지난해 UAE는 자금세탁 및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굽타 형제의 신병 인도 요청을 기각했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전 대통령과 인도인 사업가 아툴 굽타가 지난 2012년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한 행사에서 함께 참석했다. (출처: 남아프리카 정부)

남아공 정부는 UAE 당국이 굽타 형제 인도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국제협업팀의 질의에 UAE 정부는 “모든 종류의 불법 금융을 억제하기 위해 전 세계 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굽타 형제와 주마 전 대통령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두바이 구금자 법률 지원 단체 ‘디테인드’ 소속 인권 운동가 라다 스털링 변호사는 UAE 당국이 유명 탈주범들을 다른 국가와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스털링 변호사는 “국가 간 범죄인 인도 협정의 존재 여부가 반드시 범죄인 인도 여부의 핵심은 아니”라며, “중요한 것은 두바이가 대가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국가가 교환할 만큼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범죄인 인도 정책 책임자인 사우드 압둘아지즈 알무타와 두바이 경찰 금융범죄센터장은 지난 3월 국제협업팀의 일원인 스웨덴공영방송(SVT)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적색 수배자 체포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현지 법원을 거쳐야 하는 범죄인 인도 요청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막강한 자금력으로 선임된 변호인단 때문에 성사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두바이, FATF ‘관찰 대상국’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동산 살 수 있어

최근 몇 년간 UAE 당국은 자금세탁 방지 규정을 강화해 왔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 세탁을 감시하는 국제 기구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2022년 불법 자금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UAE를 ‘그레이리스트’에 추가했기 때문이다. 

FATF는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조달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 기준을 준수하는지 평가하고, 노력이 미진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매년 ‘조치를 요하는 고위험 국가’와 ‘관찰 대상 국가’를 발표한다. FATF 회원국에 고위험 국가, 즉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국가와는 거래 중단, 해외 사무소 설립 금지 등 조치를 권고한다. 2024년 5월 현재 블랙리스트 국가로는 이란, 북한, 미얀마가 있다. ‘그레이리스트’, 즉 관찰 대상 국가는 FATF가 지적한 문제 시정 조치에 협력하긴 하지만 돈세탁과 테러자금 조달 방지 조치에 전략적인 결함이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는 뜻이다. 

UAE 당국은 로비를 벌인 끝에 지난 2월 ‘그레이리스트’에서 제외됐다. FATF는 UAE가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며 모니터링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해제 조치가 시기상조이거나 지정학적 우려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비영리 연구기관 ‘노리아’의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선임연구원 콜린 파워스는 “두바이가 최근 형법과 사법부 개혁을 통해 이번 FATF 그레이리스트에서 해제됐을지 모르지만 부동산 시장의 본질을 실질적으로 바꾸지는 못 했다”고 평가했다. 

파워스 선임연구원은 최근 개혁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여전히 신탁, 지주회사, 재단 뒤에 소유권을 숨길 수 있다며 “(두바이) 부동산은 부를 축적하는 데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했다. 

국제협업팀의 SVT 기자들은 지난 3월 두바이의 주요 부동산개발 회사 ‘다맥’ 영업사원에게 고객을 가장해 잠입 취재를 진행했다. 기자들은 영업사원에게서 현금이나 암호화폐로도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SVT 기자가 두바이 주요 부동산 개발 회사 다맥 영업사원에게 고객을 가장해 잠입 취재를 진행했다. 기자가 영업사원과 함께 매물을 보러다니는 모습. (출처: SVT)

 다맥 영업사원은 SVT 기자들에게 “어떤 부서, 특히 개발자 본인으로부터도 질문을 받지 않는다”며 “사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금으로 부동산을 사면 은행에서 자금 출처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고도 두바이에 돈을 들여올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맥 영업사원은 “부동산을 팔고 은행 계좌로 모든 금액을 이체하면 문제가 없으며, 현금을 어디서 가져와서 부동산을 구입하고 은행에 넣었는지 묻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해명을 요청하자, 다맥 관계자는 고객에 대한 신원 조회를 실시하고 있으며, 고객에게 현금 구매를 권장하는 것은 회사의 정책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맥은 “기자가 해당 영업사원과 실제 부동산 계약 과정까지 진행했다면 면밀한 절차를 따라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잠입 취재 결과에 대해 알무타와 두바이 경찰 금융범죄센터장은 UAE 정부는 “법 위반에 대한 위험 관용이 전혀 없다”며 법을 '눈감는'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두바이는 불법 행위자들을 위한 불법 자금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며, “합법적인 상거래, 열심히 일하고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번 합법적인 개인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라고 강조했다. 

영국과 아랍에미리트에 본사를 두고 고객의 금융범죄 위험 관리를 지원하는 ‘테미스’ 고객 서비스 매니저인 멜리사 세케이라는 두바이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권만 있으면 부동산을 살 수 있었던 시장”이었다고 말한다. 

세케이라는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중개업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검사가 늘어난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소규모 회사에서는 현장의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범죄의 부정적 영향을 막기보다는 수익에 집중하는 부동산 개발업계 고위 관리자들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부패와 불법 금융을 연구하는 조디 비토리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는 FATF가 UAE를 그레이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이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미국은 UAE 등 중동 내 다른 동맹국들이 가자지구 재건에 나서주길 바라지만 FATF가 관찰 대상으로 지정한 국가를 통해서는 자금을 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토리는 "UAE의 부패, 자금 세탁, 조직 범죄 조장은 펜타닐부터 인신매매, 불법 금융 흐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맞서 싸우려는 서방의 대규모 노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서방 정부가 UAE에 가자지구 재건을 요청하는 동시에 FATF에 압력을 가해 UAE를 자금 세탁 그레이리스트에 다시 올리거나 다른 제재를 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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